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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 |
[문화시평] 선조들의 연하장
관리자(2009-02-06 11:56:58)
[문화시평] 선조들의 연하장 세 밑 선물에 담긴 정 망할 놈(?)의 인터넷 때문인지 연말이면 당연히 하던 고민이 하나 없어져 버렸다. 성탄절이 25일이니 성탄절 카드를 보내는 것이나 새해를 맞이하는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나 이제는 하나 만들어서 죽~ 인터넷 주소창을 연결해서 버튼 하나면 끝나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면 성탄절을 겸해서 카드를 사다가 손으로 직접 그려서 보냈던 기억이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인쇄된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보낼 곳을 손꼽아 세어 사고 일일이 안부를 묻는 글을 써 넣었던 듯한데, 그런 정성이 담긴 카드와 연하장을 보낸 것이 언제이었을까 싶다. 사실 한 해의 끝은 곧 새로운 해의 시작이니 굳이 끝과 시작이랄 것도 없는 영속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은 차곡차곡 쌓여져 가는 나이 만큼이나 그 폭도 깊이도 더해진다. 연하장의 시초가 15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것으로 나와 있는 데, 그것은 인쇄용 연하장의 시초일 뿐이다. 사람이 해와 달을 나누어 달력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때부터 새해를 맞이하여 안부를 묻는 연하편지는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하장의 시초는 그보다 훨씬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옛 사람들은 어떠하였을까? 새해는 출발이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자연 순환고리이다. 따라서 새해라 함은 몸과 마음을 정갈이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안부를 여쭈며 아울러 조그마한 선물을 보내는 것이 예의였다. 연하장이라는 인쇄된 매체를 이용하는 연하장은 아닐지라도 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세 밑이나 새해에 들면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곤 하였다. 1874년(고종 11)년 1월 9일 이승오라는 사람은 자신이 병이 들어 크게 기운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새해에 들어 몹시도 보고 싶다는 글과 함께 달력 2통을 선물로 함께 보내었다. 달력을 보내는 것은 조선시대에 있어서 귀한 선물이었다. 매년 그 해의 달력을 간행해서 배포했었기 때문에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 농사를 언제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달력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쇄매체가 그리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달력은 고마운 선물이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인쇄되어 돌아다니는 정치인의 한 장짜리 달력이 귀하게 대접받고, 매일 매일 뜯어 낼 수 있었던 일일 달력은 귀한 몸처럼 화장실에서 사용되었다. 때로는 일기장으로 때로는 메모장으로 숱한 생명력을 가진 달력은 이렇듯 새해에 연하편지에 담아 보내는 정이었다. 지금도 연말이면 누가 달력을 주지 않나? 달력의 인쇄량이 그해의 경기를 대변할 정도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저 달력 하나 달랑 보내는 정성에 몇 자 적어 동봉하면 그 안에 담긴 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전북청년작가전 전북도립미술관 전북미술판에서 살아남기 김효정  전북도민일보 기자 전북 미술판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미술 시장과 전북을 대표 할만한 스타 작가 그리고 이 두가지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와 같은 세계적 불황 속에 미술 시장을 운운하는 것부터가 우스울 수 있지만 그래도 전북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인들의 숫자를 고려해 볼 때 미술 시장의 부재는 무척 안타까운 대목이다. 또 실력 있는 작가 발굴과 지원도 참 인색하다. 일부 민간 문화예술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미술지원 사업들은 이들을 아우르기에는 역부족이고 이러한 상황을 타계할 정책조차 없는 전북의 미술은 새해가 밝아 왔어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의 청년 작가들에게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참여의 기회를 열어 주고자 마련했다는 전북도립미술관의 ‘2008 전북청년작가전’은 공공 미술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자리다. 또 52명의 전북 출신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면서 전북 미술판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현재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젊은 작가들부터 서울 및 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또 생소한 이름의 신예 작가들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선보이고 있었다. 한국화, 서양화 등 일반 회화를 비롯해 조각과 공예,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200여점이 넘는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한국화의 다변성과 일상과 예술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공예 부문은 젊은 작가들의 발랄함이 엿보였다. 또 중앙과 지역 미술의 경향과 차이점도 발견되면서 전북의 청년 미술의 현 위치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선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보다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부여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단순한 습작 수준의 작품들이 군데 군데 보이면서 전체적인 전시의 흐름을 깨고 있다는 인상이다. 또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를 한 작가가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지난해 자신의 개인전이나 일부 단체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을 내놓은 경우가 많았고 작가의 새로운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과거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보여 주면서 작가 스스로도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는 유용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한 개인의 개인전이 아니고 전북의 청년 작가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야 하는 자리다. 작업에 대한 열정과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위해 앞으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물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 미술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 돋보이는 작가들도 눈에 띄어 그나마 안심이다. 꾸준히 자신만의 색을 지니며 그 안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 가는 모습들은 지역 미술의 미래를 밝게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아쉬운 대목이다. 각 장르별로 내실을 갖춘 유망주들을 가려내 전북 청년 미술의 진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획력이 요구된다. 이는 전북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보다 큰 무대로의 진출을 기대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전체적으로 평이한 수준의 작품들과 내용을 갖춘 실험성과 열정이 아닌 자신만의 에고에 빠져 관객과의 소통의 벽을 가로 막고 있는 일부 작품들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이번 전시는 지역의 청년 작가들에게 첫 발표의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그리고 공공 미술관으로써 도립 미술관이 지닌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일회성 공간 제공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실력 있는 지역 작가를 발굴하고 중앙 무대로의 연계를 통해 전북 미술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전시도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도립 미술관이 침체된 지역 미술계를 위해 지난해 ‘지역 미술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앞으로도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지역 미술계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기대해 본다.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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