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 |
[문화현장 │ 천년전주사랑모임 화요시민강좌]
관리자(2009-02-06 11:55:50)
[문화현장 │ 천년전주사랑모임 화요시민강좌]
전통문화로 길어 올린 창조적 미래
전통이 특수문화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전통문화는 과거에는 보편성을 획득하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특수계층만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 천년전주사랑모임이 주최하는 화요시민강좌가 열렸다. 전통문화중심도시인 전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전주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천년전주사랑모임은 이번 시민강좌를 통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고취하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시민들에게 보다 더 우리 문화를 가깝게 다가서게 하려는 자리로 마련했다.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진행되는 이번 강좌의 첫 강연자는 전 문화관광부장관인 김명곤씨. 국악인이자 배우로서 현장경험과 국립극장장을 비롯하여 문화관광부장관까지 정책경험을 모두 가진 몇 안 되는 문화예술인으로서 그의 강연은 이론과 실무가 적절히 조화되어 청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전통문화의 창조적 미래’라는 주제로 두 시간에 걸쳐 열린 강연을 정리했다.
천년전주를 넘고 전통을 넘어서기 위해서 ‘전통문화의 창조적 미래’라고 주제를 잡았다. 문화관광부장관 재직 시절에 전주가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선정되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경주는 역사문화중심도시, 부산은 영상문화중심도시,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선정되어 각자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도시를 색칠하고 있다. 현재 부여와 안동도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선정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여 전주는 역사유적이나 전통문화마을과 같은 하드웨어가 부족하다. 그러나 전주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바로 소프트웨어에 있다. 소리, 음식, 서예, 춤 등 전통문화예술컨텐츠가 바로 전주의 재산인 것이다. 이러한 컨텐츠를 전주의 발전, 나아가서 전북의 발전과 연결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전통과 미래는 충돌할 수 있다. 전통의 속성이 과거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어떻게 미래와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지점이다.
발전한 도시에는 보헤미안이 필요하다
전통의 속성은 보수성, 폐쇄성, 모방성, 지역성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미래의 속성은 진보성, 개방성, 창의성, 국제성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전통과 미래가 대립하는 것을 이러한 본질적 속성에서 기인한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박제된 전통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일 뿐 의미가 없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이라는 용어는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첫 TF로 출발한 것이 바로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TF이다. 국가발전의 핵심동력으로서 창조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차원의 TF를 구성한 것이다. 이 창조산업육성팀에는 모두 7개의 소그룹이 있었고 이들의 예를 통해 전주의 발전전략모델을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로 교육과 인재(양성)팀이다. 인재가 바로 창조자본이라는 인식하에서 어떻게 창조적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자 말씀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는 말이 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를 이 경구에 대입시키 해석하면 ‘뛰는 놈보다 나는 놈이 낫고 나는 놈보다 노는 놈이 낫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樂之者 不如狂之者’라는 말이다. 즐기는 사람은 미친 사람보다 못하다는 의미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미친 사람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 노벨상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노벨평화상 외에는 노벨상 수상경력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젊은 영재들을 선발하여 평생토록 연구할 수 있는 기반과 시스템을 갖춰서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는 이것을 ‘미친놈 프로젝트’라고 하고 싶다. 미친 놈, 즉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던 인재들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건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차드 플로리다라는 미국의 교수가 쓴 <도시와 창조계급>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의 도시를 분석하는 재미있는 세 가지 지수가 있다. 보헤미안 지수(Bohemian Index)라는 것이 있다. 보헤미안은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예술가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의 도시를 분석해보니 보헤미안 지수가 높게 나왔다. 도시발전과 보헤미안 지수가 정비례한다는 얘기다. 지수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작가, 음악가, 공예가, 연기자, 무용가, 화가, 아트프린터 등으로 이들이 도시인구 천 명당 몇 명인지 분석해서 조사한 지수다. 이들 보헤미안들을 얼마나 보유, 유치, 양성, 접촉하는지에 따라 그 도시의 인재분포가 달라지고 도시의 발전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주에도 서예가를 비롯하여 다도전문가, 한식전문가, 국악인, 대목장, 소목장, 판소리 명인 등이 많이 있다. 이들이 바로 전주, 전북의 보헤미안이다. 이들을 어떻게 보유, 유치, 양성, 접촉하느냐가 바로 전주가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미래는 상상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운 축제가 함평나비축제이다. 1999년도 함평군은 인구는 4만 명에 재정자립도가 12%에 불과했다. 함평군수는 KBS PD 출신이었다. 즉 창조적 발상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나비는 함평과 아무 관련이 없는 컨텐츠였다. 나비축제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도 심했다. 없는 것을 하자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첫해에 2억을 들여 제주도에서 나비를 수입해서 축제를 개최했는데 1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 후 9년 동안 나비축제에 투자된 총금액이 대략 78억 원 정도이고 여기서 매출은 모두 약 870억 원을 올렸다. 나비축제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함평군에서 나오는 모든 농산물에 나비를 상표화해서 부착했다. 요즘은 나비를 직접 판매하기까지 하는데다가 2008년에는 세계곤충엑스포를 개최하기까지 했다. 함평군에서 나오는 쌀은 전통이다. 반면에 나비는 미래다. 미래에 대한 창조와 상상력의 산물이 나비로 형상화한 것이다. 나비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추억을 파는 축제가 바로 나비축제이다. 광화문에서 함평나비축제 광고탑을 본 적이다. 지자체에서 서울에 직접 광고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광고탑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전통과 관련된 문화상품도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지적재산권이다. 전통문화를 가지고 저작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싶다. 국립극장장 시절에 파리음악축제 예술감독이 찾아왔다. 이 축제는 전주의 소리축제와 유사하다. 이 음악감독이 한극음악특집, 그중에서도 판소리특별프로그램을 하기를 원했다. 판소리를 한국의 원형 그대로 선보이기를 원했고 그래서 판소리 다섯 바탕 별로 명창을 소개해 줬다. 이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위해 각 바디별로 자막을 제작했는데 그 번역저작권을 파리음악축제가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축제나 영국의 에딘버러축제에 참여했을 때 자막번역료를 파리음악축제에서 받아갔다. 그 당시만 해도 판소리자막의 저작권설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현대적 감각이 조화된 전통문화디자인
전통과 관련된 인프라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이 디자인이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보면 단순히 현대적 공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문화센터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인프라는 디자인경쟁이다. 일례로 각종 공연 포스터를 보자. 전통문화의 내용을 모르면 포스터도 제대로 나올 수 없다. 판소리 흥보가라고 하면 박이나 제비를 갖다 놓고, 심청가라고 하면 무조건 연꽃이다. 창조적 상상력이 없는 것이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건립할 때 자문위원으로서 디자인에 반대를 했다. 전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공연장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일본 교토에 있는 전통가면극 극장인 금강노오악당(개인극장)이나 나라 국립극장들은 일본 전통양식을 살려서 현대와 조화롭게 건설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공연장은 오페라나 오케스트라와 같은 서양음악에 가장 적합하게 음향설계를 하고 있다. 국악연주나 판소리공연을 하는 경우 당연히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것들이 전통문화인프라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로는 국악음원사업을 들 수 있다. 최성화교수가 선구자인데 국악을 디지털로 음원화해 놓으면 그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다. KT와 연계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는데 진행이 이루어지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게이마저도 품을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
전주가 품고 있는 전통문화만을 생각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다. 전주에서 나아가 전북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세계로 관심을 돌려야 하고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전통을 박제해서 박물관에 넣어 놓는 것이 아니라 현대화하고 재창조해야 한다. 현대는 그러한 경쟁의 시대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개방성과 관용이다. 전통문화가 강한 곳일수록 오히려 어찌보면 당연하게 폐쇄성을 보인다. 보헤미안지수와 더불어 게이지수나 용광로지수가 참고가 될 수 있다. 게이, 즉 동성애자는 다양성의 관점에서 최저점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게이를 받아들이면 다른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게이가 시장이나 정치인으로 성공한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용광로지수도 중요하다. 전주가 문화의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우리 전통문화도 중요하지만 전주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와서 살고 그들의 문화와 우리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외국문화와 공존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전주는 많은 전통문화컨텐츠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전주만의 것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있다. 다른 지역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이제는 실기인보다 경영인, 즉 기획자가 필요하다.
전통이라는 것이 현대에서 일반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통은 특수성으로 귀납된다. 전통이 특수문화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전통문화는 과거에는 보편성을 획득하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특수계층만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문화가 다시 현대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좀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대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은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