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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교사일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짬뽕
양정복/전주여자고등학교 교사(2003-07-03 15:21:15)
여자고등학교로 옮긴 지 2년이 되던 어느 여름. 일직 근무 날이었다. 장마철이 시작되었던 때라 비가 무던히도 왔다. 오전 한나절 내내 학교 정원에 있는 곰솔이 제 솔잎보다 더 날카로운 비에 젖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같이 일직을 하던 선생님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집에서 김치전이나 부쳐 먹으면 딱 좋겠다." 그러다가 점심은 따끈한 국물 있는 짬뽕으로 시켜 먹자고 합의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모래내 어디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짬뽕을 시켜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빗속을 달려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아! 나의 일용할 양식이 오는구나!'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있는데 인터폰이 왔다. "선생님! 전에 고산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으세요?", "예, 그런데요.", "지금 제자가 찾아 왔는데요.", "그래요? 바로 갈께요." 행정실에는 키가 껀정하니 크고, 새카맣게 탄 삐쩍 마른 남자아이가 한 명 서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아이는 까맣게 때에 절은 맨발로 후줄근하게 서 있었다. 나를 본 아이가 까만 얼굴에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인사를 꾸벅한다. "선생님! 저저 후후선인데요, 서선생님 이곳에 있다고 해서 계계신가 물어봤어요." 자신 없는 목소리, 약간 더듬는 말투, 며칠 굶은 것같은 삐쩍 마른 몸,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웃는 아이 얼굴 위로 중 3때 아이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참 활기도 없고 의지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였다. 외아들이라고 가난한 촌아낙네인 홀어머니는 무척이나 챙기는 편인데도 이상하게도 아이는 집에 붙어있지 못하고 늘 가출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아무 말 없이 졸기나 하다가 며칠만에 며칠씩 결석하는 것이 거의 습관처럼 되었다. 가정에 학대하는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등교만 해주면 그저 고맙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며 예뻐해 주는 선생님이 있는데 도대체 가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퇴폐문화에 물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어머니 손을 잡고 며칠의 결석 끝에 아이가 학교에 등교했다. 그동안의 생활을 꼬치꼬치 물으니 내용은 너무나 단순했다. 그냥 돌아다녔단다. 낮에는 낚시꾼 옆에서 낚시하는 것 구경하고 밤에는 다리 밑에서 자고…. 돈이 없으니 걸어서 다니고…. 그냥 그렇게 다니다가 너무나 밥을 굶어서 실신한 지경에 이르자 집에 돌아와서 기진맥진 쓰러지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아이 어머니는 눈물을 치마깃으로 닦아내며 한탄했다. "다른 애들은 집을 나가면 음식점에서 심부름이라도 해서 먹고는 산다는데…. 이 못난 놈은 그냥 굶어 죽게 생겼다니까요." 그 말에 나도 역시 가슴이 막막하여 아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후선아! 그렇게도 학교가 싫드냐? 굶어 죽을만큼?" 아이는 뜻밖의 소리를 한다. "하학교가 싫은 게 아니라요. 그그냥 돌아다니는게 마마음이 편해요. 바밖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아이 엄마는 애가 역마살이 들어서 그런다고 또 눈물바람이었다. 그렇게 와서 며칠 잠잠하던 아이는 여름 방학이 끝나고 며칠 지나자 다시 가출하였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도 소식을 알 수 없던 차에 경찰서에서 학교로 연락이 왔다. 아이가 특수절도로 경찰서에 있단다. 낮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밤에는 남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잠을 자고 지내다가 세 아이가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서 금반지를 훔치다가 잡혔단다. 세 명이 함께 들어갔으니 특수절도에 해당되어 죄가 무거워지고, 미성년자일지라도 재판을 받으면 형을 살게 된단다.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로 면회를 가니 두꺼운 유리벽 너머로 고개를 떨어뜨리며 "자잘못했어요" 여전히 더듬는 말투로 뉘우치고 있었다.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을 막막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활기가 없는 아이가 더 풀기 없이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학교에 돌아와 반 아이들과 상의를 하였다. "우리가 후선이를 위해서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그랬더니 아이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후선이가 원래 마음은 착한 아이니까 그것을 탄원서로 만들어 보내자고.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후선이의 가출병을 고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경찰서로 면회를 가서 친구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참으로 신통하고 속 깊은 반아이들이 대견하였다. 그 날로 글 잘 쓰는 미경이가 탄원서를 쓰고, 나머지 아이들이 조별로 나뉘어서 전교생의 서명을 받았다. 담임인 나는 나대로 또 아이에 대한 탄원서를 쓰고 학교 선생님들의 서명을 받았다. 아이가 비록 공부는 못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서 학교 생활을 제대로 못했지만 마음은 순하고 여리다는 것을 탄원서에 썼다. 그리고 의욕이 없는 아이니까 더욱 전과까지 생기면 아이가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듯하니 기회를 한 번 더 주자는 내용을 덧붙였다. 결국 아이는 두 달을 소년원에서 보내고 교실로 돌아왔다. 반 아이들은 후선이를 위해서 처음 등교하는 날 파티를 열어줬다. 쌀을 모아서 떡을 하고 약간을 돈을 모아 과자도 사고 노래하고 춤도 추며 후선이를 기쁘게 해줬다. 소년원을 다녀온 아이를 빼돌리면 아이가 더욱 인생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저희들 나름대로의 회의 결과였다. 그 다음에도 반 아이들은 후선이를 지극히 위해줬다. 다시는 가출을 하지 않고 후선이는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후선이로 인해 반 아이들은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을 배우고 깨달았고 실천하는 자세도 얻었다. 우리 반은 후선이도 얻었고 잘못을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다는 것도 얻었으니 아픔은 있었으나 우리들끼리는 보람 있는 한 해였다고 생각한 한 해였다. 어머니를 그렇게도 가슴 아프게 하며 굶고 지내던 가출 기간! 지금은 장마비를 맞으면서 짬뽕을 배달하는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굶지는 않겠구나!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제 또래 여자아이들이 다니는 여고에 와서 선생님을 찾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늘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감지 않아서 손이 끈적이곤 했다. 오늘도 여전히 비에 젖어 끈적이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가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아이는 "서선생님꺼 짬뽕은 도돈 안 받을께요." 그러며 씽긋 웃는다. 철도 들었구나. "그럼그럼! 안 받아야지! 나도 절대 안 준다!" 그러며 나는 짬뽕을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고 배부른 짬뽕은 처음 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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