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 | [문화저널]
【여성과문화】
우리 옛 것에는 함께 하는 희망의 소중함이 있다
예사랑 천성순씨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
(2003-07-03 15:19:34)
앞뜰에 널려 한겨울의 따사로운 햇빛을 쬐고 있는 황토염을 흠뻑 머근 광목과 명주천, 손때 묻은 고풍스런 옛가구들, 한땀 한땀 정성이 가득 벤 한지공예품. 천연염색과 한지공예품들을 시작부터 완성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전주 예사랑.
정성스런 우리 것들을 만들어낸 귀하디 귀한 손들이 모여있는 '예사랑'을 운영하고 있는 천성순씨.
전주 한지의 멋과 천연염색의 맛을 아는 그는 본디 이곳 사람이 아니다.
경상도 울진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천성순씨의 삶은 전주와 질기고도 질긴 많은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문학동인회 일에 열성이었던 그에게 편지로만 5년 넘게 만나온 전주사는 남편과의 인연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의 인연을 가져다 주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결혼생활은 전주 한지와의 인연을 맺어 주었다.
"사는데 조금 보탬이라도 되볼까 해서 시작한 부업에 불과했어요. 한지공예품들을 작은 공방에서 만들었는데 그 일이 지금의 우리 가족 모두의 '업'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죠."
처음 시작은 전주시 삼천동의 5평짜리 공방이었다. 한지공예 책을 혼자 들여다보며 쟁반, 접시, 보석함, 차받침 등을 만들어 내곤 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시작안에는 더욱 깊은 인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혼시절 장교로 근무하던 남편의 월급은 고작 12만원. 그런데 이들 부부은 '통 크게도' 3만원짜리 차를 부산에서 주문해 먹는 '호화스러움'을 누렸던 것이다.
"쌀이 떨어져 국수를 삶아 먹어도 차생활을 멈출 수는 없었어요. 어릴 적부터 물 마시듯 차를 마셨고, 처녀시절에도 용돈이 생기면 골동품을 사모으는 게 취미였죠."
그가 부업을 한지공예로 삼았던 데에는 어릴 적부터 우리 전통에 남다른 애정과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의 집에는 현대식 가구나 소품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번도 서양식, 현대식을 짜여진 가구를 들여본 적이 없고 예사랑은 단순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우리 공예품들을 파는 곳만이 아니다.
그는 물건을 구입하는 이들이나 함께 작업을 하는 이들 모두에게 예사랑의 물건의 '의미'를 더욱 중히 전했다. 자연스러움, 손이 몇배 더 가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내는 일의 소중함을 함께 담아낸다.
지금 예사랑은 한지공예품보다 천연염색품들이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지공예만을 하던 시절에는 화학 염색이 된 한지를 볼때마다 눈이 피곤할뿐만 아니라 안타까움이 느껴져 찻물로 염색을 해봤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천연염색은 광목과 명주로 옮겨지고, 힘든 황토염색까지 닿았다. 최근에는 염색한 광목에 한지배전을 한 황토 장판을 생산해 요가원이나 사찰, 황토방에 깔렸다.
뿐만 아니라 일일이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가정 부업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손수 일거리를 들고 각 가정을 방문하며 듣는 그네들의 사는 이야기는 그에게 또다른 힘이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 못지 않게 배운게 있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죠. 수작업 하는 물건들이다 보니 가정에서 부업으로 많이들 하는데 다들 어려운 분들이에요. 영세민 아파트에 살며, 남편은 실직한지 몇 년이 다 돼가고…. 제가 건네는 단 얼마의 돈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저도 나누며 사는 소중한 힘을 얻고 오지요."
적자에 허덕여도 부업하는 이들에게 건넬 돈의 날짜를 한번도 어긴 적이 없고, 심지어는 몇 년이 밀려있는 관리비며 공과금을 미리 빌려주기도 했다. 그런 탓에 딸아이에게는 '엄마는 다른 사람한테만 너그럽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예사랑의 작업은 온 가족의 '업'이 되어 있다. 옛살림 연구가로 이미 이름이 난 남편 유명상씨는 그의 일에 시작부터 지금까지 훌륭한 동업자이상의 역할을 해주고 있고, 딸 '하늘'이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한지공예품에 문양을 오려붙여 용돈을 받아쓰고 있다. 또 작업장에 있는 이들이나 부업을 하는 가정 모두 예사랑의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 이들이다.
대량생산, 디지털 시대가 와도 수공업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천성순씨. 그는 수많은 이들의 손과 노동력이 투여되는 고된 작업이지만 결국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정신적 유산이 될 거라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있다.
'뿌드득 뿌드득' 소리를 내며 황토물을 빨아들이는 천을 비벼빠는 바쁜 손놀림안에는 우리 전통과 더불어 사는 희망이 함께 물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