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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 |
[숨쉬는 미술이야기] 시이불견(視而不見) - 마음으로 보는 그림
관리자(2009-01-13 12:10:52)
시이불견(視而不見) - 마음으로 보는 그림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장>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혜원 신윤복의 이야기를 다룬 티브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더니 얼마 전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혜원의 풍속도가 포함된 전시에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수만의 관객이 몰렸다. 장사진을 이루어 입장을 기다리던 방문객들 덕에 아랫말 인근 업소들이 예기치 않은 호황을 누렸다는 후문이다. 과연 오늘날 대중 영상 매체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젊은 관람객들이 공책만한 크기의 신윤복의 실물 그림을 보고 제각각 무엇을 어떻게 느꼈을까 하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역시 신윤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한편이 개봉되었다. 두 편 모두 혜원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는 설정을 한 소설과 이야기 전개의 틀이 공통적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이 설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창작은 창작일 뿐이다. 창작을 두고 ‘역사왜곡’이니 뭐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실 그 드라마와 영화 모두 영상미가 두드러지고 그것이 우리 옛 시절 풍습이나 우리 전통 문화와 연관된 것이 많아 뿌듯한 느낌이 든다. 옛 그림을 볼 때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읽으며 봐야 제 맛이 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주었고, 몇몇 작품을 들어 그것이 그려진 배경, 상황, 기법 등을 실감나게 느껴 볼 수 있게 해준 것이 이들 드라마와 영화의 좋은 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그림,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이 넓고 깊게 살아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우리 그림을 포함한 우리 미술, 크게는 우리 문화의 맥은 일제 강점기에 끊겼고 그것이 채 복구가 안 된 채로 해방 후 서구화의 물결, 그리고 근간에는 세계화의 쓰나미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멀지 않은 과거에 전북은 서화미술의 중심지였다. 과거 주산업이 농업일 때 곡창지대 전북은 부유한 지역이었고 전국 각처에서 시인 묵객들이 몰려들어 시 짓고 글씨 쓰고 그림 그리며 시서화 일체의 경지를 추구하는 등, 훌륭한 선비들이 격조 높은 풍류를 즐기던 고장이었다. 그 때 만들어진 빼어난 서화 작품들이 대부분 산일되고 멸실되어 가고 있었기에 전북도립미술관은 개관 후 약 2년간 집중적으로 이들 작품 수집에 노력을 기울여 어느 정도 틀을 갖추어 놓게 되었다. 이제 문인화에 쓰인 제발을 해독할 능력도 없는 우리들이지만, 언젠가 우리의 전통 문화가 마땅한 대접을 받게 되어 그 글, 그 그림들이 다시 제대로 읽혀지리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편지가 든 밀봉한 유리병을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는 마음으로, 그 소중한 작품들을 모으고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이다.   우리 옛 그림에 관해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젊은 나이에 작고한 오주석님의 저서 4-5권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그림 속에 노닐다>, <단원 김홍도>, <강산무진도> 등이 그것이다 (이 중 한권을 우선 추천하라면 그것은 <한국의 미 특강>이다). 그는 주류 사학계에서 다소 백안시되기도 하였지만 그 통찰, 안목, 비판의식은 단연 탁월하고 날카로우며 무엇보다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책이나 영상 화면을 통해서나 미술관, 박물관에 방문해서 옛 그림을 접하는데 실상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 ‘시이불견(視而不見)’인 것이며 이는 그림을 마음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신윤복의 스승, 연인, 동료, 그리고 박 아무개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된 단원 김홍도라는 인물의 진면목을 오주석은 그의 그림 몇 점에 대한 상세한 읽기를 통해 전해 준다. 김홍도 걸작 속에 담긴 이야기를. 그 도상, 조형성, 역사성, 당대성 등의 맥락에서 흥미롭고 실감나게 전해 준다. 강우방 관장의 다음과 같은 추천사는 결코 공치사가 아니다. “훌륭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의 훌륭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품을 통하여 사람과 시대의 정신을 만난다. 예술과 정신과 삶이 하나인 예술품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며 마력처럼 그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오주석은 조선시대 그림들을 격조 있게 풀어나가면서 어떻게 할지를 머뭇거리는 우리를 그러한 영원의 세계 안으로 인도한다” 그는 과연 친절하고 자상하게 그림을 그린 이의 입장과 보는 이의 입장을 넘나들며 마음으로 우리 옛 그림을 보고 읽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그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옛 말을 상기시킨다. 좋은 그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연구와 분석과 관찰의 대상이기 이전에 넋을 놓고 바라보아 그것에 빠져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읽고 그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작가와 대화하는 법을 친절하게 실례를 들어 알려준다.   우리 옛 그림을 읽는 데에 관해서 몇 가지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자세하게 그 안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 옛 그림을 보는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가장 중요한 사항은 원본을 직접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옛 그림의 경우, 동양의 옛 그림에 공통적이지만 서양 그림과는 전혀 다른 투시체계를 갖는다. 화면 안에 등장한 인물의 시각에서 본 경치가 그 인물과 함께 그려지는 것이 한 예이다. 때로는 시간의 경과를 한 화면 안에 나타내기도 한다. 풍부한 상징으로 그림에 담긴 뜻이 있다(물론 이상의 특징들은 서양 옛 그림에도 왕왕 나타난다). 사실성이 서양적 기준의 그것이 아닐 뿐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나타나듯 극명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단연 독보적인 사실정신이 구현되었다. 그림으로써 외양을 닮게 모사하는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대상 내면의 정신, 진실, 기운을 담아내려 하였다. 그것이 바로 전신사조(傳神寫照),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경지이다. 오주석은, “지금 우리가 먹고 살 만은 하지만 문화며 예술은 (일제 치하에서) 타락한 양상을 이어받고 있다”고 통탄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공부 더 한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사랑하고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과연 그러하다. 그는 조선시대의 저력과 뛰어난 격조와 창의성과 감수성,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이 영위한 검소하고 도덕적이며 문화적인 삶을 상찬했다. 정말 그렇다. 그것이 일제 치하에 치밀한 기도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그 폐허 위에서, 그 몰락과 타락의 잔재 위에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고 희희락락하고 있다. 오주석은 현대의 우리 미술이 옛 그것의 맥을 잇지 못하고 그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줄곧 드러낸다. 필자의 생각도 같다. 우리의 좋은 문화유산은 너무 귀하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고 버리며 보존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 때 대거 현해탄을 건너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본을 보지 못하고는 제 맛을 알 수 없다. 게다가 문화, 감성, 관심이 빠르게 변하여 서화(書畵)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이가 갈수록 적어진다. 필자는 기대해 본다. 무척 황당하게 느껴지는 드라마, 영화지만 ‘신윤복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근간의 사건들이 의미 있는 변화를 촉발하여 우리 그림, 우리 서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3년 전 오십도 안 된 나이에 아깝게도 백혈병으로 타계한 오주석의 혼백이 지하에서 감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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