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 |
[이흥재의 마을이야기]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 원화포
관리자(2009-01-13 12:10:14)
살아있는 소부처
- 진묵대사
화포리는 만경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다. 넓은 갯벌에 갈대가 장관을 이루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다.
400여 년 전 김제 불거촌(佛居村)에 한 사내이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일옥(一玉)이고, 그가 진묵대사이다. ‘부처가 사는 마을’이란 불거촌이 지금의 만경 화포리이다.
화포리에는 진묵스님의 어머니 묘가 있는 성모암이 있다. 이 묘는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라는 명당이라 한다. 진묵스님은 자손이 없어 어머니 묘를 돌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혈자리에 모셔, 큰 시험을 앞둔 사람이나 아픈 사람들이 이 묘에 가서 향불을 올리고 성묘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게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 묘는 일 년 열두 달 항상 깨끗하게 벌초가 되어 잘 관리 되고 있다.
지금은 김효복이라는 85세 된 할머니가 16살 때 시집와서 지금껏 5代째 진묵대사 어머니 묘를 지켜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소학교를 다녀, 지금도 일본말 구구단이 더 익숙하다는 이 할머니 부모는, 아버지가 일제 때 개성에서 은행 지배인을 했고, 어머니는 해방직후 미군정청에서 통역관을 지낼 정도로 인텔리 였단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딸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배려로 “여자를 서울에 두면 못 쓴다”는 생각에 3대 독자 외아들인 법운스님과 결혼을 시켜 오늘날까지 성모암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1600여년의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수없이 많은 스님들이 있었지만, 진묵스님처럼 신이한 기적을 남긴 스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스님은 살아있는 부처, 소석가(小釋伽)라고 불리워지기도 했다. 타계한지 400여년이 지났지만, 스님에 대한 설화가 지금도 전승되어 올만큼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탄생설화부터 특별하다.
진묵대사가 태어날 때 집에서 빛이 새어나와 온 마을이 환하게 화광이 충천해서 이웃마을 사람들이 불이 난 줄 알고 불을 끄러 올 만큼 밝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술이라면 으레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술을 차로 알고 마시면 술이 아니고 차가 된다고 하면서, 진묵스님은 항상 곡차로 생각하고 마셨다. 어느 날 스님이 전주에 살고 있는 누이 집에 가는 길에 주막에 들려 곡차를 마셨다. 곡차를 마시고 난 뒤, 얼마인지 계산을 하려는데 곡차 값이 열냥이고 안주값이 스무냥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열냥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안주값 스무냥은 외상으로 하자고 했지만, 주모는 막무가내로 돈을 주던지 안주를 다시 내 놓던지 하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진묵은 고기 담았던 그릇에 물을 떠오라고 하고는, 손을 입에 넣어 산고기를 벌컥벌컥 토해내는 것이었다.
유가의 선비 봉곡 김동준에게서 주자강목 한질을 빌려, 봉서사 오는 길에 한권을 꺼내 읽고 버리고, 한권을 읽고 버리고 하다 전부 다 읽어버렸다. 길에 버린 책을 모두 회수해간 하인이 봉곡선생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다. 그 다음에 김동준이 이 사람아 책을 빌려가서는 길에 버리다니 그게 무슨 짓인가 하자, 진묵스님은 고기를 잡은 뒤에는 으레 통발을 버리는 법 아닌가 했다. 그 뒤 봉곡이 책의 내용을 물었더니 진묵은 한자도 틀리지 않고 모두 줄줄 외우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얼어나자 조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서산대사 휴정, 사명당 유정, 뇌묵 처영은 제도권에서 활동한 스님들이다. 한편 비제도권에서 민초들의 아픔과 두려움을 어루만져준 스님이 바로 진묵스님이었다.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라는 진묵스님 어머니 묘 이야기는, 묘의 벌초까지 염려한, 불가에서도 ‘孝’가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곡차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신이한 이적을 남긴 것은 민중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진묵대사의 신이한 이적들은 당시 민중들에게 희망이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진묵은 17살 때 부안 월명암에서 묵언(默言)을 시작했다. 그래서 팔년을 하루같이 돌부처마냥 포단위에 앉아서 낮과 밤을 잊고 정진을 했다. 이런 용맹 정진 후 도를 통한 진묵은 이렇게 걸림 없고 활달한 시를 읊었다.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은 이불이요 대지(大地)는 자리로다.
태산을 베개하고 저 달은 촛불 삼아,
바닷물 곡차 만들어 실컷 마셔 볼꺼나.
한잔 두잔 들이키며 세상사 모두 좋네.
크게 취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니
아뿔사 기나긴 소매 곤륜산에 걸릴라.
진묵스님은 김제 만경에서 태어나, 완주 봉서사로 출가를 해, 부안 월명암, 소양 원등암, 아중리 왜막실 일출암, 모악산 대원사 등에서 주로 활동을 한 토종 우리지역 스님이라 할 수 있다. 왜 김제 만경에서만 부설거사나 진표율사 그리고 진묵대사 같은 슈퍼스타 고승들이 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