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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 |
극단 명태 <그 이불 속의 아쉬움> 12월 24일 - 1월 4일
관리자(2009-01-13 12:06:08)
깡소주 한잔의 아쉬운 기억 <김선경  문화저널 편집위원> 포스터에는 다섯 명의 남녀가 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웃고 찡그리고 흘기고 째려보면서, 대체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게다가 제목이 ‘그 이불 속의 아쉬움’이라니. 참 ‘마이 아쉬운’ 제목이다. 아쉽기 때문에 사람들은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선다. 대체 그 이불 속의 아쉬움이라는 게 뭘까, (사실은) 잔뜩 기대하면서. 무대 위에는 동그란 탁자가 하나 놓여있고, 소주 세 병이 거의 비워져 있다.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고 있는 세 남자. 진상, 재범, 기진이다. 진상은 말한다. 나는 그 여자랑 하룻밤에 여섯 번이나 했어. 나머지 두 친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임마, 하룻밤에 여섯 번 하면 죽어. 근데 넌 안 죽었잖아. 그러니까 여섯 번 안 한 거지. 여섯 번 했냐, 안 했냐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세 친구. 사실, 진상이 여섯 번을 했든 안 했든, 이들에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들에게 중요한 건, 지금 먹고 죽으려 해도 그놈의 돈이 없다는 것이다.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세 친구는 인생이 순탄치 않아 결국 택시회사에서 다시 만났다. 30대 후반에 이르러 영업용 택시운전으로 입에 풀칠을 하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진상이 여섯 번 했다고 주장하는 그 여자는 택시 손님이었다. 한 탕 뛰고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모텔로 모시고 갔지만, 거 참, 3분 안에 끝나고 말았다. 입만 살아서 뻥은 심하지만, 사실은 무지하게 심장이 약한 남자 진상. 처음부터 이렇게 ‘진상’은 아니었으나 아는 사람(그러니까 친구의 친구의 친구쯤 되는) 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빚쟁이가 되고 말았다. 혼자만 보증을 선 것도 아니고 연대보증을 선 것인데, 영악한 사람들이 모조리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처분하는 바람에 ‘머리가 나쁜’ 진상만 홀로 ‘독박’을 쓰고 있는 것이다. 5천만 원 중에 4천8백만 원을 갚았는데도 사채 원금은 줄어들 줄 모른다. 참말로 환장할 노릇이니, 매일 깡소주를 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진은 어떤가? 중학교 때부터 ‘옆집 누나’에게 성교육을 받은 그는, 18살 나이에 애 아빠가 되고 말았다. 딸은 벌써 고등학교 3학년. 피아노를 가르쳤더니 요것이 돈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해외유학을 보내달라고 떼를 쓴다. 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돈을 버는 일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 욕심에 눈이 먼 딸내미는 돈 많은 교장 딸로 입양을 가겠다고 한다. 유학을 가기 위해 아빠와의 인연도 끊겠다는 딸. 저를 버리고 간 엄마를 대신해 금지옥엽으로 키웠건만. 기진에게 돌아온 건 씁쓸한 배신의 소주잔뿐이다. 셋 중에서 가장 ‘범생이’ 스타일로 보이는 재범. 그는 대학까지 나와서 버젓이 취직도 했었다. 밥 먹는 날보다 술 먹는 날이 더 많았을 만큼 회사에 몸 바쳐 충성했건만, 어느 날 그의 책상은 복도로 쫓겨난다. 그렇게 구조조정을 당한 그에게 갈 곳은 없었다. 자신을 대학까지 보내준 가족들의 기대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악에 바친 아내는 당장이라도 집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막장인생.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그 이불 속의 아쉬움>은 이 세 친구들의 ‘소주잔 수다’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칫 ‘주사’로 흘러버릴 수 있는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이야기들은, 그러나 극적인 구성과 탄탄한 짜임새로 인해 산만하거나 수다스럽지 않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에피소드와 감정의 편린들이 좁은 소극장 안을 훈훈하게 채운다. 그러나 공감은 딱 거기까지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이야기이다 보니, 그 이상의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너무 전형적인 패턴의 이야기는, 듣는 순간에만 고개를 끄덕일 뿐, 극장문을 나설 때까지의 감동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보증 잘못 서서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이야기, 돈 없어서 딸 유학 보내지 못하는 이야기, 구조조정 당하고 아내와 가족들 눈치 보는 이야기... 정말이지 듣고 또 들었던, 닳고 닳은 이야기들이 아닌가? 물론 <라이방>이라는 영화가 원작이고, 그것을 연극으로 각색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더 핍진한 극적 스토리가 뒷받침 됐어야 했다. 다만 전봇대(전북대), 팔복초등학교 등 전주시내 지명들이 거론되면서 현장성을 살린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토록 단조로운 이야기, 꾸밈이 없다 못해 밋밋하게 느껴질 만큼 평면적인 무대는 자칫 연극을 지루하게 끌고 갈 수도 있는데도, 주연 세 사람의 연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진상(최경성)의 연기는 전형적인 패턴을 넘어서지 못한 한계가 있고,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가 딱 들어맞지 않는 어색함도 있었지만, 극의 재미를 끌고 가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기진(김종록) 또한 아무 생각 없는 ‘택시 운짱’으로만 보였다가 막판에 딸에 대한 지극한 부성애를 간직한 캐릭터로의 반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성의 깊이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다. 오히려 재범(장재호)의 어색한 연기와 동작이 그의 극중 캐릭터와 어울리면서 가장 극적인 효과를 높여준 것 같다. 세 남자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사이사이 등장하는 여배우들의 활약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세 남자 배우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 이불 속의 아쉬움>에서는 여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압도적이었다. 짧은 순간 지나가는 연기지만, 그 상황을 장악하는 능력이나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능력이 압권이었다. 객석에서도 여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칭찬이 흘러나왔다. 사채업자를 연기한 양상아나 기진의 딸로 분한 송원의 연기는 작품의 재미와 깊이를 더해주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그나저나 이 세 남자의 앞날은 어떻게 됐을까? 택시운전해서 번 돈을 택시회사 양상무에게 맡겨놨다가 양상무가 튀는 바람에 완전히 ‘알거지’가 된 그들. 마침내 그들은 점쟁이 할머니 집을 털기로 한다. 과연 이 소심하고 파란만장한 세 남자의 ‘도둑질’은 성공할 수 있을까? 할머니 집에서 세 남자가 느끼게 될 ‘진한 이불 속의 아쉬움’의 정체는 뭘까? 그것은 끝까지 독자 여러분들의 ‘아쉬운 기억’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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