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 |
[서평]『언어의 종말』
관리자(2009-01-13 12:03:30)
문명의 쇠퇴에 대한 경고 <이동재 시인>
이 책은 ‘영어몰입교육’, ‘영어광풍’ 식의 말들이 횡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해방 이후 미국의 직간접적인 지배와 교류 관계 속에서 영어 능력이 신분상승과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해주는 통로 역할을 해온 그간의 사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나 제2 외국어로 사용하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국제어로서의 그 위상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영어 회화 능력이 국가 경쟁력의 척도처럼 인식되고 세계화의 시작이자 끝처럼 인식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모습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영어공용화론이 한쪽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잘 나간다는 대학들이 앞다퉈 전과목 영어 강의를 천명하고 그 선전에 열을 올리는 저간의 사정과 원인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전국민이 영어 조기 교육에 뛰어들어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 현재의 한심한 우리 모습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영어는 우리 사회에서 선진국의 언어이자 문명어로서 선전되고, 또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러한 분위기 대로라면 조만간 영어가 공용어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곧 한국 사회도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증가하다가 2-3세대를 지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국어가 자연스럽게 소멸되리란 사실을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사실을 언어들의 역사적 소멸과정과 그 예들을 통해서 새삼스럽게 너무 잘 확인시켜주고 있다.
역사이래 강자의 언어는 교류와 정복 과정을 통해서 확산되어 왔다. 제국의 언어는 그들의 정치적 지배력이 미치는 영토적 경계와 문화적 경계 안에서 각 지역의 언어들을 흡수하면서 지역 언어들을 대체해왔다. 한편 근대민족국가의 출현은 공식어, 국가어라는 명목으로 각자 영토 내의 언어들을 특정 언어로 통일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수많은 지역 언어와 방언들을 사라지게 하였다.(텔레비전이나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의 발달도 지역언어의 소멸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언어들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언어는 모두 5,000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내에 이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며, 200년 이내에 200개 정도의 언어, 즉 국가어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저자는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무렵 국가어들은 영어와 전쟁을 치를 것이며, 궁극적으로 영어만 사용되는 시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온 인류가 하나의 특정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의 도래는 과연 인류의 축복이 될 것인가?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언어의 소멸은 그 언어에 기록된 지식과 문화의 소멸을 의미하며, 그 언어 속에 내재한 세계관을 이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던 통찰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다른 언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얻어야할 창조성과 유연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결국 하나의 언어가 지배하는 세계는 다양성을 상실한 세계가 되어 일시적으로 번성한다고 하더라도 곧 시들어버릴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지구상의 언어들이 소멸해 가는 속도, 그리고 어떤 언어가 최후의 생존 언어가 될 것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의 모든 언어가 영어로 수렴될지, 그 자리를 중국어가 대신할지(혹시 한국어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저자는 중국어의 그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언어들 가운데 상당수가 화자의 절대적인 감소와 소멸 과정을 놓고 봤을 때 금세기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수만큼의 국가어만이 살아남는 단계를 지나서 점차 그 국가어마저 소멸해 가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에 따라 시기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국가어를 대신하는 언어가 현재로선 영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언어가 영어가 될 것인가 중국어가 될 것인가가 아니다. 하나의 지배적인 언어만이 통용되는 인류의 미래가 과연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가 문제다.
하나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가 된 인류가 오랜 인류의 염원인 평화에 이르게 될지, 저자의 말대로 다양성을 상실한 인류가 지리멸렬하다가 멸망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금 내가 좀 더 피부로 느끼는 것은 그 이전에 닥칠 한국어와 한국어 사용자들의 운명에 대한 것이다. 영어몰입교육과 정신나간 언어 정책에 의해 영어를 공용어 단계를 거쳐서 모국어로 이식하는데 성공한 현재의 한국어 사용자들의 미래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누구일지, 누구이어야만 하는 것인지 또한 궁금하다.
거시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보면 국부적인, 혹은 지역적인 문화나 문명이 점차 좀 더 큰 문명으로 통합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근대 이후 지구 문명은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언어도 몇몇 지배적인 언어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가는 동시에 다수의 지역 언어들이 소멸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강제적인 폭력이나 국가의 정책 탓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연스런 역사의 흐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앤드류 달비의『언어의 종말』은 이러한 과정이 결코 바람직한 인류의 발전 방향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인류 문명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다수 언어의 소멸은 인류의 다양성 상실로 연결되며, 인류의 다양성 상실은 결과적으로 인류 문명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상식적이고 막연한 얘기에 얼마나 많은 세속적인 인간들이 귀를 기울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의 다소 지리하고 식상한 얘기에 인류가 심각하게 귀기울일 때인 것만은 틀림없다. 사라져가는 것이 언어 그 자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재/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문학박사)하고 경기도 파주에 살면서 시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시집으로 『민통선 망둥어 낚시』, 『세상의 빈집』, 『포르노 배우 문상기』 등이 있으며, 저서에 『20세기 한국소설사』, 『침묵의 시와 소설의 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