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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정철성의 책꽂이]
미당(未堂)의 마을
문화저널(2003-07-03 15:17:11)
새해를 맞아 미당 서정주의 시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 새삼스럽게 찬사를 덧붙일 필요가 없겠지만 시를 읽기 전에 육성으로 확인한 예를 두 개만 소개한다. 김용택은 자신이 시인으로 성장해 온 과거를 회상하는 어떤 자리에서 시를 독습하던 시절 미당이 중요한 안내자였음을 기꺼이 인정했다. 김사인은 몇 년 전 여름시인학교에 와서 미당의 시적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현실 변혁과 문학적 수행이 둘이 아니었던 시절 이들 시인에게도 미당은 시를 쓰고 또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던 것이다. 십대 후반에 나도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시인선} 시리즈에 끼어 있던 {서정주시선}을 읽고 그의 시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실린 [국화 옆에서][자화상][추천사( 韆詞)][문둥이][동천] 등의 감동만으로도 이미 그에게 경배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는, 비록 선집이었지만, 시집을 통하여 미당의 시를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단순히 단편과 장편의 차이가 아니었다. 낱낱의 시편들이 서로 얽히어 의미가 조응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낀 나는 그 보이지 않는 고리들을 찾아내면서 시를, 아니 시집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기쁨을 다른 시집에서도 종종 발견하였지만 미당에 견줄만한 크기와 깊이의 울림은 몇 번밖에 더 만나지 못하였다. 시와 사람이 하나가 되기는 힘든 일이다. 이광수가 그랬듯이 미당도 정치적 격변기를 꿈결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저주처럼 달라붙은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한국 현대문학의 한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당의 업적이 커 보이면 커 보일수록 아쉬움이 더 남는 것이다. 아쉬움은 작품의 안팎에 걸쳐 있지만 입술을 빨고 시를 먼저 들여다보자. 아래의 시는 미당의 여섯 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에 첫째로 실려 있는 [신부(新婦)]이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원문에는 한자와 세로쓰기가 사용되었는데 한글과 가로쓰기로 바꾸어도 시의 이미지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미당의 시가 아름답고 허망하다고 썼다. 이 시의 분위기도 그렇다. 이상하게도 이 시는 가부장제의 횡포라든가 신부가 견디어야 했을 세월에 대한 관심을 해소시켜서 감추어버린다. 그래서 악마가 시새워서 만들어 냈을 법한 오해가 오십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매운재"와 직접 연결된다. 설화에서나 들어봄직한 구조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신화라는 표제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리라. 질마재는 고창에 있는 시인의 고향 마을이다. 신화는 비합리적 해석이 허용되는 고대인의 독특한 세계인식의 반영인데 그리 오래 묵은 것도 아닌 질마재의 이야기들을 모아 엮어 미당은 신화라는 제목을 붙였다. {질마재 신화}에는 가족 외에도 상가수(上歌手), 이생원네 마누라, 눈들 영감, 무당네 머슴 아이, 설막동이네 과부 어머니, 알묏댁, 재곤이, 한물댁, 백순문의 네 형제, 황먹보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얼핏 보아도 고은의 {만인보}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다. 한편 질마재라는 공간은 김용택이 우리에게 소개한 {섬진강}의 진메마을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질마재 신화}에는 좋은 시의 한가지 미덕이라 할 통시적 통찰이 빠져있다. 미당은 외할머니와 같은 동네의 이야기꾼에게서 전해 들었을 설화 외에도 삼국유사와 가람 이병기, 만해 한용운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중 가람이 "술만 거나하면 가끔 읊조려 찬양"했었다는 구절은 두 번씩이나 차용하고 있다. 들어보면 이렇다. 하늘에 달과 별은 소망에도 비친답네 오줌을 전라도 말로 소매라고도 하는데 들어보셨을 것이다. 항아리도 가끔 항이나 황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들어보셨을 것이다. 미당은 "소망(똥깐)"이라고 괄호를 붙여 놓고 "소망 항아리"라는 말도 행간에 쓰고 있다. 나는 소망이 오줌 항아리인 소매항이 줄어서 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맑은 밤 오줌독의 윗면이 거울을 만들어 거기 달과 별이 비친 모습을 보고 누군가 깨달았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높은 것이 내려와 쉬고 있음을 말이다. 이 짧은 구절은 천지의 혜택이 가장 비천한 곳에까지 두루 평등하게 베풀어지는 광경을 낮은 곳에 내려간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는 눈길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미당은 소망을 거울삼아 망건 밑으로 터럭을 밀어 넣던 마을 소리꾼을 소개하면서 그래서 그의 노래가 구성지던 모양이라고 덧붙이거나 "그런 데에 우리의 똥오줌을 마지막 잘 누며 지내는 것이 역시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니겠나?"라고 모호한 질문으로 비껴간다.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권위, 그리고 도덕률이 사라진 시대를 견디기 위하여 대체물을 식민자들에게 기대어 찾으려 했던 이광수에 비하면 원시적 생명력에 집착했던 미당은 생존과 시의 유지에 보다 유리한 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 선택이 식민지시대가 끝난 후에도 계속 유효했다면 책임의 일부는 시대의 몫이다. 그래도 시인의 예지가 시대를 꿰뚫어 보기를 바라는 것은 남의 덕보기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 이제 미당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때이다. 다시 그에게 절을 올린다면 우상에 대한 경배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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