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 | [문화시평]
화음과 기교가 돋보인 중후한 무대
전주 남성합창단 정기연주회
함태균 군산대 교수·음악학과
(2003-07-03 15:15:09)
또 한해가 저물어가는 경신년 12월 3일 밤 7시 30분 전주 덕진예술회관에서 전주 남성합창단의 제4회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합창단은 한 두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만들어가는 것이라 합창단을 하나 운영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데 전주 남성합창단의 단원들은 4년째 합창단을 유지하며 매년 정기연주회까지 치루어내는 것을 볼 때 이들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날은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그런데도 빈 자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관객들 모두 흡족한 표정들이었다. 특히, 남성합창단만이 갖고 있는 중후한 화음은 흔히 접할 수 있는 혼성이나 여성합창에 비해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이날 전주남성합창단의 연주는 잘 다듬어진 화음이나 섬세한 기교, 적절한 다이나믹스를 아주 능숙하게 활용함으로써 어느 전문 합창단에 못지않는 높은 연주 수준을 보여 주었으며, 전주 남성합창단의 지휘자 박상만 선생의 지도능력을 돋보이게 한 성공적인 연주회였다.
이날 연주된 거의 모든 곡들은 매우 섬세하게 처리되어 훌륭했으며, 특히 여섯 번째 무대에서의 R.Huff의 '오 거룩한 밤'은 어려운 부분을 세련되게 처리하는 지휘자의 지도력이 한층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다만 성악 전공자들의 참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조금 유감이었다.
이날의 연주회는 남성합창 외에 전주 여성합창단과 금구 초등학교 어린이 합창단이 찬조로 출연했다. 전주 여성합창단은 지난 9월 전북합창제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여성합창은 지난 9월에 있었던 연주에 비해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듯 했다. 전주 여성합창단의 구성원 모두가 30~40대의 비음악전공자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발성이나 기교면에서 다소 미흡해 보였다. 합창을 위해서 모인 이상 성실히 준비했어야 하며 청중 앞에서 책임지는 연주를 해야 했는데 이날은 이러한 책임의식이 다소 결여된 듯 했다. 평소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단원 모두가 좀더 애정을 가지고 진지한 자세를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충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깜찍한 율동을 곁들인 금구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캐롤 연주는 성탄절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 재미있는 연주였다. 그래서 청중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모두들 즐거워 보였다. 아이들이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은 언제나 유쾌한 경험이다. 아이들의 노래와 율동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해 주었다. 아마도 이런 즐거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가 보다.
이제 이 날의 주인공인 전주 남성합창단의 연주에 대해 얘기해 보자. 전반적으로 이날 전주남성합창의 연주는 모든 곡 하나 하나가 매우 만족할만한 수준이었으나, 세 번째 무대에선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합창이란 지휘자, 단원들, 반주자가 서로 호흡이 일치할 때 좋은 연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반주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날 반주자는 비교적 모든 곡의 처리를 만족스럽게 했다. 그러나 오페라 '나부꼬'의 '노예들의 합창'에서는 반주자의 전주부 연주는 다소 준비가 부족한 듯 했다. 우선 속도가 지휘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스케일도 산만했으며 이렇게 되면 그 피아노는 '반주(伴奏)'가 아니라 '방주(放奏)'가 되고 오히려 협조적 방해(協調的 放害)가 되는 것이다. 전체적인 연주를 보았을 때 전주남성합창단의 반주자는 비교적 유능한 피아니스트라는 점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보다 진일보한 반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합창에서의 피아노란 독주와는 또 다르다는 점을 잘 인식하길 바란다. 사전에 악보를 놓고 조금 더 많이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충고하고 싶다.
한가지 더 남·녀 합창단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합창에서는 무엇보다도 '음색'이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합창단의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각 파트에 성악전공자를 영입하고 그들을 각 성부의 리더로 배치하면 훨씬 좋은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며 상대적으로 선곡의 폭도 넓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음악은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전공자들의 열정만으로는 상대적으로 원하는 수준만큼 발전이 더디기 때문이다.
이상의 모든 지적들이 보완된다면 보다 이 두 합창단은 지금보다 한층 발전된 합창단이 될 수 잇다는 기대에서 주문하는 말이다. 또 연주자는 많은 아마추어보다 한 사람의 전문가를 의식하는 자세로 무대에 서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전북의 유일한 '전주 남성 합창단'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제5회 연주회를 다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