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 | [안영이노의 문화비평]
지역문화 일꾼을 위하여
안이영노(2003-06-02 12:11:36)
문화기획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으로 지역문화 활동을 담당한 문화촉매자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끈다. 하지만 지역문화의 일꾼을 어떠한 방식으로 키워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는 전문적인 기획자에 대한 상을 다시 잡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지역문화 일꾼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그와 관련하여 제시한 것이다.
교육과 축제, 운동이 일치하는 프로그램
첫째, 지역문화를 생산할 자부심 있는 인력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당장의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명감을 가진 생산인력의 육성과정은 지역주민들과 활동가들로 하여금 지역문화를 단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관계와 연대 속에서 스스로 얽어매고 짜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확인하게 된다.
또 중앙에서 전문가들이 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더 나은 것을 알기 위해 배운다든지, 외부의 거창한 사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해오던 것들은, 자신들만의 지역문화 고민이나 섬세한 활동계획을 외부의 누구도 더 잘 알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할 때 해결된다. 외부 전문가에 기대지 않고, 자신들의 사례를 좀더 공부하는 식의 세미나형 교육과정이 짜여진다면, 모두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상 이 지역을 대표하면서 역사에 남는 사례, 작지만 힘있는 사례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누구나 기획 마인드를 갖고, 에너지 넘치는 문화기획가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지역문화 활동과 관련지어 생계와 고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지역의 실정이다. 하지만 고용의 문제를 터놓고 공론화하기보다는 그 구조적 기반이 되는 지역문화의 창출에 대한 공감대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역의 실정이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할 일은 이러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인식이라는 자리의 마련이다.
따라서 지역민이 서로 관계 맺는 과정으로서, 지역 활동가와 주민이 참여하는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성 있되 철저히 민간이 만들어가고, 공개된 포럼인 동시에, 지역민들이 무상으로 지역문화 정책에 대한 질 높은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는 문화교육 프로그램만큼 중요한 기획이다. 수년에 걸쳐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 속에서 의지가 있는 주민들과 아마추어 활동가들, 그리고 지역 문화 활동가들의 인력 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이처럼 뜻있는 민간단체 지도자, 간사, 예비기획자, 여론 지도자 등이 모이는 권위 있는 포럼이 자리 잡으면 그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지역문화를 만드는 워크숍이 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이 지난한 과정이 곧 전주를 대표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셈이며, 이 프로그램이 곧 한국을 대표할 문화운동의 브랜드가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지역의 예비활동가들이 당장 생계와 고용을 해결할 수 없더라도, 의욕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 공공성을 표방하는 기획자나 문화활동가들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시장 규모가 작은 데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이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경험을 정보화하고 차츰 제작방식을 터득하고 익혀나갈 학습활동부터 준비해야 한다.
지역축제 역시 그런 '소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용이나 사활을 건 사업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 토론과 워크숍을 증진할 수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주와 전북지역 정도의 상황이면 축제와 문화 행사의 질과 수와 규모에 있어서 행복한 편이다. 민간단체간의 네트워크나 상호 행사참여를 계획해야 한다. 축제행사와 문화공간의 양자에서 우선적으로 학습효과가 높은 정교한 자원활동 프로그램이 짜여져야 한다. 행사의 기획보다 더욱 문화적 철학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자발적 참여행동 교육을 포함한 활동가 지원계획이다. 이들은 지역의 꽃이며 행사의 중심이라고들 말한다.
이들이 자율과 재량에 따라 자치할 몫, 스스로 기획하거나 기획에 참여할 몫, 조건 없이 노동력을 투여할 몫, 지역사회 구성원의 의무로서 참여하고 비판할 몫, 그리고 시간과 정력을 지불하면서 배움을 얻을 몫의 다섯 가지를 철저히 구분하고 자유로운 만큼 자부심을 가질만한 자원 전문가로서의 자기위치를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 지역내 상호견학, 지역간 탐방을 비롯한 익스턴십(externship), 좀 많은 학습효과와 현장인력의 양성을 목적으로 ‘투입’되는 인턴십(internship)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 분명 축제 하나보다 이러한 고급 운영계획을 짜는 전문가들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지역 활동가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수년에 걸쳐 그 지역현실에 합당한 교안을 스스로 짜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문가와 중앙이 배워가는 지역문화 기획
이 단계가 지나면, 이 같은 지역의 민간인력 인프라로부터 실질적인 생산자 교육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이는 아주 구체적인 지역문제, 행사, 자치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한 생산인력 교육이므로 말 그대로 지역문화 전문가 활동과정이 된다. 전문가 강사들만이 아니라 지역현장을 경험한 이들의 다양한 사례발표와 실질적 과제작업, 기획실무를 포함한 가상학습, 그리고 활동모형의 개발 등 네 가지 현실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진행되면 어느 정도 느슨한 인력 네트워크로부터, 분명한 전망과 사명감을 갖고 지역현장 일을 할 활동가 그룹이 구성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들이 만들어낸 지역문화 프로젝트와 정책적 논의들은 타 지역의 전문가가 와서 말할 수 없는 구체성과 전문성을 띄게 된다. 그 지역문화에 관한 기획과 실행에 있어서만은 중앙과 타지의 전문 기획자들이 자문 이상을 할 수 없도록 되는 것이 올바르게 성장한 지역문화의 모습이다. 아마추어 활동가와 지역전문성을 가진 문화생산자, 예비기획자가 성숙하면서 잠재적 전문가들을 확충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까.
이러한 일꾼 양성과정을 거치면, 지역축제와 문화공간에 접목하여 준비된 존재로서 활동할 수 있다. 지역축제의 제작은 인력운영에서 일정한 비율과 균형을 유지해야만 성공한다. 하나는 외지인에 대한 지역출신 활동가의 비율이다. 여기까지는 민감한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전문가에 대한 생활현장의 비율, 즉 주민자치 활동가의 비율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축제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문예 종사자와 시민운동 활동가의 비라고 하겠다. 예술창작에 머물지 않고 민간협력과 지역 내 교류, 생활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좀더 치열한 관점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큰 축제가 아니라 작은 행사들이 더 중요하다. 큰 축제를 행한 사람은 작은 것을 하기 힘들지만, 작은 행사를 원리에 따라 만들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큰 규모의 지방행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제를 비롯한 지역의 문화공간은 전시공간만이 아니라 교육공간이어야 한다. 마치 지역축제가 관광상품만이 아니라 주민자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듯 말이다. 지역주민과 활동가들이 실험실습하는 장, 프로페셔널과 함께 교류하면서 아마추어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주도적으로 생산을 행하는 마을 장터를 기획하도록 새로운 철학이 확립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로 일꾼의 배출창구인 교육개념을 확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서 동시에 지역활동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처음에는 열악한 직업적 환경에서 고용개념을 넘어서서 자발적으로 문화운동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서울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대에 비해 자본이 적게 움직이는 문화산업이나 불황 속의 문화예술계 구도로 볼 때, 문화인력의 주된 역할은 고용이 아니라 참여와 연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아마추어의 모습이 '전략적으로' 적합하다. 그것은 민간단체, 자영업을 비롯하여 각자 자신의 생업과 삶의 현장을 가진 채, 그 지역에 대해서는 타 지역의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노하우를 배우면서 키워나가는 아마추어 마인드의 전문가들이라고 하겠다. 스스로 지역적 경험을 지식으로 만드는 이들의 모습, 취미로 도전하되 프로페셔널답게 정보를 정리하는 모습, 이는 정보화와 지식사회에 알맞은 모습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