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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 | [특집]
그럼, 엄마 마음은 아니? 맹렬 엄마들의 맹렬 수다
정리, 편집 편집부(2003-07-26 11:56:44)
확실히 여자들의 수다는 셌다. 세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쉴새없이 속사포를 연발하는데, 남자들의 수다 시간보다 곱절이 소요됐다. 그러고도 좀처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30대의 막내 참가자와 50대의 베테랑 주부 사이엔 20년의 연배 차이가 있었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에는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아내와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 산다는 것의 자기 정체성 찾기에는 하나같이 묵직한 고민이 실려 있다. 50대 장지연씨는 착한 아내, 헌신적인 엄마로 살아왔지만, 나이 50이 넘으면서부터 여자로서의 삶에 회의가 왔다고 했다. 황혼 무렵, 순종하는 아내에서 맹렬 여성으로의 변신이 인상적이다. 서른여섯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40대 이숙희씨는 가정이나 결혼이 온전한 자기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가정에서 주체로 서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30대 주자 민경희씨 역시 식은밥을 혼자 해치우지 않는다. 지고지순한 엄마의 삶을 부정하거나 마땅찮아 하지는 않지만,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경계하는 신세대 엄마다. 확실히 순종적인 아내에 대한 불만과 거부감은 세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경제력 있는 아내, ‘섹시한 아내’를 요구하는 시대에 산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얽매어 자기 삶을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다고 입을 모은다. 맹렬 엄마들의 맹렬 수다를 통해 이 시대 엄마로, 아내로 산다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들여다봤다. 참석자 : 장지연(56?주부) 이숙희(49?도서관 근무) 민경희(36?독서지도 교사) 민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런 자리가 그리 익숙치는 않은데, 수다를 떠는 자리라고 하니까 부담 없이 이웃 아주머니들이랑 얘기하듯 편하게 이야기를 진행해 갔으면 좋겠어요. 우선 자기 소개부터 해야할 것 같은데, 저는 서른여섯이고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독서지도교사를 하고 있구요. 장 : 장지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48년생이에요. 2남2녀의 엄마고, 자원봉사 활동만 12년째하고 있어요. 만나서 기쁘고 반갑습니다. 젊은 분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네요. 이 : 안녕하세요. 저는 이숙자라고 하구요. 마흔하나입니다. 지금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고, 딸 둘을 둔 딸딸이 엄마에요. 반갑습니다. 저는 서른 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준비된 결혼과 준비된 엄마의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또래에 비하면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40대의 대표 주자가 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웃음) 내 딸은 일하는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민 :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오려고 생각을 조금 해봤는데, 두 분은 자신이 어떤 엄마라고 생각하세요? 장 : 저는 공부를 많이 못했기 때문에 늦게라도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2년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큰 아들이 6개월 학원 등록비를 대줬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희들 가르치시느라 고생하셨으니까, 이제 어머니가 하고 싶으신 공부 열심히 해보세요, 하는데 너무 감동했어요. 이 : 결혼은 언제하셨어요? 장 : 스무살요. (웃음) 저는 좀 일찍한 편이죠. 남편이 저보고 너무 이쁘다 , 너 아니면 절대 결혼 안한다 그래서 결혼했죠, 뭐. (모두 웃음) 이 : 그럼 사회생활은 전혀 해보지 않으셨겠네요? 혹시 억울한 적 없으셨어요? 장 : 아휴, 굉장히 억울했죠. 많이 울고 그랬어요. 그래서 늦은 나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 그래도 결혼을 일찍 하셔서 장점도 많으실 것 같아요.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모든 과정을 비교적 일찍 마친 거잖아요. 장 : 그렇긴 해요. 그래도 저는 요즘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참 부럽더라구요. 그래서 딸들도 직장생활 하면서 천천히 결혼시키고 싶었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돼야 말이죠. (웃음) 이 : 저는 서른여섯에 결혼했는데,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뒤에 결혼을 한거예요. (웃음)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준비가 다 돼 있어서 결혼도 아이도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딸만 둘인데, 애들한테 너희들이 크고 엄마가 늙으면 엄마한테 꼭 용돈을 줘라 그렇게 말해요. 너희들 남편 돈이 아니고 네가 번 돈으로 줘라, 그래요. 왜냐면 내 딸이 일을 안 한다는 건 절대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그애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장담 못하지만,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민 : 저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그 애들한테 제가 어떤 엄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제가 애들보다 모든 걸 다 잘하는 존재잖아요. 하지만 애들이 다 크면 어떨지 모르죠. 아직은 내가 더 많이 알고 힘도 세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지금은 늘 당당한 엄만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해요. 장 선생님처럼 번듯하게 키워놓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요즘은 여성들이 직업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 엄마가 건전한 직업,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아이들이 빗나갈 것 같지는 않아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이들에게 전이되는 거니까요. 그렇다고 전업주부가 그렇지 못하다는 건 절대 아니구요. 혹시 두 분 중에 가정이 싫어서 이럴땐 뛰쳐나가고 싶다, 하는 생각 가져보신 적 없으세요? 시집살이, 며느리는 되지만, 딸은 안된다? 장 : 전 있어요. (모두 웃음) 남편이 한 눈 팔거나 작은 약속이지만 너무 소홀히 여긴다고 생각했을 때요. 그런데 남편이 내가 언제 그런 약속 한적 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여자는 아이들이 있어도 남편을 보며 사는 건데, 젊을 땐 그런 일로 속상해 한 적이 많아요. 민 : 장 선생님은 너무 행복한 고민인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그런지, 나이는 아직 젊은데 생각하는 게 많이 어른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이 시어머니랑 별 무리 없이 사는걸 보고 저한테 대단하다고 그러는데, 그것 자체가 어느땐 미안하더라구요. 왜냐면 시어머니의 존재나 역할을 통해서 얻는 게 많거든요. 저희 시어머니는 지식보다는 삶의 경험이 풍부해서 그런지 현명하고 세련된 분이세요. 저희 시어머니가 아침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 저는 그때 자고 있거든요. (웃음) 이 : 처음부터 두 분 사이에 약속이 되신 거예요? 민 : 당신이 남이 하는 음식을 못드시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젓가락이 잘 안오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레 부엌일은 시어머니가 대부분 맡아 하시고, 저는 설거지하고 그런 편이에요. 이 : 좀 놀라운 경운데, 남편이 문제제기 안해요? 남편 입장에서는 왜 며느리가 안하고 시어머니를 부려먹느냐, 그럴 수 있잖아요. 민 : 그렇진 않아요. 어머니한테 말대답 안하니까 그정도로 됐다 싶나봐요. (모두 웃음) 이 : 사실 남편이 문제라니까요. 아침은 엄마가 해줄 수도 있다라고 유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걸로 아내를 책잡고 뭐라고 하니까 결국은 그게 고부갈등으로 번지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선 민 선생 남편은 현명한거지. 여러 가지 상황이나 협의가 고려되어야 하는데도, 통념이나 관습상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문제거든. 민 : 물론 갈등이 왜 없었겠어요. 저희 시어머니는 새벽 3시에 새벽기도를 가시는데, 제가 어떻게 그 시간에 맞춰 아침을 해드리겠어요. 그걸로 스트레스 엄청 받았고, 여러번 유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순간 포기가 되더라구요. 저 분도 나름대로 살아오신 삶의 방식이 있다고 이해하게 되는거죠. 저희는 아직 엄마 위치밖에 못 왔고, 장 선생님은 시어머니 입장이기도 한데, 며느님이랑 어떠세요? 장 : 아들은 저희랑 같이 살고 싶어하는데, 며느리들이 싫어하더라고. (웃음) 저도 몇 년 같이 살아봤는데, 한집에서 사니까 며느리도 그렇겠지만 저도 굉장히 불편하더라구요. 처음이야 그렇지만 한두달 지나니까 서로 편해지고 가까워지는 게 보이니까 한 집에 산다는 게 참 좋은 계기였던 것 같아요. 며느리와 시부모의 관계가 좀 더 친해지고 편안해지니까. 내 생각엔 누구나 시집을 가면 1년 정도는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또 내 딸들은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고. (모두 웃음) 민 : 시어머니의 손주 사랑은 부모보다 더 깊고 맹목적인 것 같아요. 애들이 시어머니의 사랑이나 관심을 받고 사니까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참 많아요. 먹는 음식도 된장국이다 김치다 다 잘먹게 되구요. 큰 동서는 가끔 시어머니를 불편해하는데, 저는 11년정도 같이 살다보니까 받아들이는 게 다르더라구요. 60년대를 사신 이 땅의 어머니들, 나름의 고단함이나 삶의방식이 있잖아요. 저희 시어머니도 그런 방식을 고스란히 갖고 계신 분인데, 아, 60년대를 산 이 땅의 어머니, 여자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저 분을 시어머니라고 생각 안하고 60년대를 그렇게 산 할머니다, 라고 여기면 편해져요. 장 : 민 선생, 참 착하네. (모두 웃음) ‘시집을 왔다는 것’…그 불평등과 피해의식 이 : 그러게요. 저도 결혼하고 10년간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시집을 간다고 표현하는 것, 또 여기가 내 터전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불평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존재는 무력해지고 그 집안의 일원이 돼야하고 내 행동이나 삶 자체가 그 집에 속해 있다는 게 거부감을 주는 거예요. 내 수입에 대해서도 당연히 시집의 재산으로 귀속된다는 것, 또 나 자신이 그 집안 재산의 일부가 됐다는 느낌, 시집을 갔다는 어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지내다 보니까 시댁과의 관계도 달라지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싶어요. 물론 남편이 며느리로서의 도리나 ‘윤리강령’을 요구하거나, 가족간에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 제 입장에선 일단 수적으로도 열세잖아요. (모두 웃음) 혼자라는 느낌, 그게 피해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애를 낳고 가족 사이에 그 애의 비중이 커지잖아요. 가족들 관심이 아이한테로 쏠리면서 조금씩 시댁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걸 느꼈어요. 아이는 내 자신의 일부이니까요. 그때 비로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균형감이 생기더라구요. 저는 남편한테 가끔 나도 우리 집에선 귀하게 컸다, 나한테 함부로 하지마라 그래요. 내가 남은 밥 찌꺼기나 해치우는 사람이고, 나중에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게 피해의식을 가중시키더라구요. 처음엔 그런 것에 대한 남편이나 시댁의 배려가 있어야 될 것 같아. 민 : 장 선생님은 자녀들을 그렇게 번듯하게 키워놓으셨는데, 나름의 교육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장 : 공부보다 인성교육이 먼저였어요. 공부하라고 특별히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구요. 첫째 사람이 돼라, 인사 잘 하는 사람이 돼라 그랬어요. 글자 한자 덜 알아도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라구요. 자식 자랑하면 팔풀출이라고 하지만,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아요. (웃음) 이 : 저는 애 키우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제가 가끔 하는 말이, 나이 먹을수록 우리는 이제 당할 일 밖에 안남았다 그래요. (모두 웃음) 요즘 애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잖아요. 며느리든 사위든 아무것도 못하고, 그거 다 내가 뒤치닥거리 해야 할 일 같아서 피곤해지지 않을까 싶어. (웃음) 민 : 저는 지식을 습득하기 전에 자연을 먼저 느끼고 알아야 된다고 가르쳐요. 친정이 시골인 게 저는 참 행복하고, 다행이다 싶어요. 우리집이 농사를 짓는데, 그래서 한달에 한번 정도는 꼭 친정에 가서 일을 도와요. 제가 남자일꾼만큼 일을 하거든요. (모두 웃음) 이 : 특이한 젊은 세대시네? (웃음) 장 : 그게 참 어려운 일인데…. 민 : 동네사람들이 그래요. 농사철에 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일까지 도와주니까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세요. 애들한테도 산 실습장이 되니까 체력이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여러모로 이득이 많아요. 저금 조금씩 나이 들고 철이 드니까, 나와 엄마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하는데, 두 분은 어떠세요? 이 : 우리 엄마들은 다들 농사를 많이 짓고 사셨지만, 능력이 있었어요. 농사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경제력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절대로 놀거나 무능력했던 게 아니거든요. 거기에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아이들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도 저는 참 현명한 교육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처럼 안달하지 않고 적절한 무관심을 가지면, 독립심이나 자립심을 키우는 데도 유리할 것 같구요. 지금 우리 엄마들, 지나치게 간섭하고 챙기지 않나 싶어요. 민: 우리 엄마는 그야말로 전형적 한국 엄마세요. 무졸이셨지만, 자식한테는 헌신적인 엄마, 소설속에 나오는 그런 완벽한 엄마에요. 10년동안 시어머니랑 남편이랑 한 방을 쓰면서도 불만 한번 드러내지 않고, 남편의 외도도 그냥 묵묵히 참고 견뎌내는 그런 엄마 있잖아요. 교육적으로는 무관심했지만, 완벽한 사랑을 베푸셨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엄마 생각을 하면 울컥하거든요. 사실 아이에게 너무 맹목적으로 집착하다보면 엄청 소심해지더라구요. 아이가 어떻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말이에요. 우리 여자들, 자주 엄마처럼은 안 살겠다고 이야기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내 자식한테 내가 우리 엄마처럼 완벽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죠. 그렇지만 아이 교육방식에 대한 차이는 있어요. 아이에 대해서는 완전한 사랑을 주지만, 떠받들진 않아요. 물 한잔도 아이에게 갖다주지 않아요, 갖고 오게 하지. 우리 시어머니도 옆에 아이한테 시키면 되는데, 본인이 직접 가서 가져오세요. 저는 그렇지 않아요. 사랑은 하지만 시킬 건 시키자는 거고, 식은 밥도 절대 혼자 안먹어요. 비벼먹든 말아먹든 함께 먹어요. 장 : 우리 엄마가 지금 여든여덟이신데,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우리 엄마 보면서 나는 시집 안 가려고 했거든. 아버지 시집살이가 너무 컸어요. 우리 아버지는 너무 완고했거든요. 부모 앞에선 방에서 나올 때도 뒷걸음해서 엉덩이 보이지 않게 나오고 그랬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이들한테 그렇게 좋은 교육이 아닌데도 그대로 옮겨지더라구요. 아이들이 아버지 말에 토를 달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면 절대 안되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한테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우리 애들한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은연중에 그렇게 권위적이게 되더라구요. 당신 엄마를 택할래, 나를 택할래? 민 : 남편한테는 어느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 장 : 남편하고 얘기하다 보면 항상 내가 잘못한 게 돼. (모두 웃음) 처음엔 내가 뭔가 할 말이 있고 상황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잘못을 지적하는데, 나중엔 다 내가 잘못한 걸로 끝나는 거예요. 나는 그게 너무 억울하고 스트레스야. 남편이 본질을 파악하기보다는 한 마디 가지고 트집 잡는거, 그게 견딜수가 없더라고. 이불 둘러쓰 고 우는 게 내 일이야. (모두 웃음) 나는 남편은 하늘이라고 배웠거든. 이 : 나는 딸들한테도 싸울 일이면 당당히 싸우라고 해요. 나도 귀한 딸인데, 남편이 함부로 하면 그걸 어떻게 참아요. 사실 가끔 싸우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용기를 내서 싸워요. 되도록 지는 쪽으로는 안가려구요. (모두 웃음) 언젠가 여자들끼리 나물을 캐러 나갔는데, 우리 애가 엄마 아빠가 싸웠다고 얘기하니까, 옆에서 누가 이기더냐고 묻더라구요. 애가 하는 말이 겉은 아빠가 이기는데 논리면에선 엄마가 이긴다고 하더라구요. 나는 애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는데 그 얘기 들으니까 기분이 괜찮더라고. (모두 웃음) 민 : 우린 좀 반대에요. 우리 신랑은 참아버리거든.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어머니 사랑이 깊어요. 결혼한지 3일째 되는 날 제가 그렇게 물었어요. 당신 엄마를 택할래, 나를 택할래 그랬더니, 주저 없이 엄마를 택한다고 하더라고. (모두 웃음) 그런데 그때 만일 나를 택하겠다고 했어봐, 저 인간 더 못 믿지. (모두 웃음) 이 : 질문이 잘 못됐구만. 다짜고짜 양당간에 택일을 하라고 하니... (모두 웃음) 민 선생의 경우는 시부모님이 같이 사는거지, 모신다는 표현은 안 맞잖아. 당신이 밥을 하고 당당히 노동력을 제공하고 계시니까.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면 찌그락 짜그락 할 수도 있는거고, 그러다 보면 싸울수도 있는건데, 그걸 참고 표출 안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잖아요. 사실 젊은 부부가 싸우는 건 왜 돈 못벌어 오냐, 경제적인 요소가 제일 큰 것 같아, 가치관보다는. 장 : 50대도 돈 가지고 싸워. (모두 웃음) 이 : 사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부족의 정도가 다르잖아요. 저희집도 돈이 없는 경우에 속하긴 한데, 늦게 결혼을 하다 보니까 결혼에 대해선 모든 환상을 다 접은 뒤였거든요. 내가 가정을 꾸리고, 일할 수 있고, 내가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다 싶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과의 가장 큰 갈등은 소비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느 수준만큼 소비하고자 하는가의 문제, 소비 욕구나 돈 쓰는 목록이 남편하고 엄청 다른 거예요. 남편은 옷 사는 걸 무슨 죄짓는 일처럼 생각하고, 아이들한테 인스턴트 음식 먹이는 걸 거의 죄악시 한다니까. (모두 웃음) 그게 문화의 차이더라고. 수입농산물이니 인스턴트니 남편한테는 모조리 금기가 되니까 애들은 애들대로,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고 억압이야.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몰래몰래 해요. (모두 웃음) 삶의 여유라는 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우아하고 고급스런 걸 즐기고 싶은 욕구도 있잖아요. 그 정도는 좀 용인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소비를 조절하는 문제가 앞으로도 우리집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것 같아요. 민 : 사람이 탈없이 무난히 살면 빚이 없잖아요. 사기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면 내가 원치 않는 삶이 오는 거구요. 우리 남편은 보험도 안 들어 놓은 상태에서 두 번이나 교통사고를 냈거든. 그때 참 어려웠어요. 우리 둘은 10년을 같이 살면서 가진 돈을 다 떼먹혀 보기도 했어요. 결혼 할 때 현금만 1억이 있었는데, 8천만원을 날렸다니까요. (모두 탄성) 원치 않은 삶이 오니까 그걸로 갈등하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또 지나고 나니까 그런 고통이나 좌절이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시어머니랑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결혼할 때 집이 괜찮아서 돈 걱정 안하고 살아도 되겠다 싶었는데, 웬걸요. 그거 다 소용없다니까요. (모두 우음) 예기치 못한 삶이 다가 왔을 때 서로 보듬고 도와주는 게 부부인 것 같아. 장 : 나는 오랫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했는데, 요즘은 부가가치가 있는 일을 좀 하고 싶어. 남편한테 손벌리는 게 너무 싫거든. 집안의 대소사를 불문하고 주는 돈은 항상 똑같아. (모두 웃음) 남편한테 돈 달라는 게 제일 자존심 상해. 이 : 혹시 딴 주머니 없으세요? (모두 웃음) 장 : 없으니까 그렇지. 딴 주머니 찰 여유가 있었어야지. 기회가 닿으면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민 : 돈 관리에 있어서 저희는 철저히 독립적이에요. 오히려 내가 버는 돈이 더 많으니까. 그리고 아이들 6학년까지는 과외 없이 제가 직접 가르치고 싶어요. 여자가 자기 벌이가 있으면 남편한테 기대는 심리가 적어지잖아요. 장 : 그게 30대가 다른 세대와 다른점인가봐. 나 봐, 50대는 남편만 바라보고 살잖아. (웃음) 민 : 그게 편한 거죠, 뭐. 그렇다고 장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하는 건 아니잖아요. 장 : 그렇긴 하죠. 내가 내 삶을 즐기고 있고.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운동하고 싶으면 운동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월수는 중국어하고 화목토는 운동하고, 금요일 하루 는 될 수 있는 대로 집안일이나 모임 갖고 그렇게 살거든요. 그러니까 일주일이 계속 바쁜 거예요. 좋은 아내 노릇하기 참 힘든 세상 민 : 언제 내 삶을 찾고 싶다, 뭔가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셨어요? 장 : 3년 전 가을이었데, 단풍이 눈이 부시도록 곱고 이쁘더라고. 그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게 이상하게 눈물나는거야. 내 인생이 그 낙엽하고 똑같이 황혼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길바닥에 잘 못 떨어지면 이쁘게 물든 게 하루아침에 뭉개질 거고, 숲에 떨어지면 그나마 사람들이 봐주기라도 할 것 아냐. 여태껏 집안일 하고 자원봉사일 하다보니까, 어느새 나도 낙엽이 돼버린거야.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살아야 내실 있게 살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자원봉사를 하더라도 전문성을 갖자 싶어서 중국어를 시작했어요. 민 : 굳이 돈 안 벌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되시는데요, 뭘. 장 : 내가 언제 공부한 보람을 느꼈느냐면 손주가 어느날 식구들 앞에서 할머니는 공부해야 하니까 방에 책상을 갖다놓아야 한다고 그러는거야. 그때 참 기분이 좋더라구요. 내가 공부하는 할머니라는 인상을 심어줬구나, 손주한테 그런 인상을 심어줬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싶더라고. 중국어 공부하는 사람 중에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거든. 장언니 장언니 하고 부르는데, 내가 제일 못하면 어떡해. 중간은 돼야지 싶어 집에 가서도 복습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달달달 외우는거야. 그럴때는 자식들이든 손주든 눈에 안들어와. (웃음) 민 : 목욕탕에서 매일 죽치고 있는 아줌마들 참 많은데,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웃음) 장 : 지금은 내 삶을 즐기고 누리려고 노력하는데, 그래도 남편한테 난 너무 순종적으로 산 것 같아. 말 나온 김에 흉 좀 봐야겠네. (모두 웃음) 우리 남편은 라면도 못 끓여요. (모두 탄성) 모임 없을 때는 점심도 늘 집에서 먹거든. 밥 때문에 내가 시집살이를 너무 많이 했어. 하루는 내가 나가야 되니까 당신이 끓여먹으라고 했더니, 그럼 끓이는 걸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얼마나 오래 끓였는지, 라면이 다 퍼져버리고 물이 다 쫄아버렸다고 하는거야.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나보고 네가 남편 교육을 잘 못시켜서 그래, 하더라고. (모두 웃음) 내가 얼마전에 연수차 중국을 갔었는데, 회원 중 누구도 남편이 따라가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런데 우리 남편은 나 따라 갔잖아. (모두 웃음) 당신 없는 동안 누가 나 밥해주느냐고, 며느리 해주는 밥은 안 먹는다고 하면서. 중국 가는데 남편 따라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니까.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니지. 나는 30~40대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고 싶어. 민 : 어떻게 그리 사셨대요? (모두 웃음) 그런데 요즘 30대도 참 힘든 세대에요. 좋은 아내는 경제적인 능력도 있어야지, 애들 교육도 똑소리 나게 잘 시켜야지, 거기다 육체적으로도 섹시해야 하지. 완전 수퍼우먼이 돼야 한다니까요. (모두 웃음) 요즘 남자들은 IMF다 뭐다 하면서 좀 쓰러져도 용서가 되는 분위긴데, 여자한테는 더 인색해진 사회가 된 것 같아. 어느 날 남편한테 아내로서 나 하는 게 만족스럽냐고 물었더니, 만족한다고 대답을 해요. 그래서 뭐가 만족스러운데? 밤일, 낮일? 하면서 구체적으로 물었지. (모두 웃음) 30대는 남편한테도 잘해야지, 살림 잘해야지, 또 아이들 공부 못하면 다 여자 탓이라고 하잖아요. 좋은 아내 노릇하기가 참 힘든 세상이에요. 이 : 나는 내가 좋은 아내인지는 진짜 모르겠네. 사실 그런건 신경 안써요. 왜냐면 우리는 그냥 남편이니 아내니 하는 관계보다 혈육처럼 돼버린 느낌이 들거든. 아내로서 내가 특별히 섹시해야 되겠다거나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쪽의 의무나 생각은 없어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다면, 아이들이나 남편도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거니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거든. 우선은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거죠. 민 : 제가 30대니까 30대 이야길 좀 하자면, 요즘 남편들은 여자한테 기대려는 속성이 참 강한 것 같아요. 특히 경제적으로요. 요즘 유부녀와 총각 사이에 불륜이 생기는 것도 여자가 경제력이 있어서 가능한 거라니까. (모두 웃음) 얘기가 중구난방이긴 한 것 같은데, 저는 참 재미있고 시원한 자리였어요. 두 분 어떠셨어요? 장 : 젊은 사람들 생각도 엿보고 나도 돌아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 : 저도 그래요. 딱히 결론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라 좀 정신없이 진행됐지만, 저한테는 생산적인 수다가 된 것 같아요. 진행·정리/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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