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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 | [특집]
니들이 아빠 마음을 알어? 열혈 아빠들의 열혈 수다
정리, 편집 편집부(2003-07-26 11:35:19)
아빠들의 수다도 만만치 않다. 한일 국가대표전이 열린 4월 16일 저녁. 축구 중계가 다 끝난 뒤에야 아빠들의 본격 수다가 시작된다. 50대와 30대의 열혈 아빠 사이엔 17년이라는 나이차이가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버지, 이 시대의 남편으로 어깨에 짊어진 짐은 한결같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40대 아빠 김정씨는 오늘 이 자리의 ‘낀 세대’답게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가장 유연한(?) 사고와 자세를 보여준다. 바꾸어 말하면, 갈등과 고민이 가장 많아 보이는 아빠다. 50대 아빠 양진철씨는 결혼 25년차 베테랑답게 ‘가장=선장’이라고 자신 있게 비유하며 여유있고 지혜롭게 가정생활 위기 관리법이며 교육관 등을 소개한다. 30대 아빠 한정권씨는 많이 놀아주는 아빠, 친구 같은 아빠, 그리고 가정의 중대사는 아내와 상의하는 ‘신세대’ 가장의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부엌일은 아직 ‘용납’이 잘 안되는 생각과 실천의 괴리를 겪고 있다. 공통점도 많고, 그만큼 차이도 많은 이들이지만, 그들이 좋은 아빠, 좋은 남편임은 분명해 보인다. 공개된 자리에서 저렇듯 수다를 떨어가며 가정사를 낱낱이 공개하고 있으니, 별로 부끄러울 것도 감출 것도 없다는 말일테고 그만큼 당당하고 자신 있다는 의미일테니. 메모도 열심이다. 좋은 생각들은 꼼꼼히 적어두는데, 남은 건 이제 실천이다. 가정의 달, 아빠들의 수다를 통해 이 시대 아버지로 산다는 것, 남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들춰봤다. 참석자 : 양진철(52?음악학원 운영) 김정(41?중고차 매매업) 한정권(35?보험 설계사) 한 : 반갑습니다. 기자가 이야기 소재를 대략 뽑아줬는데, 자연스레 물 흘러가듯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제일 어린 것 같은데, 먼저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프루덴셜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구요. 나이는 서른다섯입니다. 세 아이의 아빠고, 아이들은 여섯 살, 세 살, 두 살 그렇습니다. 아내는 전업주부구요. 김 : 셋이나 키우려면 힘들겠어요. 한참 바쁘실 때고. 저는 중고차 매매업을 하고 있고 나이는 마흔하나입니다. 최근 들어 직업을 세 번이나 바꿨는데, IMF 이후에 변화를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작은애가 3학년입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고, 집사람은 주부구요. 양 : 저는 21년동안 교직 생활을 하다가 지난 2000년에 퇴직하고 지금은 아중리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쉰둘이구요. 결혼을 좀 일찍해서 나이보다 애들이 큰데, 큰애가 스물다섯이고, 둘째가 스물셋입니다. 집사람은 간호사를 하다 지금은 음악교사로 있어요. 전 가족이 음악을 하고 있어요. 한 : 제 핸드폰 끝 번호가 3809인데, 제가 3남8녀 중 아홉 번째거든요. 11남매에요. (모두 탄성) 제 위로 형님하고 누나가 일곱이 있고, 아래로 동생 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집과는 환경이 조금은 달랐지 않나 싶어요. 70~80년대 식구들은 많고 가난한 전형적인 집 있잖아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지만, 형제간 우애는 각별한 편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가족 생각하면 좀 남다른 것 같아요. 형제만 11명인 속에서 살다가 지금 제가 꾸린 가족이 다섯인데 굉장히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웃음) 김 : 요즘 식으로 보면 좀 많은 편인 것 같은데요? (웃음) 아버지처럼은 안해야지…그러나 닮아가는 나 한 : 저는 지금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까 내가 어떤 아빠인지에 대한 판단은 좀 덜 여물었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아빠가 됐으면 하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저는 어릴때 아버지가 너무 어렵고 무서웠거든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한 좋은 추억거리들이 그리 많지 않구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나를 가장 가까운 친구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마지막 상담자나 조언자로 아빠를 떠올려줬으면 하는 거죠. 김 : 한 선생은 나랑 생각하는 게 비슷할 것 같아요.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니까요. 저희 아버지 세대만 해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한다거나 아기를 업는다거나 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들이잖아요. 제 아버지가 올해 칠순이신데, 저는 어릴 때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공무원이셨고 전두환 정권 때 해직당하셨다 복직하셨거든요. 아버지가 참 힘든 삶을 사셨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하지만 존경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고지식하고 엄한 모습으로 늘 다가오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 지질 않더라구요. 가끔 아버지가 저녁에 오시면 오셨어요, 인사하고는 슬금슬금 빠져나가게 되거든요. 아버지 역시 자식들과 이야기하시면서 어색해 할 때가 많으신 것 같아요. 그런걸 보고 저도 내 아이들과 친구이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가 우리한테 보이신 모습과는 다르게 키우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 살면서 얼핏 얼핏 내가 우리 아버질 참 많이 닮았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은 역시 아버지 아들이다 싶은거죠. 살아온 환경이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양 : 나도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어렵고 무서운 우리 아버지 같아선 안되겠다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문득문득 아버지를 닮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참 많아요.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해서 말을 못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버지한테 느낀 서운함들을 나도 자식들한테 그대로 하고 있더라구요. 나 스무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음악을 한다고 하니 아버지 반대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아버지는 법대 가서 판검사 되길 원했는데, 그게 그렇게 싫고 반항심이 들더라구요. 자라면서 아버지 때문에 내가 많이 힘들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니더라구요. 우리 아버지가 이런 때 굉장히 속상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마흔살 넘어서면서 절실히 와닿기 시작했는데, 그때 뒤늦게 철이 든 것 같아요. 김 : 딸들은 엄마를 많이 이해하잖아요. 남자들 역시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프로이드 심리학을 보면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연적으로 본다고 하는데, 미워하면서도 닮아간다는 걸 참 많이 느껴요. 물론 나이 들면서 이해하는 구석도 많아지죠. 제가 11년 동안 현대자동차에서 영업을 했는데, 2000년에 그만뒀거든요. 그 뒤로 전기시공회사다, 서점이다 이것저것 해보다 작년 4월부터 중고차 매매를 하고 있는데,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아버지가 해직 당하셨을 때의 심경이 가슴에 절실히 와 닿더라구요. 그때 해직당하셨는데도 집에는 이야기 안하시고 출근한다고 출근하실 때 그때의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친구들이랑 술 마시다 눈물 흘리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머니도 보고 있으면 가슴 아프지만,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강한 것 같아요. 한 :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아버지 입장을 많이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아쉽고 서운한 게 많긴 해요. 자식이 열하나인데, 왜 그렇게 많이 낳으셨을까, 11남매 모두 제대로 교육시키고 키워낼 수 없는 상황인데 조금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인생을 사시진 않으셨나 싶어 가끔 서운할 때가 있어요. 양 : 음... 그런데 아버지를 평가할 수 있는 건 좀 더 나이가 들어봐야 해요. 아버지가 어릴 때 뭔가를 해주고 그걸 받아들이는 건 거의 절대적이잖아요? 그런데 사춘기 때 반항하고 그 이후에 대립을 많이 겪는데 그때 길을 잘 잡아야줘야 하거든요. 저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나 서운함, 억눌림에 대한 반항이 좀 심했는지 남들보다 한 10년 정도 늦게 철이 든 것 같아요. (웃음) 스무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완전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더라고. 그동안 우리 아버지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겉으론 표현을 안했지만 이 세상을 어찌 살까 걱정이 되더라구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래서 남자들은 정말 건강해야 해요. (모두 웃음)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때의 그 공허감이나 허전함 공포는 참 크거든요. 20세면 성인인데도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세상에 서 있을 자신이 없더라고. 아기는 업어도, 부엌일은 용서가 안된다? 한 : 지금까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길 나눴는데, 그럼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입장은 어떠신가요? 양 : 남편과 아내의 문제는 사실 따로 다뤄져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특별히 나눌 이야기도 그리 많지 않고. 아내와의 문제는 사실 아주 단순해요. ‘장악’이라는 표현을 쓰면 여성분들한테 혼나겠지만 나는 50대라 그런지 물론 아내와 상의를 많이 하긴 하지만, 결국은 나한테 많이 의존하더라구요. 그렇게 훈련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그저 바람 안 피우고 엄한짓 안하고 서로 무시 안하고 열심히 대화하고 존중하며 살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모두 웃음) 두 분다 지금 결혼 몇 년째신가요? 김 : 저는 11년찹니다. 한 : 저는 5년째에요. 양 : 나는 25년 됐수. (모두 웃음) 5년이면 내가 볼땐 이제 겨우 한 텀 정도고, 10년쯤 되면 좀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거예요. 25년째 되니까 이제 알 건 거의 다 알게 되더라구요. 젊었을땐 여자들의 관심사가 주로 저 사람이 날 얼마나 사랑할까 하는 거고 그걸로 매일 체크당하잖아요. 김?한 : 하하하. 맞아요. 양 :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는 그게 잘 안되거든. 웬만해선 행동이나 표현으로 잘 옮겨지질 않으니까. 그런걸로 티격태격 싸우다 아이들이 생기면 애들 키우는 재미로 둘 사이에 불을 좀 삭이게 되고,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걔들이 둘 사이의 문제를 막아주거든. 그런 시기를 거치면 나중엔 결국 부부가 같은 편이 돼요. 저 녀석을 어떻게 제 갈 길로 가게 하느냐, 한편이 되어야 아이들과 대적할 수가 있거든. 요즘은 다 커서 돈만 대주면 되니까, 서로한테 조금씩 신경을 다시 쓰게 되더라구요. (웃음) 우리 부부가 둘만 산지 지금 7년짼데, 가끔 아이들이 한번씩 집에 오면 굉장히 불편하더라고. 보고 싶은거야 하루쯤 지나면 다 해결되고. 더 있으면 속으로 쟤 안가나? 그럴때도 있다니까. 김?한 : 하하하. 그렇습니까? 김 : 저도 부모님과 따로 사는데, 저녁 9시쯤 되면 그만 가봐라 하시더라구요. 그게 그런거군요? (웃음) 한 : 25년차 되신 대 선배님과 말씀 나누려고 하니까 영 옹색하고 그렇습니다. (웃음) 저는 연애를 7년했고 결혼은 5년짼데, 아직도 둘이 분유통 빨면서 살거든요. 집사람은 아이와 전쟁하는 게 굉장히 힘든가 보더라구요. 다 사내애다 보니까 셋씩이나 감당하기가 버거운가 봐요. 저도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11시쯤 들어가는데 많이 힘든게 사실이에요. 아내는 저녁 되면 전화해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데, 들어가서 아이들 보기가 저도 참 힘이 들거든요. 아내가 제일 불만스러워 하는 게 집안일을 잘 도와주질 못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진보적이고 젊은 사람이라 마음은 늘 돕고 싶은데, 몸이 안따라줘요. 애들 보는 건 괜찮은데 솔직히 부엌일은 아직 잘 안되더라구요. 아내한테 항상 미안하긴 하지만, 청소나 설거지 부엌일은 잘 내키지가 않거든요. 김 : 그런 면에선 우리 또래가 훈련이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언젠가 집사람이 외출하고 하루종일 제가 아이들을 보는데,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렇게 힘든 줄 알면서도, 막상 설거지나 아이 봐주기 하려면 큰일 해주듯 생색부터 내게 되더라니까요. 설거지는 어쩌다 한번씩 하긴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한 : 맞아요. 사실은 훈련이 전혀 안됐죠. 어릴적 부모님을 보면서 보고 배운게 전부니까요. 애들은 부모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 사고가 강해서인지 요즘은 많이 깨어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딪히는 것들이 적지 않죠. 아버지를 보면서 그런걸 배워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서 크질 못했거든요. 저희 세대는 그런 부분을 많이 깨 나가려고 하는데 현실과 생각에 괴리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개인적 결단도 필요하고, 사회 환경이나 의식도 변해야 할 것 같아요. 고부 갈등은 어려워…세월이 약이려니 김 : 기자가 ‘나는 보수적인 남편인가, 진보적인 남편인가?’ 라는 항목을 적어놓았던데, 이거 참.... 어렵더라구요. 양 : 나도 이 질문 내용을 보면서 규정하기가 참 힘들더라고. 또 ‘나는 이럴 때 가정이 싫다, 혹은 나는 이럴 때 가정의 소중함을 느낀다’ 라는 항목도 있던데, 이건 사실 우문이에요. 가정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거든. 이럴 때 가정의 소중함 느낀다 하는 것도 대답하기 참 어려워요. 아직 결혼을 안하셔서 그런 것 같아. (모두 웃음) 두 분 말씀 잘 들었는데, 우리 집사람과 나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까, 둘 다 집에 들어오면 완전 넉다운 되거든요. 겨우 일주일에 한번정도 설거지나 청소를 돕긴 하는데 결혼 초기엔 생각도 못했죠. 저는 결혼하고 어머니랑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애 키우는 건 그다지 힘들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내한테는 시어머니 시할머니를 모셔야 할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갈등의 요소가 생기더라구요. 김 : 예. 그거 참, 남자들한테 힘든 부분이에요. 부부 사이의 문제는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는데, 고부 사이에 끼면 어떻게 하질 못하겠더라구요. 어머니를 편들면 아내가 서운하고, 아내를 편들면 어머니가 서운하고, 그게 그렇더라구요. (모두 웃음) 그런 문제가 생길 때 저는 처음에 아내한테 가서는 아내를 뭐라고 하고, 어머니한테 가서는 어머니를 뭐라고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둘 다 다른 상대를 두둔한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서운해하더라구요. 고부간 갈등에서 남자들이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그런 것도 사회적으로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 이야길 다뤄놓은 책이라도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처하기가 참 난처하고 힘이 들어요. 양 : 고부간의 문제에 부닥치면 견디기가 참 힘들죠. 그때 남자들 정말로 처신 잘해야지 잘못하면 큰일나요. (모두 웃음) 어머니도 아내도 다 여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양보가 없더라고. (모두 웃음) 어른한테 결국 숙여야 하는 아내는 그 분풀이를 남편한테 하게 되고, 어머니 서운해하시는 것도 보기에 가슴 아프잖아요. 참 힘든 일이에요. 김 : 그래서 세월이 약이에요. (웃음) 양보할 것 양보하고 타협할 건 타협해 가면서 서로 길을 찾아가며 맞추게 되더라구요. 그게 남자로서는 부부간 갈등보다 더 견디기 힘들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거잖아요. 울고 싶어도 못 울고 말이죠. 한 : 아내 입장에서는 시댁과 친정에 대한 형평성에서 간혹 문제제기를 하곤 하는데요. 무슨 집안 행사나 경조사가 있을 때 시댁 식구들과 친정 식구들에 대한 대우 같은 게 다르다는 이야기죠. 아내랑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서로 각자의 집안을 간접적으로만 알다보니까 완전한 이해는 어려운 것 같아요. 가족 문제는 경험치만 있을뿐 그것에 대한 대처 교육은 부족하니까 이런 문제는 사회적인 교육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 : 예. 맞아요. 가끔 TV를 보면 주로 시어머니들이 악역을 많이 맡더라구요. 그러면 같이 보고 있다가 어느땐 둘 사이에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상해 있을 때가 많더라고. (모두 웃음) 양 : PD가 젊은가 봐? (모두 웃음) 가정의 화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건 틀림없죠. 70~80세 가량의 우리 부모세대든 지금의 40~50세 가량의 내 또래든, 또 그 밑에 자녀들 세대든, 다들 우리 세대가 제일 재수 없는 세대라고 할거에요. (모두 웃음) 다들 피해의식이 있단 말이지. 우리랑 부모 세대는 상당히 심각해요. 우리 부모 세대는 어려운 시절에 식솔들 밥 먹이는 게 제일 큰 문제 아니었어요? 많은 걸 희생하기도 했고. 우리 세대는 그럼 과연 어떻게 될까 생각이 많은데, 우린 완전히 아날로그고 애들은 디지털이야. 컴퓨터로 뭐 좀 하려면 우리는 매일 버벅대고 말이죠. 나도 젊었을 땐 날렸었는데. (모두 웃음) 그 복잡한 오디오 다 조립해 가면서 듣고. 우리 40~50대는 부모도 돌봐야 되고 자식들에게 존경받기도 참 힘든 시대를 살고 있어요. 남자들이 호주제로 얻은 게 뭐가 있지? 한 : 우리 부모세대는 양 선생님 말대로 생계에 모든 게 집중돼 있었으니까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시기는 이제 지났고, 가족과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고 여행도 다니면서 가족간의 친밀감에 더 무게를 두고 싶어요. 아이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 그래서 저는 한달에 한번은 꼭 여행을 다니거든요. 비디오도 있고 카메라도 있으니까 기록물도 남기구요. 20년 후에 우리 아이가 그걸 보면서 아빠의 사랑을 더 깊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춘기 문제가 닥쳤을 때도 아버지나 아들이나 서로에 대한 애정도 확인하고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 : 한 선생은 노력을 참 많이 하는 아빠시네. (모두 웃음) 한 선생처럼 그건 굉장히 의도적이어야 해요. 유년기의 경험은 평생을 가잖아요. 저도 아버지가 어릴 때 날 데리고 변산을 간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바다도 보고 배도 타봤거든. 그 경험은 여전히 환상적이야. 그래서 저도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운전하고 있으면 뒤에서 맨날 지들끼리 싸워대. 그러면 차 세워서 기합주고 뭐라고 하고 또 다시 출발하고. (모두 웃음)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아이들은 나하고는 다르게 별로 재미가 없나보다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그 아이들이 그걸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런 기억은 평생 남아 있는거고 정서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됐죠. 아버지는 다분히 계획적이어야 하고, 아이들의 반응에 쉽게 실망하거나 지치지도 말아야 해요. 김 : 저도 어릴 때 가족끼리 만경강으로 놀러간 기억이 나는데, 저녁 늦게 어머니가 족발을 삶아오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노력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한 : 애들 교육에 관련해 특별히 철학이라고 할 건 없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뒷받침을 잘 해주고 싶어요. 돈도 많이 벌고 싶구요. 저 돈 좋아하거든요? (모두 웃음) 돈이 충분해야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자식으로서의 도리나 형제가 많다보니 바람잘 날 없으니, 누구하나는 중심을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돈을 벌어야겠더라구요. 경제적인 건 내 세대에서 끝내고 아이들은 세상에 봉사하고 배려하면서 나보다 세상을 넓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거 말하다 보니까 돈밖에 모르는 사람 같이 되어버렸는데, 아이들이 자기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고 소외받는 사람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거죠. 저는 그 뒷받침을 충분히 하고 싶은 거구요. 김 : 사실 저도 IMF 터지기 전까지는 직장이 안정적이라 경제적인 부분을 절실하게 느낀적 이 없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갈등하면서 경제적 안정에 대한 희구를 갖게 됐죠. 앞으로 애들이 더 크면 더더욱 절실해 질 것 같구요. 교육비가 보통 만만한게 아니잖아요. 가끔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걸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못하게 할 때, 그때는 참 맘이 아프죠. 아내한테는 내색 안하고 그럴수도 있지 뭐 하는데, 남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요. 우리 세대 남자들 은 아내한테 자존심 다치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 가끔 표현을 못해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양 : 사실 어느 집안이든 경제적 문제가 가장 많을 거예요. 어느 집이나 경제적 문제가 해결 되면 가정 문제의 70~80%는 해소될거야. 그 다음 문제가 아이들 진학문제. 시험 봐 학교 들어갈 때 나 닮았니 너 닮았니 하면서 싸우잖아. (모두 웃음) 남자 자존심이란 건 어쩌면 가부장적인 습성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나는 나 스스로를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하지만 우리 나라 가정에서 남자가 100% 진보적이면 그 가정은 돌아가질 않아요. (모두 웃음) 어쩔 수 없이 50대라고 치부해버리면 할 말이 없지만, 결국 남자는 선장 아닌가요? 요즘은 간혹 여자가 더 똑똑해서 집안을 이끌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가장은 결국 집안이 어려울 때나 혼란스러울 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때 남자가 흔들리면 어렵게 되는 거예요. 경제문제 애정문제 교육문제 등등등 그걸 다 맞춰야 하니까.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 일이야. 나도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냈는지 모르겠어. (모두 웃음) 요즘 호주제 문제로 여자들이 억울하다고 하는데, 남자 역시 호주제로 얻은 게 뭐가 있어요. 어찌 보면 의무와 책임이 더 큰 거예요. 어떨 때 고독한 결단 내려야 할 때가 많잖아요. 남자 입장에서도 호주제 그거 안 했으면 좋겠어. (모두 웃음) 한 : 우리나라는 뿌리깊은 유교사회고 가부장적인 사회잖아요. 양 선생님 말씀에 동감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젊은 사람은 맞벌이 부부도 많고 생각도 예전과 많이 다르거든요. 젊은 부부 사이에서는 남자는 남자니까 힘이 세니까 하는 식의 생각은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사실 남자 혼자서만 결정해 아내한테 통보하는 식은 50~60대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둘이 합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양 : 아, 물론 그렇죠. 지금 50대도 그러다간 쫓겨나. 더 힘없어요. (모두 웃음) 한 : 다들 나이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 동시대 가장이니까 가부장제의 폐해는 벗어나려고 노력들을 하잖아요. 어차피 가부장제는 남편도 아내도 다 불편한 것 같아요. 남자는 남자대로 중압감만 커지고, 여자도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려고 하니까 서로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호주제는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김 : 저도 한 선생 생각에 동의. 커가는 아이들에게 기대치를 낮춰라 한 : 아버지로서의 권위, 엄마로서의 권위, 이제는 내용상의 권위가 더 중요해진 시대인 것 같아요. 가장이니 남편이니 하는 형식에서 이제는 내용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것 같거든요.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울 때 그걸 이겨내는 힘, 그건 다 가족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싶어요. 양 : 어릴 때부터 가족 공동의 주제를 억지로라도 하나 잡는 게 굉장히 좋더라구요. 예를 들어 탁구를 가르쳐서 틈나면 가족끼리 복식으로 게임을 한다든지, 음악 가족이면 음악 연주를 함께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한 : 참 좋은 말씀이신 것 같아요. 애들도 크면 따로 놀려고 하잖아요. 사실 부모님이랑 노는 것보다 또래랑 노는게 좋긴 하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부모자식 사이에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함께 있는 시간도 많고, 그만큼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질테니까요. 김 : 그래요. 저도 아들녀석 데리고 낚시라도 가야할 것 같네요. (웃음) 양 : 그런데 애들이 같이 놀러 안가려고 한다고 해서 절대 서운해하지 말아요.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런데 또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생기면 얼마나 배신감이 드는줄 알아요? (모두 웃음) 이론상으로는 잘 알면서도 마음은 굉장히 서운하더라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커가면 스스로 기대치를 낮춰가는 게 좋아요. (웃음) 한 : 그게 아이들이 크고 있다는 증거겠죠. 오늘 저는 두 인생 선배님들 모시고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메모해서 꼭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들도 생겼구요. 김 : 저도 두 분 말씀을 통해서 많은걸 얻고 느낀 자리였습니다. 양 : 저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여기선 그래도 제일 오래 살았으니, 두 분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행·정리/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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