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수요포럼]
지방분권 시대의 지역 문화
[ 제 3회 마당수요포럼 ]
정리 - 기획실 황경신(2003-05-01 13:25:35)
매달 지역 문화계 이슈와 일반 시사 문제를 주제로 사안의 본질과 사회 문화적 영향들을 살피고 있는 <마당 수요 포럼> 그 세 번째 순서는 '지방분권 시대의 지역 문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3월 12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에서 마련된 이날 포럼에는 전북도청 문화예술과 담당 공무원들과 지방분권운동 전북본부 관계자, 현장에서 뛰고 있는 문화활동가 등 40여명이 참여해 어느 때보다도 분권시대를 맞는 지역문화의 새로운 방향에 관한 많은 관심을 반영했다.
이번 포럼 주제는 올 들어 급격히 가열되고 있는 '지방분권'이라는 화두속에서 다시한번 '지역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지방분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이전부터 지역문화에 대한 논의들은 꾸준히 생산돼 왔으며 각 지역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점은 그 무게를 더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포럼에서는 새 정부 출범과 지방분권의 화두 아래 지역문화에 대해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고민해야 될 것은 무엇인지를 집중 거론한 자리였다. 지역문화가 바로 서야하는 당위성과 방법론적인 고민, 지방분권에 대한 다양한 의미와 해석 등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고민과 논의가 오갔다.
발제에는 지방분권운동 전북본부 문화분과에서 활동중인 이정덕(전북대 교수·문화인류학과)씨가 맡아 '문화분권과 지역문화활성화'라는 주제로 문제제기와 토론 쟁점을 제시했으며, 사회는 시민행동 21 공동대표 이재규씨가 맡았다.
이날 토론 내용을 쟁점별로 정리해 싣는다.
<발제문 요약/ 문화분권과 지역문화활성화
이정덕 (지방분권운동 전북본부 문화분과)>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지방분권 운동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지만 정부가 제시한 문화정책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문화부분은 지방분권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문화적 가치의 확산을 통한 '질 높은 삶' 구현, 문화영향평가 제도 도입, 문화생활비 소득공제, 예술인 복지기금 마련, 문화예술교육 확대 등은 문화분권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이전의 중앙집중적 문화공약의 반복이다. 문화를 예술과 공연으로 한정시켜 풍부한 삶의 영역을 제한하고 있으며 지방문화활동 및 예술활동의 황폐와, 지방문화/예술에 대한 하급적 의미부여 및 무관심을 극복할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문화분권이 갖는 주요한 의미는 문화민주화와 문화소비자의 참여확대를 통해 지역문화활성의 목적을 갖으며 이는 곧 지역의 자부심과 긍정적 자아정체감 확대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분권에 관련된 현안으로는 문화의 생산, 배포, 평가기관, 인력의 과도한 서울집중을 벗어나야 하며, 지방문화활동과 예술활동의 황폐화 극복, 지방 생산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하급의미 부여 확산 문제, 중앙문화행정의 지방문화행정통제의 지속, 지방 사이의 문화불평등의 확대 재생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문화정책과 광역/기초단체의 문화정책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국가 문화정책의 경우 문화관광부 사무, 인력, 재원의 과감한 지방이양, 산하기관과 단체의 지방분산과 민간단체의 지방분산 유도, 산하기금의 지방이양, 기금과 위원회의 지역할당제 도입, 문화균형발전을 위한 재정지원제도 도입, 지방사/지방문화/지방민속/지역예술조사 및 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광역/기초단체의 문화정책에 있어서는 공무원 별정직, 이중직제 확대를 통한 문화전문가 수혈, 문화분야 공무원 타분야 순환축소, 지방 자부심과 정체감을 느낄 수 있는 문화조사, 발굴, 문화프로그램 대폭 확대, 지방의 자체적 예술/대중예술 생산 능력 강화, 전통문화의 창의적 계승·발전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지역문화정책의 감시 및 비평 강화를 위해 지역의 각 단체나 지역대학, 언론 등의 역할 변화도 더불어 수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문화 다시 읽기로 의제 개발 우선돼야
새정부는 1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을 선정한 바 있다. 이는 ‘중앙’으로 통칭되는 ‘수도권’ 과밀현상으로 인해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불균형이 심각하고, 이에 따라 영속적 상생발전이 어렵게 됐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문화 분야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문화기반시설, 문화예술 재정 등 문화예술 분야 모든 자원의 7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특히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지역문화를 이끌어 나갈 인력조차 크게 부족한 상황이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위해 새정부가 추구해야 할 정책방향과 구체적인 과제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지역 문화현실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토론의 첫 물꼬가 트였다.
전체적인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행자부가 장악하고 있는 여러 기능들을 기초단체를 중심으로 이양하고 분산시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문화분권도 이런 논리를 원칙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발제를 맡은 이정덕 교수는 "지역의 의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미 서울에 가있는 지역의 것들을 되돌려 받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중앙과 지방으로 구분되는 문화적 식민지를 해체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지역의 문화를 다시 읽어내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시민행동 21 이종진씨는 "지역내 의제 개발이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꾸준히 준비를 해오는 작업이 중요한데, 이럴때만이 지역에서 중장기적인 의제를 개발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추진해나가야 중앙에도 필요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역사박물관 학예실장 김성식씨 또한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에 대한 의제를 개발해 그것에 맞는 대안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분권의 제대로 된 논의를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을 통해 지역 나름의 의제가 개발됐을 때 지역문화균형발전을 위한 첫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방분권 자체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선행되어야 하는 여러 문제들을 살펴보기 이전에 지역은 지역 나름대로 지역문화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인력·합리적 행정의 부재가 낳은 문화적 폐해
이날 포럼에 다수 참여한 전북도청 문화예술과 관계 공무원들은 중앙과 지역의 문화불균형 현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도내 자체에 대한 문화집중 현상과 분권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현재 지역문화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의 문제들을 제기했다.
전북도청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도내 자체에서도 문화분권이 일어나야 한다"며 "예를 들면 소리문화전당이 도민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시설이 아니고, 전주시민을 위한 시설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집권 아닌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방재정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는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거론했다. 도내 도시와 농촌에 지역에 대해 차등지원이 되지 않는 것은 결국 문화의 획일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모든 도시와 농촌에 앞다투어 똑같은 문화시설을 건립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지 못하는 전시행정의 결과를 가져오는 데에는 지방의 재정 조정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마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청 문화예술과 유철씨는 "문화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정책으로 입안하고 실행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의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며 "문화부분을 담당하는 전문직종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도청 문화분야 전문직이라면 학예연구관 1명, 전문 별정직 1명인데, 전문가의 유무차이는 아주 큰 차이를 낳는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화직이라는 것을 하나 만들어서 문화/예술/관광/홍보 등 전문적으로 나눠서 담당할 수 있는 제도같은 것부터 마련돼야 실질적인 분권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전문인력 부재가 결국은 획일화되고 지역의 특성을 담아내지 못한 문화정책을 낳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전주시정발전연구소 홍성덕씨는 "무엇보다도 중앙과 지역간, 혹은 지역과 지역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초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과 광역단체에서 해야 할 일, 중앙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우선돼야 한다"며 "문화분권에 대한 의제를 설정하고, 전라북도 지역내 문화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업이나 시책발굴을 하는데 있어서 도에서 주관할 것인가, 자치단체로 넘겨줄 것인가 등 일정한 예산 운영권을 갖고 있는 도에서 이런 역할들을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개념 구축에 기반한 대안 마련 필요
지역 문화에 대한 의제 개발과 현재 지역의 문화정책이나 정책들이 수행되는 과정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는 가운데 문화분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문화분권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제개발을 포함한 지역문화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의식과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실질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진행을 맡은 이재규씨는 "새정부는 노무현 개인에 대한 기대보다는 시대와 사회 변화의 흐름을 조율하는 데 우리의 기대가 실려있는 것 같다. 지방분권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대안을 먼저 세우는 일이 중요하고, 지역의 내부적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예산, 인력, 행정을 넘어 새로운 개념을 함께 제시하는 일이 절실한 것 같다"며 토론의 방향을 제안했다.
발제를 맡은 이정덕 교수는 "분산과 분권의 문제에서 서울의 것을 여기로 옮겨오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인력과 사무운영 방식에 대한 요구이다. 국가에서 어떤 것을 지원한다고 할 때, 우리는 국가가 원하는 입맛에 맞추기 마련이다 보니 지역 주민의 코드를 무시한채 무리한 사업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예산 결정권이 지역으로 내려와 이임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결국은 모든 정책이 주민 참여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분권이 갖는 의미를 거론했다.
공공작업소 '심심' 대표 김병수씨는 "우리가 기왕에 새로운 사고틀을 만들자는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데, 중앙정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가 기존에 갖는 문화인프라에 대한 개념을 용도폐기하거나 다른 형태로 변화해서 우리 지역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지역적 수요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집권적, 서울식 사고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과 폐해에 대해 일정의 동의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중앙집권적 문화정책의 틀에 묶여있는 논의 보다는 지역의 실제 상황에 대한 점검속에서 새로운 사고틀에 기반한 생산성있는 대안들을 제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분권운동 전북본부장을 맡고 있는 전북대 김의수 교수는 분권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대안들이 제시된 만큼 다양한 논의 구조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교수는 "전체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체계도 그렇지만, 문화분권과 같은 경우 문화예술인과 학계 이론가, 문화인들이 진지하게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아져야 할 것 같다. 중앙의 집권이 너무 강한 현재 시점에서는 지방에서 먼저 요구해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혜안을 모아내는 오늘과 같은 자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분권시대의 지역 문화'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다소 방만한 주제로 논의가 전개되었지만 지방분권과 문제와 함께 지역 문화의 현재적 위치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로 막을 내렸다. 진행을 맡은 이재규씨는 이날 자리를 마무리하며 "분권에 대한 의미 규정과 우리 지역문화의 한계와 문제점이 함께 거론되면서, 문화분권을 위한 의제설정과 대안마련을 하는 데 있어 중앙집권적인 사고의 틀부터 벗어나자는 의견과 주장은 생산성있는 오늘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며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지역문화 구축에 새로운 방향 설정이 될 수 있기를 주문했다.
-진행 및 정리: 마당 기획실
<박스>
문화전문 직종 부재·순환직제가 불러오는 탁상행정
포럼 참여 공무원들, 근무여건으로 인한 한계 토로
다수의 문화예술 담당 공무원들이 참여한 이날 포럼에서는 실제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의 그 문제점들을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가 초점이 모아지기도 했다.
탁상행정과 비전문적, 비문화적이라는 비판에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행정 시스템과 관 직제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한 관계자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을 받는 것에 이유가 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화관련 업무를 보다보면 수시로 현장확인도 해야 하고, 문화계인사들과 접촉도 하면서 마인드도 높이고 해야 하는데, 현장에 나올 틈이 없다"며 "문화에 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갈등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건 어떤 시군 문화예술과를 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공무원이라고 해도 진짜 문화예술인같이 업무를 해야 하는데, 가장 비문화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토론에 참여한 문화담당 공무원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부분은 담당분야에 대한 스스로의 전문성 여부였다. 건설직, 토목직과 같은 타부서처럼 문화부분에 대한 직종유무와 함께 순환직제가 원칙인 현재 행정 시스템에서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근무여건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부서의 전문성이 부재하는 여건안에서 전라북도 2001년 문화예술 중장기 발전계획이나 2002 전라전통문화권 조성 사업 등과 같은 굵직한 용역사업이 완료됐을 때 이에 대한 지역내 전문가들의 비판과 감시 기능이 미약한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 관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