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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 | [파랑새를 찾아서]
이름표 차는 선생님
김종필 동화작가(2003-05-01 13:22:45)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고 했던가! 나는 이번에 순전히 내 욕심에 의해서 학교를 옮겼다. 집에서 가까운 큰 학교로 말이다. 그런데 변두리 혹은 작은 것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물론 이는 업무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업무야 내 교직 생활 중에서 가장 적게 맡은 셈이니 업무 때문에 못 가르치겠단 소리는 적어도 올해는 못 할 것 같다. 나는 요즘 한 달째 이름표를 차고 다닌다. 학생도 차지 않는 이름표를 교사들 전체가 날마다 목에 걸고 다닌다. 학생들에게 누가 우리 학교 선생님인지 빨리 파악하라는 배려다. 무주 깡촌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연필로 침 묻혀 꾹꾹 눌러써서 한달 동안 찼던 5원짜리 이름표. 그리고 중·고등학생 시절 교복에 상표처럼 붙었던 명찰(?) 이후 처음이다. 출근하며 이름표를 목에 거는 느낌이 영 불편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내게는 여기가 로마인 것을. 있던 자리를 바꾼다는 것! 이 변화는 때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지만 때로는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남는다. 봄이 되어 커튼을 새로 달고 가구를 재배치하고 화분을 들여놓고 하는 것은 앞의 경우지만 직장을 옮기는 것, 새로운 단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뒤의 경우일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길러내고 직장을 자주 옮겨야 하는 교사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 직업으로 올라서 기분은 좋지만 이런 사실까지 아는 청소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보 사령장을 받고 찾아간 새 학교에서 나는 첫날부터 주눅이 들어버렸다. "여긴 학생이 학부모입니다." 불신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서운 말이다. 학생이 교사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대로가 학부모의 의견이 된단다. 대화는 없고 높은 분께 신고하는 것으로 상황을 끝낸단다. 이게 무슨 교육인가? 교실이란 원래 다양성 경연장이다. 얼굴 다르고 생각 다른 아이들을 40여명쯤 대하다 보면 여간 인내를 가지고는 참아내기 힘든 일이 많다. 이 아이들 모두가 퍽 귀한 존재들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너무 귀하다 보니 내 아이 얘기만 귀 기울여 듣는다. 담임 코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면서 아이 앞에서 담임을 탓하고 학교를 비난한다. 제발 교양을 갖추어야 할 학부모님들께 부탁하건 데 대화하자. 아이들이란 알 수 없는 존재다. 집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아이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자. 순간을 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악의 없이 과장을 하기도 한다. 어른들처럼 깊이 생각해서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의 말만 듣고 배를 쨀 수는 없지 않은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은 교육이 아니다. 어른인 부모까지 오로지 사랑하는 내 자식을 위해서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너무 가볍지 않은가? 대화하다보면 얼마나 내 아이가 빈틈이 많은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학년 선생님의 푸념이 떠오른다. '우리 아이가 왜 학급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나요?' 아이가 인기가 없어서 떨어진 것을 담임보고 어쩌라고 이런 항의 전화를 한단 말인가. 3월 반장을 뽑으면서 나는 반대 경우로 당혹했다. 학부모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때문이었다. 출마자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어중이떠중이 만만하게 덤벼드는 게 초등학교 반장 자린데 희망자가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때 반장 한 번 못 해 보았다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세상 인심 아닌가. '만수는 입때까정 한 번도 반장을 못 해 보아서 정말 불쌍합니다. 그래서 추천합니다.' 초임 때 들었던 기막힌 추천사를 잊지 않고 있던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반장을 왜 해요? 괜히 공부만 방해되지.' '반장하면 뭐가 이익이 있어요? 귀찮은 데 왜 해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귀걸이는 치렁치렁하게 걸고 다녀도 나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태세였다. 우여곡절 끝에 반 강제로 시켜놓았더니 밤에 애 엄마에게서 한숨 섞인 전화가 왔다. '반장이 되면 아이들한테 한 턱 내야 되는데 형편이 여의치 못해요.' 그래 여기 문화가 그랬구나! 내가 새로운 로마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 깜박했구나. 로마법도 따를 것만 따르자는 오기가 생겼다. 적어도 내 반 안에서만큼은 로마법을 아테네 법으로 고쳐야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실태 조사를 하며 아이와 부모가 바라는 새 학년 희망사항을 써내라고 했더니 95%가 공부를 잘 해서 중학교 진학하는 것이란다. '졸업반이니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를 정답으로 정하고 있던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복수 정답으로 인정할 것인지 문제를 다시 만들어 재시험을 볼 것인지. 사실 진단평가 결과를 보니 예전에 만났던 어느 아이들보다도 월등한 학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부모나 아이들이나 학력에 목말라 하고 있다. 학력이라는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고지를 향하여 올라가려고만 한다. 한 번쯤 산아래 경치를 보았으면 싶은데 짝꿍에게 뒤쳐질세라 노심초사한다. 학력 중심의 사고가 이렇게 뿌리깊게 박혀있어서야 반장이 무슨 소용이며 예의와 질서와 조화가 어디에 자리 잡을 수 있겠는가? 몸살을 앓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한 달이 갔다. 작은 학교에서 네 반 내 반 할 것 없이 풋상추 같은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에 익숙해 있던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월급도둑놈'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낸 시간이다. 어린이시집을 펼쳐 든다.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글쓴이의 말을 새겨보기 위해서다. 『달팽이는 지가 집이다 』는 김용택 시인이 마암분교 어린이들의 글을 모아 엮어 펴낸 책이다. 그런데 엮은이 말처럼 아이들의 글은 '작품'이 아닌 탓에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냥 보고 듣고 생각한 일상을 기록한 어찌 보면 일기에 가까운 동시들이다. 굳이 형식으로 말하자면 동시도 아니다. 줄글을 줄 바꾸고 칸 띄우기를 해서 동시처럼 썼을 뿐이다. 엮은이는 "이 책을 읽는 어른을 위하여" 라는 끝 글을 통하여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학력 지상주의에 빠져있거나, 도심의 큰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말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 주지 말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얼마나 곱고, 얼마나 소중하고 귀해 보이던지 나는 그저 기쁘고 행복한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으로 행복을 느껴야 할까? 우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저 순진무구한 어린 사람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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