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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 | [한상봉의 시골살이]
길을 잃고 길을 찾으며
한상봉(2003-05-01 13:20:34)
산골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들 중에 하나는 뭔가 '배우러' 다니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동차로 적어도 한 시간 남짓은 달려야 대전이 있고, 두 시간 남짓 걸려야 전주엘 나갈 수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이, 그 정도 대도시에 나가야 하물며 백화점 문화센터나 강습소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시골에 살아도, 살다보면 못내 배우지 못한 기술이나 공부를 하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윗집 처녀는 장날마다 돌아다니며 이동도서관 버스를 이용해서 열심히 책을 빌려 읽는다. 특히 겨울철 같은 농한기에는 근처에 도서관 하나 있음이 아주 귀한 보물 같다. 모든 문화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에 있을 때, 한겨레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목공이나 판화 같은 것을 진작에 배워둘 걸 그랬다, 싶은 때가 종종 있다. 간혹 신문 잡지에서 무슨 전시회, 박람회, 강좌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가 실리거나 광고가 나올 때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거리도 문제고, 여비도 걱정되어 헛물만 들이키고 만다. 그러다 시골살이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예술심리치료'라는 프로그램을 수강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좌는 주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지만, 전라도 광주에서도 지부가 생겨서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다. 그래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심산으로 화물차를 끌고 격주로 광주엘 다녀온다. 교육은 오후 1시 30분부터 저녁 9시 40분까지 2단계를 한꺼번에 치르고 있다. 지난 가을에 1단계를 하였고, 이번엔 2,3단계를 공부한다. 아는 친구가 이 코스를 소개해 주었는데, '예술'적 매체를 이용한다는 점이 어렸을 적에 그림을 좋아하던 기억을 되살려 주었고, '치료'적 차원은 종교적 구원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졌다. 상처받은 심혼(心魂)에게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은밀하게 갈망해 오던 심미적 감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결단'이 비교적 쉽게 이뤄졌던 것 같다. 아직도 주변에선 그것 때문에 광주까지 배우러 다닌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일단 시작했으니, 조건상 더디 가더라도 착실하게 공부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이 짓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농사를 더 줄이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얻어낼 요량에서 결정한 것이다. 며칠 전에 봄 학기 첫 수업을 받으러 광주에 갔었는데, 공부를 마치고 한밤중에 집에 가려고 하니,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방전(放電)된 것이다. 서비스 센터에 연락해서 충전을 하긴 했는데, 30분 이내에 시동을 끄면, 그동안 충분히 충전되지 못하여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으니 주의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무주까지 가기에 기름이 부족할뿐더러 88고속도로 상에는 그 늦은 시간에 문을 여는 주유소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일단 담양까지는 국도로 가서 기름을 중간에 넣고서 고속도로를 타리라 마음먹었는데, 담양 쪽에도 주유소가 없었고, 한밤중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옥과, 곡성 등의 이정표를 보다가, 호남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보이기에 무조건 들어가서 보니, 순천과 광주방면 이정표만 써 있기에 어절 수 없이 다시 광주로 되돌아갔다. 광주에서 기름을 넣고 정상적으로 88고속도로에 진입한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긴 뒤였다. 시골 국도엔 대부분 가로등이 없다. 꿈속에서 무엇인가에 쫓겨다닌 것처럼 혼란스러울 때, 내가 다시 찾기로 마음먹은 곳은 익숙한 '도시'였다. 갈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처음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가서 차근차근 생애를 다시 설계하여야 한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대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살아온 날들을 뒤로하고,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서 숨죽여 웅얼거리며 기다려 왔던 열망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심정이다. 내 몸의 고향,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 절하고, 다시 길을 걸어야 한다. 카를 융이 말한 중년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하여, 내 몸이 돌아갈 흙과 친해지고, 내 영혼이 돌아갈 한(恨)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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