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3.4 | [건강보감]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김성완 정신과 전문의(2003-05-01 13:06:37)
50대 아주머니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잠이 오지 않는다며 병원을 찾았다. 다른 과에서 검사를 받았으나 특별한 이상이 없고 치료를 해도 나아지지 않아 이웃의 권유로 정신과를 찾은 것이다. 주로 두통과 불면을 호소하였으나, 자세한 면담 결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음식을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입맛이 떨어지고, 매사 귀찮아져 손 하나 까딱하기 싫고 그저 누울 자리만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즐겨 보던 '인어 아가씨'도 요즘은 통 재미가 없어 안 본다고 한다. 아울러 작은 일에도 철렁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쉽게 두근거리곤 했다. 심할 때는 사는 게 무의미해져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던 지난 가을부터 증상이 시작되어 명절이 다가오자 더욱 심해져갔다. 면담 후 자신이 무슨 병에 걸렸냐고 물어서,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분은 단지 머리가 아플 뿐이지 우울증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 사례처럼 의학적으로 전형적인 우울 증상을 보이면서도 자신은 우울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분이 우울하다는 표현보다는 몸이 아프다거나 잠이 안 온다는 표현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울증은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지는 병이다. 먹는 재미가 없어 식사량이 줄게 되고, 자는 재미가 없어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 일하는 재미가 없어 자꾸 눕게만 되고, 사는 재미가 없어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병이 우울증이다. 아울러 신체적인 불편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하고 쉽게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또한 죄책감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초조와 불안을 경험하곤 한다. 우울증은 연령에 따른 특징이 있다. 청소년이 우울증에 걸리면 쉽게 짜증을 내고 어른에게 반항하며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 단순한 청소년기의 방황이나 비행으로 오해하기 쉽다. 노인들은 애매한 신체적 불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기억력이 떨어져 치매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비전형적인 우울증인 경우에는 식욕과 잠이 지나치게 많아지기도 한다. 우울증은 인구 10명 중 1-2명은 일생을 살면서 한 번은 경험하게 되는 아주 흔한 질병이다. 가벼운 우울기분이나 우울증상은 이보다 훨씬 흔하다. 위에 열거한 우울증상 중 4∼5가지 이상이 2주일 이상 지속되면서 사회적, 직업적 기능을 방해한다면 우울증으로 보고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벼운 감기는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이 생활 환경을 바꿔주고 잘 쉬면 나을 수 있지만 중이염, 폐렴, 뇌수막염 등의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듯이, 우울증도 방치하면 정신병적 증상, 생활기능의 심각한 손상, 그리고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한다. 특히 자살은 심각한 문제인데, 우울증 환자의 2/3가 자살을 고려하고 15%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다. 자살은 예방이 가능한데, 자살 시도의 절반 이상에서 자살하기 전에 주위의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안타깝게도 10%미만이다.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통계(2000년)에 의하면 자살이 10대에서 30대 사망 원인의 2-3위인 것으로 나타나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임과 동시에 의학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최근 WHO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연구진은 세계의 질병부담이란 연구에서 사망과 질병에 의한 장애를 고려한 질병부담 척도를 개발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부담이 가장 큰 3대 질병이 과거에는 폐렴, 설사, 출산과 관련된 질병이었으나, 2020년에는 허혈성 심장질환, 우울증, 교통사고가 3대 주요 질병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우울증과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두기 보다는 사회적 관심과 접근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문이다. 김성완|197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나주병원 정신과 전문의로 있으며, 한국누가회(CMF)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