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교사일기]
사랑하는 나의 3학년 4반 아이들
김유옥 전주 풍남중 교사(2003-05-01 12:00:40)
1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이런 날이면 더 실감이 난다. 지난 3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첫 대면을 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란다.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오늘 같은 날, 이 말 다 하면 늦어진다고 싫어 할거고, 미리 얘기좀 하려했더니 비디오 감상이네 뭐네 분위기가 안 잡혀 지면으로나마 좀 긴 종례하마.
며칠 밤을 걸쳐 엽서 한 장씩 쓰면서 너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3학년 4반 담임을 처음 맡는 날 많이 생소하고 어떻게 1년을 잘 보내볼까 걱정도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아쉬움뿐이더구나.
우선 선생님 믿고 별 탈 없이 잘 따라준 것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인정하다시피 마음씨 예쁜 학생 많아 어느 반 못지 않게 분위기 좋았던 것 너무 자랑스럽고 기특했다.
사고 칠까봐 우려했던 몇몇 친구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기만 했던 누구누구, 너무도 당당히 떠들어대던 누구누구, 말로만 공부 열심히 했던 누구누구, 학급일 앞장서 열심히 했던 누구누구, 궂은 일 나서서 마다 않던 누구누구, 성적 쑥쑥 올라 기분 좋았던 누구누구, 옆에 친구 도와주느라 고생하던 누구누구 등등, 1년간의 너희들 모습이 눈앞에 쪽 펼쳐지는 듯 하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어느 누구 하나 걱정 끼치지 않고 참 열심히 잘 해왔던 것 같다.
나빴던 것들은 우리 싹 잊어버리자. 좋은 것들만 기억하자구나. 나도 그럴 테니까 선생님한테 서운했던 것까지 전부 잊어버려. 모든 것이 다 선생님의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너희들의 애교였음을 서로 기억하자.
고등학교로 올려보내면서, 내 품에서 떠나 보내면서 꼭 기억했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
첫째, 열심히 살자. 세상은 열심히 사는 사람 편임을 기억하고 대충대충 사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자. 언뜻 보면 꾀부리고 약게 사는 사람이 잘나 보이고 영리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한테 뒤지고 마는 진리를 명심하자구나. 그래서 누가 보아도 열심히 살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자. 특히, 고교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야, 후회없는 3년이 되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돼.
둘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신경을 쓰자. 인스턴트 식품 즐기지 말고 편식하지 말고 아침 굶지 말고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틈나는 대로 걷고 운동도 하자. 건강이 유지되지 않으면 너희가 바라는 미래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말거야. 지금은 한참 때라 무심히 넘어 가곤 하지만 잘못된 습관이 가져 올 문제점을 소홀히 하다가 큰 코 다치니까 꼭 건강 유념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적당한 요행수 바라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허황된 생각 같은 것 하지말고 바른 마음으로 살자. 마음의 병은 고치기도 힘들어.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살아야 돼. 그러다 보면 마음도 정신도 건강해 질거라 믿는다.
셋째, 남을 배려하며 살자. 선생님이 종종 말한 것 기억나니? 이 세상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히 말하고 조심히 행동하고 내 주변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하자는 말. 복은 받는 게 아니라 짓는 거랬지. 기회 주어지는 대로 복을 지을 수 있도록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으며 살아보자. 선행이 차곡차곡 저축이 되면 무엇과도 빠꿀 수 없는 큰 재산이 될거라 믿는다. 이 세상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나한테 아무 이익이 되지 않음을 확실히 기억하며 살자.
넷째, 항상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내 주변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낄 때, 그 삶은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거야. 감사할 조건을 찾는 사람 찾을 줄 아는 사람으로 살길 바란다. 어느 여건 아래서라도 감사할 수 있는 행운의 소유자가 되길 바래.
다섯째, 겸손한 사람이 되자. 조물주는 모든 인간에게 다르긴 하지만 무엇인가 똑같이 주었어. 나에게만 대단한 것 준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보다 좀더 좋은 것 가졌다고 뻐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익은 벼가 고개 숙이는 것은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일 거야. 오늘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 영원하지도 않고 상대방에게 닥친 불행 역시 영원하지 않음을 잘 기억해서 어떤 경우라도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하자.
오늘 너무 많은 부탁을 했나 보다. 하지만 염두에 두도록 노력할 줄을 믿어.
사람의 삶은 잠깐이기도 하지만 먼 여행이기도 해. 조바심 갖지 말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오늘 내가 뿌린 씨앗은 반드시 내가 수확함을 잊지 말고 좋은 일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너희들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안 놓인다만 다들 잘 해줄 것을 믿는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너무 좋은 일이 생겨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데가 없을 때 나를 찾아와 자랑해. 그리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나를 기억하고 찾아 와. 그러면 기쁨은 함께 나누고 어려운 일들은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보자.
아무쪼록 늘 건강하고 너희로 인해 너희 집이 행복해지기를, 부모님의 자랑스런 아들과 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 종례 마치마.
잘가. 안녕!
지난 2월 졸업식날 아이들에게 지면으로 한 종례입니다.
떠나보내는 교사는 왠지 허전하고 순간순간 눈앞이 뿌연해 지는데도 떠나는 저희들은 그저 좋다고 떠들고 야단들입니다. 그걸 지켜보면서 괜한 짝사랑인가 하는 묘한 감정을 매번 가져 보다보니까 인제는 약아졌는지 서운하기 전에 얼른 종례하자 입니다. 그래도 훗날 은사님이라고 기억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 없는 것 아니라서 이런 글이나마 남겼나 봅니다. 다시 한번 떠나 보낸 내 학생들에게 좋은 미래가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