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다시 이창동을 생각한다
신귀백(2003-05-01 11:46:05)
이창동의 세 작품 모두 재미나 극적인 상상력과는 거리가 있어서 특별히 인덱스를 살펴서 읽어야 할 영화들은 아니다. 다리 밑에서 물고기를 잡던 추억을 전화로 울먹이는 <초록물고기>가 영등포와 일산에 대한 '공간'의 이야기라면, 손가락으로 사진 프레임을 만들던 그가 기차에 뛰어드는 <박하사탕>은 질곡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살아온 세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장애자나 사회적 부적응아를 기어이 격리시키고야 마는 <오아시스>는 우리 속에 내면화된 이기심과 차별을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파이란>의 국가대표 호구 강재에게 배 한 척이 꿈이었듯 <초록물고기>의 막동이에겐 식구들이 함께 웃음 웃고 살아갈 조그만 식당이 소박한 꿈이다. 토지자본, 학력자본이 전혀 없이 오직 맨몸뚱이가 유일한 자본이던 그의 목숨으로 맞바꾼 버드나무집 식당 뒤로 신기루처럼 떠 있는 욕망의 집합체인 일산 아파트의 마지막 장면은 조금은 도식적이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전주는 그렇지 않던가.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금구의 전주초입 그 구불구불한 길도 중학교 앞으로 반듯한 새 길이 나면서 부터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화심의 두부집은 깨끗하고 세련되어졌고 선구안이 좋으신 분들이 선점한 구이는 땅값이 빵빵하며 한 채 두 채 별장 같은 집들이 들어서는 운암도 이미 초록물고기가 사는 곳은 아니다.
장관기념으로 안방에 방영된 <오아시스>가 보여준 총천연색의 크러스트 토사물. 우리 사회가 갖고 가는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과 사악한 준거의 총체를 이창동은 식구들과 형사들을 통해 보여준다. 너 저걸 보고 그게 서냐고 묻는, 그 점잖은 사악함은 종두를 변태로 몰아넣는다. 부르주아로 편입하려는 형에게는 종두 그가 비정상적이기에 그는 다시 사람들과 격리된다. 한공주도. 이 메스꺼움은 어디서 오는가. 내숭을 들켜서일까. 권위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조롱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리얼리즘 영화의 미덕일텐데 사실 별 권력 없는 우리들이 토해낸 토사물을 가리키며 가만히, 아까 네가 먹은 것 아니냐고 이창동은 묻는다. 잔인하다.
광기에 휩쓸리던 한국현대사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울림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강요하는 영화 <박하사탕>! 이창동식 사진첩을 넘기며 떠나는 기차여행은 지나간 시대가 노스텔지어가 될 수 없는 시간들이기에 유쾌하지 않다. 오늘의 나는 당연히 역사적 축적이다. 나에게도 기타를 메고 압록 모래사장으로 엠티를 간 사진이 있다. 삶이 아름답냐면서 누구를 때리지도 않았는데 침묵하는 다수로서의 가해자였음은 인정하란다. 적어도 나는 가해자는 아니었다. 깃발을 좀 들다 숨었지만 그 사진은 없다. 고역이다. 윤동주 식으로 말하면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영화야말로 오늘날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집요한 감수성을 가진 대중매체의 전문가가 문화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활자매체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 (점잖게 말하면 전통진영일 것이고 거칠게 말하면 수구세력)에게는 그가 변태로 느껴질 것이다. 노무현 감독 이창동·강금실 주연의 '개혁의 법칙'이 막 상영되기에 앞서, 이제 막 하자는 겁니까?는 짜증도 들린다. 그가 과연 조폭에 맞장뜰 수 있을까? 진검승부가 궁금하다.
#1. 넥타이를 풀고 손수 차를 몰며 가방을 끼고 출근을 한다. 고시패스를 한 사무관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인사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동물의 왕국보다 세련된 다큐 이상은 될 것 같다. 감독? NG와의 싸움이다. 애써 찍은 것도 과감히 잘라내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건 누아르지 <오아시스>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자르는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허허로움과 꽉 참을 다 치밀히 계산하여야 한다. 베트남 스님은 화를 다스리라지만 그가 맞장뜰 상대는 초록물고기의 치사한 두목 배태곤을 넘는다. 우리들에게 불쾌와 메스꺼움을 준 그에게 더 독해지라고 주문하고 싶다. 단 어깨에 힘을 빼고. 사랑과 관용은 후일 영화에서 보여줘도 충분할 것이다.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