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특집]
신기루에 현혹되느냐 오아시스를 발견하느냐
전북 영상산업, 어디를 향하는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5-01 10:49:28)
황금알을 낳는 거위, 영상산업의 화려한 등장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구축하겠다'던 옛 안기부 건물이 세월의 강을 건너 21세기 문화 콘텐츠 산업의 메카로 거듭난다.
지난 2002년 옛 안기부 건물 부지에 둥지를 튼 정보영상진흥원은 영상산업을 핵으로 다양한 지역의 문화 자산을 경제적 수익구조로 연결하는 이른바 '전북 문화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건 상징적 전초기지다.
바야흐로 전북 영상산업은 지역 이미지와 미래를 이끌 도도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어느새 영화 촬영지로 급부상한 전주의 이미지만으로 영상산업의 알파와 오메가를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물밑에서 술렁거리는 듯 보이지만, 지방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과 전략, 그리고 영상산업에 몰려든 영상 관련자들의 발빠른 움직임은 지역의 문화지형을 뒤흔들 용트림에 가깝다.
영상산업은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감각이 결합된 영상물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영상의 영역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방송, 뮤직비디오, 웹 등을 포괄하는데 단순히 형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그 결과물들을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데 그 매력이 있다. 현대와 첨단의 이미지가 결합된 영상은 미세하게 분화된 현대인의 감각을 비집고 들어갈 유력한 미디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상품화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영화 한편과 잘 짜여진 게임 하나가 수조원의 부가가치를 남기는 '대박'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오락이나 엔터테인먼트의 차원을 넘어 '산업'의 영역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잘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영상산업이 각광받는 이유다.
전국의 각 도시들이 앞다투어 '영상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만 봐도 분명 영상산업은 21세기 신종 산업의 총아다. 전북지역도 최근 2~3년 사이에 이 같은 흐름에 적극적으로 가세하기 시작했다.
2001년 전주시는 첨단 문화산업단지로, 2002년에는 소프트타운으로 지정돼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로부터 각각 250억원과 55억원을 지원받았다. 정부 지원으로 진행되는 사업 분야는 문화콘텐츠산업이나 소프트웨어 산업, 멀티미디어사업, IT산업 등으로 그 용어부터 현란하고 복잡하게 쓰여지고 있다. 각각의 용어가 문광부와 정통부의 관리 영역과 그 기대효과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를 갖고 있지만, 크게는 영상산업(게임, 디지털 콘텐츠, 영화 및 애니메이션 등 영상물 제작) 분야와 문화 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전북의 경우 소리나 한지 등)산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옛 안기부 건물과 대우빌딩에 나뉘어져 입주해 있는 영상관련 업체들은 전주시가 전략적으로 이 같은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한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를 효과적으로 통합 관리하기 위해 전주시가 세운 건물이 정보영상진흥원이다.
전주시의 전략 산업이자 입주 업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영상물 제작 분야다. 여기에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제작, 웹디자인 업체를 지원하는 사업이 한 축을 이루고,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영상위원회 등을 통해 영화산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 또 다른 한 축이다.
영화산업, 수익에 앞서 인프라 기반이 우선
시민들이 전주 영상산업 정책의 하나로 가장 피부에 와닿게 체감하고 있는 것이 영화 분야다. 이는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영상위원회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데, 특히 전주영상위원회의 활동이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매개로 한 산업화 전략은 지난 2001년 4월 출범한 전주영상위원회의 역할이 대부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
전주를 비롯한 전북지역 각처를 각광받는 촬영지로 개발해내고 영화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영상산업위원회의 궁극적 지향이다. 촬영지 제공을 위해 통행이 많은 대로를 막는 등 시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여기서 얻어지는 경제적 수익은 만만치 않다. 영화 촬영에 참여하는 스텝진은 평균 50~70명 정도. 이들이 적어도 한달가량 체류할 경우 수천만원에서 최대 수억원까지가 지역 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번의 영화 촬영으로 얻어지는 수익인데, 최근 1~2년 사이 전북지역에서 진행되는 영화촬영이 한해 평균 15편~20편 정도로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나 뮤직비디오나 TV드라마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 못할 이익과 기대효과를 거두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영상 도시로의 지향이 비단 경제적 수익을 얻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될 것이란 목소리도 높다. 돈벌이에 급급한 산업화에 앞서 진정한 영상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화와 영상에 대한 상시적 접근과 저변확대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주시민영화제 조시돈 조직위원장은 "영화를 망라한 영상물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자연스레 소비가 되어야 산업이 되는 것인데,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지 않느냐"며 "영화나 영상에 대한 접근이 고작 디지털 워크샵 정도인 상황에서는 진정한 영상 도시로의 발전은 허울뿐이지 않겠느냐"고 꼬집는다. 일반인들에 대한 미디어 접근과 교육, 영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자연스런 수요와 소비가 일어 영상 도시의 기반이 탄탄해질 것이란 의미다.
이 같은 지적이 네명이라는 적은 인력과 한해 최대 지원액 1억5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전주영상위원회의 발목을 잡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산의 경우 활동과 실적 면에서 전주영상위원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과 협조가 뒤따르고 있어 전주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20여명의 직원과 1년 13억원이란 예산이 투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시가 영화 촬영지 제공에서 얻게 될 경제적 수익과 영화의 도시라는 이미지 제고를 기왕의 전략으로 내세운 바에야, 전주영상위원회에 대한 활발한 지원이 오히려 아쉬운 대목이다. 이 같은 정책적 지원과 함께 영화와 영상에 대한 지역민의 이해와 교육을 돕고 기본 인프라를 풍부하게 갖춰나가는 노력이 병행될 때 영상도시로의 꿈이 한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전주시가 발벗고 나선 영화 촬영지 개발과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유인책이 최근 전북도의 주요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 영화 산업은 더욱 활기를 띌 것으로 보인다. 전북도는 지난해 12월 전라북도 영상산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영상산업 발전을 위한 장기적 계획과 전망 등을 내놓을 방침이다. 지난 3월말 착공에 들어간 부안 영상테마파크 건설과 임실군 오수면 일원의 재래시장 복원 등은 190억원이 일차적으로 투자되며 이 영상 벨트는 촬영지 및 종합관광단지로 쓰여진다.
유기상 도 문화영상산업국장은 "전북의 산과 계곡을 훼손하거나 인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자연 풍광을 그대로 살려 영상테마파크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이 사업은 관련 시장이 엄청나 창구효과가 극명하기 때문에 앞으로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유력한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상산업 가운데 특히 활력을 얻고 있는 영화 산업이 영화 촬영지 제공을 통한 '관광 수입'만을 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영상 분야에 관심 있는 인력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인프라와 환경을 갖춰나가는 것도 중요한 정책으로 다져가야 할 것이란 지적은 곰곰이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게임·애니메이션의 산업화는 시기상조
영화 못지 않은 거대 시장을 형성하며 영상산업의 중요 분야로 다뤄지고 있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제작 사업 등은 사업의 특성상 위험 요소가 적지 않아 투자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
그나마 전주시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장비 지원과 사무실 임대료 절감 등의 혜택에 머무르고 있어 업체 관계자들은 전주시의 직접 투자가 아쉽다고 지적한다. 이들 업체들은 주로 기술신용보증기금의 평가를 통해 업체의 능력과 신용을 평가받고 이 평가를 토대로 은행 대출을 받게 되는데, 업체 관계자들은 이 과정을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을 참여시켜 역량을 제고할 만한 지역 프로젝트가 거의 전무하거나 있다 해도 지역 업체에 프로젝트를 맡기길 꺼려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게임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시에 제안서를 갖고 가면 경험과 경력을 먼저 따진다. 일감은 주지 않으면서 경험을 따지면 어떻게 일할 기회가 오겠느냐"며 "영상산업을 육성하고 그것을 토대로 산업화의 효과를 내려면 전주시가 일정부분 직접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에 대한 전주시의 입장도 편한 상황만은 아니다. 이현웅 전주시 정보영상과장은 "시민들의 세금을 갖고 어떤 업체를 지원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1억원 이상의 사업은 법적으로 공개입찰토록 돼 있는데, 전주 업체를 육성한다고 이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위법인데다 특혜시비를 불러올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주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민간 투자자와 은행 등을 연계한 펀드 조성 등도 고려해 볼 만한 부분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업체들 또한 업무의 특성상 밀접한 관계와 연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체간 컨소시엄 구성 등 적극적인 연대를 통한 돌파구 마련이 아쉬운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벤처 업체들을 통해 괄목할 만한 경제 수익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생존하느냐 못하냐의 절박한 상황에서 관련 업체들이 당초 전략 사업으로 내세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제작 등은 뒤로 밀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을 위해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근근히 사업체를 유지하고 있는 업체들이 적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가의 장비를 활용할 만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어 정보영상진흥원에 거액을 들여 마련해 놓은 기자재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북 영상산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힘차게 요동치고 있다. 다양한 문화콘텐츠 발굴 사업이 지역 발전을 위한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적지 않은 공력을 투여하고 있는 영상산업은 앞으로 지역 문화계의 지형도를 바꿔나갈 또 다른 신호탄이다.
그러나 지역의 영상 인프라와 지역민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거나 곳곳에 숨겨진 문화 콘텐츠들을 효율적으로 묶어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성급하게 산업화만을 좇는 자세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상만 벌려놓고 어느 곳에 어떤 음식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방만한 운영과 예산 낭비는 불 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북 영상산업은 지금, 신기루를 쫓느냐 오아시스를 찾아내느냐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