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
[이흥재의 마을이야기]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공동마을
관리자(2008-10-13 15:37:49)
진경산수 같은 ‘김동수 가옥’
조선은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이루고자 했다. 이 세상의 운행원리를 음양으로 구분하듯이 안채와 사랑채를 독립된 건물 로 나누어 남녀가 유별하다는 점을 구현했다. 사랑채와 바깥행랑채, 안채와 안행랑채를 각각 마주보며 보호하게 해서 안 과 바깥 상하(上·下)를 구분하였다. 단순하게 살림과 농사 등 생활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시대의 이념이 그대로 녹아 건축조형이 된 것이다. 김동수 가옥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처럼 금강산의 실경을 그리면서도 당대 최고의 가치였던 음 양오행의 사상을 절묘하게 표현해낸 진경산수 같다.
군더더기 없는 마당과 마당을 감싸고 있는 건물들은 무척 단순해 보이지만 그안에 배어 있는 성리학적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성리학 정신은 화려하게 꾸미는 장식을 피한다. 소박과 절제의 성리학적 미가 이 집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 다. 흙, 벽, 나무, 검정 기와 등 맑고 담백한 우리 색과 건물 자체의 기본적인 구조만으로 기능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 하고 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김명관(1755-1822)이다.
김명관의 6세손인 김동수(1912년생)가 집주인이어서 정읍 김동수 가옥이라 부른다. 光山金氏 집안의 후손으로 풍수지리 에 밝았던 김명관이 스님 한분의 도움을 받아 터를 잡고 집을 짓기 시작한 때가 17세 되던 해였다고 한다. 약관 17세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는 것도 놀라운데 10년에 걸쳐 집을 완성하였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40여년에 걸쳐 이루어낸 통일 신라의 국가적 위업인 것처럼, 개인의 집을 10년에 걸쳐 지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755년생인 김명관이, 17세인 1772년(영조 48년)에 공사에 착수하여 10년후 1782년(정조 6년)에 완성하였다. 지금의 나 이로 치면 고등학교 다닐 나이 때 집을 짓기 시작하여 대학과 군복무를 마칠 나이쯤 완공한 것이다. 220여년 지난 우리 의 안목으로 보아도 감탄할 만한 대역사를 이룬 것이다.
흔히 영조 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 하는데, 정읍의 김동수 가옥을 통하여 조선의 문예부흥을 실감할 수 있다. 10 년이나 걸려 정성들여 지은 집답게, 집 전체와 건물 하나하나의 공간 구성이 독창적이고 탁월하여, 영조 정조 시대를 담 아낸 훌륭한 그릇이라면 좀 과장일까?
아기자기한 변화나 특별한 치장은 없어도 질박한채로 조선 후기 부잣집의 모습을 빈틈없이 보여주고 있다. 당대에 손꼽 히는 아흔 아홉칸의 옛 모습을 잘 지닌 이집은, 격식이나 위엄이 아니라 오밀조밀 알뜰한 살림살이의 분위기가 물씬 풍 기는 집이다.
완전한 평지에 입지해서, 임실의 이웅재 가옥이나 남원의 몽심재 등 경사지에 입지하여 건물간의 수직적 위계가 분명한 사대부가와는 차이가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기둥과 기둥사이의 간격이 넓고 기둥의 높이 는 낮은 옛 백제 지역의 전형적인 수평적 구조의 집이다.
자형의 안채를 더 큰 자형의 안행랑이 감싸고 있다. 그 바깥에 일자형 사랑채가 놓이고 매우 큰 자형의 바깥 행랑이 사 랑채를 감싸고 있다. ㄷ자형의 건물이 확대 반복되면서 고유의 생활영역을 만들어 간다. 마당은 막힌 듯 하면서도 다음 공간으로 계속적인 흐름이 이어져, 부분부분 공간들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전체적인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 평지에 입지한 주택으로 수평적인 중첩을 잘 이루어낸 성공적인 예이다.
특이한 대칭구조의 안채는 자형 건물이다.
평야 지역에 분포하는 유형이며, 고급의 집에서 찾을 수 있다. 부엌 윗벽의 간살창 집채 옆 벽에 달린 작은 들창, 뒤편으 로 빙둘러 달린 툇마루와 부엌 뒤의 작은 나무방 찬방으로 쓰이는 마루방 등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 기능과 공간이 구 석구석 빠짐없이 배치된 안채를 빙 한바퀴 돌아보면,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모델하우스가 있을까 싶다.
이 집에서 멋을 부린 것은 여인의 눈썹처럼 휜 곡선의 나무 부재이다. 일부러 멋을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집을 지을 당시 그렇게 생긴 녀석이 목재로 들어왔고, 얹어 놓아보았더니, 모양새도 나쁘지 않고, 지붕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부실 하지도 않아, 자연스레 집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여인의 눈썹처럼 휘어진 곡선이 있다면, 겸손한 직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바로 사랑채 난간이다. 부재가 두껍 고 넓은 것도 아니다. 아무런 치장이 없는 단정한 선 하나로 사랑채 멋을 살려주고 있다.
김동수 가옥은, 화장하지 않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생얼’같은 미인의 얼굴같다. 몸매는 S라인, 얼굴은 V라인인 미인에 게 무슨 치장과 장식이 필요하겠는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품격의 건축 조형의 미를 지니 고 있다.
사랑채 뒤쪽 툇마루와 안행랑채 오른쪽 측면에 조그만 통로가 있다. 그 통로가 끝난 지점에서 10시방향으로 안채의 젊은 마님방의 툇마루가 보인다. 젊은 서방님이 결혼한지 얼마 안된 부부의 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한 통로이다.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공간 구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요즘말로 하면 비밀 엑스파일 같은 통로가 할 수 있다.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공동 마을의 오공(蜈蚣)은 지네오, 지네공 자 이다. 마을 뒷산이 지네의 형상을 닮아서 오공리가 되고, 마을 이름도 오공의 공자를 따서 공동(蚣洞)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