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
[김환표의 매체비평]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과 ‘사회적 신뢰’
관리자(2008-10-13 15:37:23)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과 ‘사회적 신뢰’
“시청자의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이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어야만 해!”
지난 8월 29일 방영된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이하 ‘소비자고발’)의 반찬 재탕편을 시청하면서 곁에 있는 아내에게 한 말이다. 물론 객쩍은 농담이었지만 다음날 점심 사 먹을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적잖은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걱정 은 현실이 됐다. 반찬 재탕편을 시청한 이튿날부터 혹 반찬을 재탕하지 않는지 자주 가는 식당의 주방을 힐끔힐끔 훔쳐 보게 됐고, 심지어 점심 시간에 식당 가는 게 두려워지는 후유증마저 겪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고발’이 내게 가져다 준 트라우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비자고발’을 시청한 후, 일상 생활에서 겪고 있는 후유증이 적지 않다. 특히 음식과 관련해서 그렇다. ‘소비자고발’이 아이템으로 삼았던 설렁탕은 물론이고, 좋아하진 않 지만 간혹 먹었던 보신탕도 멀리하게 됐다. 횟집 가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었다.
가끔은 이러다 먹을 게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마저 생겼다. 때로 진실이 거짓보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마 련이라는 말의 의미도 곱씹게 됐다. 이 프로그램이 낱낱이 파헤치는 ‘불편한 진실’은 차라리 모르고 있다면 속 편할 내용 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KBS 앞에서 ‘소비자고발’ 폐지하라고 1인 시위라고 하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겠는가.
어쨌든, ‘소비자고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미국 지식인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떠올랐다. 그는 1995년 여름에 출 간한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라고 평가하며 적지 않은 논란을 낳은 바 있는데, 소비자고발이 근본적으로 제 기하는 문제가 우리 사회의 빈약한 사회적 신뢰 지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 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사회 풍조 속에서 신뢰는 설 자리가 없기 마련인데, ‘소비자고발’은 바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도덕마저 버린 채 이윤창출을 위해서 사회적 신뢰를 배반하는 생생한 사례들도 무장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사회적 신뢰는 쌓기 힘들지만 어렵게 쌓은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는 희 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소비자고발’이 이윤추구를 위해 사회적 신뢰를 가볍게 여기는, ‘천민자본주의’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잠수함 속의 토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런데, 내일은 어느 식당에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