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문화가 정보]
시를 찾는 사람들의 향기로운 만남
아중문화의집 시창작교실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5-01 10:31:45)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의 '여승'이 대형 스크린에 뜨고, 수강생들의 시선이 일시에 스크린 앞으로 몰려든다. 성급한 시절에도 시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고, 시를 찾는 이들은 작은 창작교실에 모여 한 템포 마음을 늦춘다.
전주시 아중문화의집이 질 높은 시 창작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3월 12일 시창작 교실을 열었다. 시 한편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시인의 꿈을 품은 스물 여섯명의 수강생들, 그리고 열의를 다하는 시인 강사의 진지한 눈빛과 열정. 그들의 이야기가 화사한 봄꽃처럼 향기롭게 무르익는다.
강연호 박남준 복효근 안도현 이희중. 정갈하고 따뜻한 시어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온 시인들이 강사로 참여해 시에 대한 열망을 지닌 문학 지망생들에게 전문적인 시 쓰기와 읽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에 나섰다.
문학 동호회 개념에서 벗어나 시인들에게 직접 시창작 강의와 작품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강좌의 특징이다. 여기에 시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을 지닌 이름난 시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적지 않은 기쁨이다.
수강생들은 당초 아중문화의집이 계획했던 인원보다 많은 26명. 시가 가진 여전한 매력 때문이다. 조각가로부터 시작해 시낭송회 회원, 평범한 주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역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거나 시집을 낸 경력이 있는 '수준급' 수강생들도 눈에 띈다.
최근 이희중 시인 등과 함께 시 창작 입문서『시창작이란 무엇인가』(화남)를 펴낸 강연호 시인(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강의가 있던 3월 19일 저녁. 강 시인은 백석의 '여승'을 시작으로 시 쓰기의 다섯 단계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를 쓰는 데에는 다섯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시의 종자'라고도 말하는 착상이고, 두 번째는 정황 혹은 상황의 전개, 세 번째는 일상적 글쓰기와의 차별화를 가장 뚜렷이 하는 표현의 밀도, 네 번째는 행과 연의 구성, 다섯 번째는 수정과 퇴고입니다. 백석의 '여승'은 소설로 삼는다면 별다른 줄거리가 아닐 수도 있는데, 이런 시의 요소와 단계를 밟으면서 아름답고 절절한 언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강 시인은 이날 기성시인의 작품과 수강생의 작품을 선별해 강평과 첨삭 지도를 진행했다. "좋은 시는 열정과 꾸준한 습작에서 나온다"는 강 시인은 "생각보다 수강생들의 진지함이나 수준이 높아 바짝 긴장하게 된다"며 뿌듯해한다.
"수강생들이 보내온 작품들이 수준이 높고 시에 대한 열정이 보여 흐뭇하다고 하면 좀 건방지고, 기분이 참 좋습니다. 수강생들의 분위기가 기대 이상이라 대충대충 못할 것 같아요. 전주뿐만 아니라, 군산이나 익산, 심지어 대전에서까지 강의를 들으러 올 정도니까요."
강좌는 5월 28일까지 이어지며, △시창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시읽기와 시쓰기 △시적 상상력과 시창작의 단계 △이미지와 비유 △주제의 구현과 소재의 설정 △화자와 어조 △제목 붙이기/시와 삶 등으로 진행된다.
전문적인 시 쓰기를 위해 시의 실제를 배우러 오는 문학 지망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시심'을 기르기 위해 '훈련'에 나선 이들도 있다. 조각가 소찬섭씨는 감성을 기르기 위해 이번 강좌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조각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모든 예술의 바탕은 감성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시 창작 강의가 도움이 많이 되고 있고, 조각이든 시든 맥이 통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아중문화의집에서는 시쓰기 강의에서 영역을 넓혀 오는 6월에는 소설 창작 강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시나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은 높지만 혼자서 독학(?)하거나 동호회 활동에서 글 쓰기의 체계를 배울 수밖에 없는 문학 지망생들에게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강좌를 제공함으로써 그 갈증을 풀어주겠다는 의도에서다.
대형 스크린에 수강생 중 '누군가'의 창작 시가 소개된다. 강사의 배려(?) 덕분에 창작인의 이름이 밝혀지지는 않지만, 수강생들과 시인 강사가 시에 대해 토론하고 평을 하는 속에서 '누군가'의 시심이 여물고 풍부해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