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
[문화현장] 군산개복동 거리예술제
관리자(2008-10-13 15:27:16)
텍사스촌 개복동, 예술의 거리를 꿈꾼다
지난 2002년 1월 29일 군산시 개복동 윤락가 속칭 ‘텍사스촌’에서 발생한 화재는 꽃다운 나이의 열두 명 여성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화기를 비롯해 기초적인 소방설비조차 찾아볼 수도 없었던 이 곳의 출입구는 이중 잠금장치로 굳게 잠겨 있 었다. 한평도 채 되지 않은 쪽방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열두 명의 애꿎은 생명들을 떠나보낸 후에서야 우리는 이 곳에서 사그러진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보았다. 성매매여성의 인권문제를 우리 사회에 던진 ‘텍사스촌’의 화 재사건은 성매매여성의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그날 이후 개복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꽃 같은 나이의 열두 명 한 많은 삶을 삼켜버린 그곳이 지금 변신을 꿈꾸고 있다.
화창하다 못해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에서는 스멀스멀 더위가 기어 오른다. 개복동 거리의 9월은 적막했다. 거리예술 제를 알리는 펼침막과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만국기들만이 이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화재현장이었던 개복동 집창촌입구는 유리문으로 골목자체가 막혀있었다. 참사가 발생했던 건물은 이층높이의 아이보리색 페인트가 칠해진 합판으로 덧씌워져 있고, 골목을 가로막은 유리문 사이로 보이는 좁은 골목길에는 쓰레기 만이 가득하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그저 철거예정인 동네정도로만 보일 따름이다. 이렇게 기억은 희미해지고 잊혀져 가 는 것일까.
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 개복동에는 선술집과 다방들이 있어 지역의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예술가들 이 떠나자 그 자리는 이십여 년 동안 정육점 불빛과 호객하는 아가씨들의 목소리, 술 취해 배설구를 찾는 남자들의 토악 질이 거리를 뒤덮었다. 설상가상 화재 사건 이후에는 아예 인적이 없는 쓸쓸한 거리로 남았다. 그런데 지금, 아이러니하 게도 이곳에는 너무도 장대한 두 개의 교회가 지키고 서 있다.
이곳 개복동에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지난 6월 처음으로 한갤러리를 오픈한 한상숙대표는 “지금은 아직 시작이라 불과 3개의 갤러리밖에는 없지만 올 해 안으로 10여명의 작가들이 입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복동의 예술촌 시대 를 예견한다. 그러면서도 우려를 놓지 않는다. “단순히 작가들이 모이기만 한다고 예술촌 또는 예술의 거리가 되지는 않아요. 지역주민들의 협조도 필수적이지요. 벌써부터 임대료가 올라가고 있는 등 부작용도 있어요.”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에서는 정착하는 것 부터가 쉽지 않다.
충남 서천에서 온 구영손씨는 개복동의 옛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예전에는 정말 번화가였어요. 국도극장을 비롯 해서 서천에서 배타고 와서 영화구경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거리의 변신 을 기대했다. “이렇게 화랑도 생기고 하니 다시 개복동으로 구경 나설 일이 생길 수 있겠네요. 홍보가 잘돼서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어요.”
개복동 일대를 같이 둘러 본 군산대 김성환 교수는 “집창촌의 기억도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는 돈 주고도 못 살 기억이 다. 아픈 기억이지만 이것을 잘 활용해서 특색 있는 거리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에 입주하는 작가들도 개복동만의 분위기와 문화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야만 개복동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무 조건적인 철거와 재개발은 도시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고 수많은 젊은 청 춘들이 웃음을 팔던 개복동은 지금, 텅 빈 건물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국도극장과 우일극장도 옛날의 영광을 잃어 버 린지 오래다.
이곳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화와 사람은 독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사람이 있어야 문화도 꽃피울 수 있다. 개복동이 이제 옛 기억을 다시 살려내 문화콘텐츠로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들일 채 비를 하고 있다. 거리를 살려내 쇠퇴해가는 군산의 구도심의 옛 영광을 다시 찾겠다는 군산 지역 예술가들의 노력이 눈 물겹다. 그들의 예술촌 만들기 프로젝트 시동 소리가 힘차다. 남은 것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자치단체의 관심이다.
개복동의 아름다운 변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