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 |
[서평] 『로마제국 쇠망사 1·2』
관리자(2008-09-18 10:57:28)
천사백년 영욕의 대서사시 / 윤영래 편집장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인 로마.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로 기억되는 로마. 스페인 광장에서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며 본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트레비 분수대 앞에서 옛사랑을 떠 올리며 동전을 던지고 콜로세움을 둘러 본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아픔이 살아있는 카타콤베와 성 베드로 대성당. 운이 따른다면 아름다운 이탈리아 아가씨와 서툰 풋사랑을 겪게 될 지도 모를 일. 이렇듯 로마는 영화와 수천년을 버텨온 고대 건축물, 그리고 이탈리아 특유의 정열적인 사랑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지금의 로마는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인 이탈리아의 수도일 뿐이지만 사실 로마는 무려 2,200여년을 존속한 대제국이다. 아시아에는 규모에서 로마보다 훨씬 컸던 몽고제국이나 당과 같은 거대제국이 존재했지만 불과 2~300년 밖에는 존속하지 못했고, 로마의 장구한 역사 앞에서는 감히 명함을 꺼내들기 어렵다. 지중해를 호수로 삼아 아프리카 북단에서부터 현재의 서유럽 대부분(여기에는 영국도 포함된다)을 지배했던 대제국 로마. 이런 오랜 역사와 서양 문화에 남긴 로마의 흔적은 유럽 곳곳에서 발견된다. 11~12세기에 걸쳐 유행했던 로마네스크 양식은 로마미술을 기본으로 각 지역의 색채가 덧붙여진 것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아직도 대부분의 서유럽국가에서 배우고 있는 라틴어만 봐도 로마의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쉽사리 느낄 수 있다.
유럽문명의 근간이 되는 로마를 다룬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테디셀러인 시오노 나나니의 『로마인 이야기』는 대표적이다. 거기에 중·고등학교 학교수업에서 들었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는 “로마제국쇠망사를 읽는 동안 에드워드 기번은 언제나 나에게 북극성 같은 길잡이였다. 기번은 역사분야뿐 아니라 그 어느 문학 장르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걸작을 만들어 냈다”라고 기번을 역사가로서 문장가로서 높게 평가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기번은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들을 균형감각을 잘 갖추어 가며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서는 압축하고 저기서는 확장한다. 그는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엔터테이너이다”라고 쓰고 있다. 인도의 네루 또한 “흐르는 듯 한 선율의 문장을 어떤 소설보다도 더 몰두해서 읽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출간된 지 이미 이백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로마사 책들 중 대표적인 작품이며, 영문학사의 명저로 꼽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완역본으로 나왔다. 기번이 12년(1776년~1788년)에 걸쳐 쓴 이 작품을 번역한 것은 많이 있었으나 일어판을 번역한 중역본이 대부분이었고, 그도 아니면 요약판을 번역해서 소개한 것 뿐이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이 책은 영어원서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완역본이자 원전과 똑같이 6권으로 구성됐다는 점, ‘기번의 잡담’으로 불리는 4천 7백여 개에 달하는 주석을 본문 이해에 지장이 없는 350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옮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음사에서는 이번 1ㆍ2권 출간에 이어 수개월 간격으로 나머지 4권도 출간할 계획으로 있다.
이 책은 로마의 공화정시대를 제외하고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에서부터 시작해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제국의 성립, 신성로마제국의 건국, 15세기 투르크족의 침입으로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 1,400년의 역사를 기번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1764년 로마를 여행한 기번은 폐허에 가깝게 몰락한 로마의 모습을 보고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처음 기번의 구상은 서로마제국에 있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제1권에서 제4권까지는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로부터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641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나머지 두 권에서는 7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로마제국을 다루고 있다. 즉, 약 오백년의 역사를 첫 네 권에서 서술하고 마지막 두 권에서 천년역사의 동로마제국을 다루는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서로마에 비해 훨씬 빈약한 자료를 바탕으로 동로마제국의 역사를 서술하고 이슬람에 대해서까지 편견 없이 서술한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제국 로마가 쇠퇴해 가는 과정을 다룬 이 책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따른 로마사회의 변화, 이슬람의 침략과 이에 맞서는 십자군원정, 칭기즈칸이 이끌었던 몽고의 유럽원정 등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기번의 잡담’과 함께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물 흐르듯 기번이 서술한 로마의 역사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인물, 사건, 경제, 예술, 종교 등 로마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이 책을 통해 기번은 역사는 ‘단절’의 역사가 아닌 ‘연속’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가 이인화는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성을 무릅쓰고 쌓아올린 인류사 최대의 영광으로 로마사를 조망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역사서이면서도 단순한 역사 서술을 뛰어넘는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주는 불후의 고전이다”라고 추천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