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 |
[독자시평] 추억박물관전을 가보니
관리자(2008-09-18 10:57:05)
“얘들아, 이게 뭔지 아니? ” / 이경선 주부
아이들 손을 잡고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섰다. 큰아이 방학숙제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전시 제목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끌리는 기분이다. 교동아트센터에서 열린 <추억박물관전>. 초등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어서 사실 기억마저도 아련하지만 그 언젠가는 얼마나 사랑받는 물건들이었을까.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실감나는 전시다. 입구에서 마주친 옛날 흑백 텔레비젼과 라디오는 여전히 방송이 나온다. 나보다도 더 오래 된 거 같은데... 베이징 올림픽 중계가 쉬지 않고 나오는 옛날 흑백 텔레비젼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미닫이 문이 달린 탁상형 텔레비전. 아침에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다 보면 가끔은 텔레비전 밑에 기어들어가 있어서 머리를 부딪치곤 했었는데... 그 사이 아이들은 벌써 구슬 한 봉지를 잡아들고 사달라고 조른다. 이게 뭔지는 알까. “왜? 구슬사서 뭐하게?” “색깔이 예쁘잖아.” 맞다. 색깔이 예쁘다.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이 구슬치기 하는 것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눈앞에 가까이 대고 보면 별난 세상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석유곤로 앞에서 아이들이 신기해 한다. “엄마, 이게 뭐야?” “어, 이건 석유곤로라고 하는 건데.” 곤로가 일본말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다 그렇게 불렀다. 처음에 불을 붙이려면 성냥 꽤나 부러트려야 했고 냄새도 고약했었다. 지금이야 물만 틀면 더운물이 쏟아지지만 예전에 목욕 한번 하려면 연탄불에 물을 올려놓고 몇 시간 기다리거나 아니면 이 석유곤로에 물을 한 찜통 끓여서 부엌 한 쪽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목욕도 하기 싫어했고 머리도 요즘처럼 자주 감지도 못했었다.
한 쪽 옆에 꾸며진 옛날 교실에는 너무나 작은 책상과 걸상들이 놓여 있다. 녹색칠이 칠해져 있는 책상. ‘내가 저렇게 작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었나?’ 책상 위에 놓인 공책이며 걸상 한쪽에 걸린 신발주머니, 선생님이 서 계셨을 교탁도 너무나 작다. 저 작은 걸상에 앉아 있으면 선생님이 얼마나 커보이시던지. 한 책상위에 개근상장이 놓여 있다. 요즘은 미리 학교에 알리기만 하면 부모님과 함께 며칠씩이라도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학교를 안 나가도 되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결석은 거의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죽을 만큼 아프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공부를 못 하는 아이도 거의 상 하나는 반드시 받았는데 그게 바로 개근상이었다. 학교에 나가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 아무도 차별받지 않고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상. 그 상장 하나만으로도 부모님께 떳떳하게 상 받았다고 소리칠 수 있는 그런 상이 있었다.
한쪽에는 50년이나 각종 잡지와 신문을 스크랩 해오셨다는 분의 자료가 쌓여 있었다. 그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오려 붙이는 수고가 너무 대단하다. 또 다른 면에는 오래된 옛날 화폐와 각종 금융관련 서류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자리잡고 있다.
한 때는 소중한 물건들이었지만 이제는 그 효용을 다해 잊혀진 것들. 창고에서 녹슬어가던 추억이 오늘 다시 생명을 얻어 우리 곁으로 왔다.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놀았던 딱지며 구슬들. 학교 끝나고 엄마 몰래 쌈지돈을 꺼내 사먹던 불량과자들. ‘마징가하고 태권브이하고 붙으며 누가 이길까’ 하며 떠들던 옛날 만화영화들.
이경선/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평범한 전업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