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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9 |
[이흥재의 마을 이야기]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윤동마을
관리자(2008-09-18 10:46:22)
바람과 삼베로 디자인 한 아름다운 정자 윤기마을은 삼베골이라 불린다. 2008년 7월 28일 마을 앞 모정 풍욕정(風浴亭)에서, 삼베 길쌈을 하기 위해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삼을 째고 있었다. 삼나무에서 베낀 삼가닥을 ‘톱’이라는 작은 칼로 도마 같은 나무판 위에서 머리 부분을 다듬고, 손가락 발가락을 이용해서 삼가닥을 가늘게 째, 모정 중방에다 널어 말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늘게 짼 모시를 길게 이은 다음 베틀에서 삼베를 짠다. 학교다닐때 사회시간에 배운 전형적인 가내 수공업의 형태이다. 올이 아주 가는 삼베는 다섯배 라고 한다. 두번거리는 거칠은 것이고 네번거리는 보통굵기이다. 보통 한필이 20자로 25만원을 받지만 사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생각하면 30만원도 싸다고 마을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때문에 도저히 경쟁할 수가 없다. 이 마을에는 여러 집이 아직도 삼베를 짜고 있다. 그래서 여름이면 동네 입구에 있는 400여년 된 느티나무 당산목과 서나무 숲이 있는 모정에서 길쌈을 한다. 어렸을 때는 익히 보아왔던 풍경이지만,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 모정의 이름 풍욕정은 매우 시적이다. ‘바람을 쐬다’라는 뜻의 풍욕(風浴)을 ‘바람(風)이 목욕(浴)을 하는 모정’ 이라는 라는 뜻으로 풀이하면, 약간 섹시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모정에 멋진 이름을 지어준 마을 사람들의 심성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모정 상량문에 의하면 병인(丙寅)년 즉 1926년 8월 1일 정오(午時)에 기둥을 세우고, 미시(未時)에 대들보를 상량했다. 그리고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이요,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 씌여있다. 하늘에서는 삼광(三光) 즉 해(日)·달(月)·별(星)이 조화롭게 잘 호응하고, 이집에 오가는 사람에게는 오복을 누리게 해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상량문 맨 위와 아래에 오래오래 장수하며 화재의 위험을 막아달라는 기원의 의미로 거북 귀(龜)자와 용용(龍)자를 써놓았다. 올해 8월 1일로 83살이 된 풍욕정은 원래 짚으로 이은 초가지붕이었으나, 박정희 대통령때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스레이트 지붕으로 바뀐 뒤,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이다. 윤기마을은 물이 좋다. 내동산 폭포에서 내려온 물이 동네 가운데로 지나간다. 마을 이장을 지낸 박정만씨는 마을 샘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므로 맛도 좋고 동네에 좋은 기운들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나 서울에서도 이 마을 물을 떠다 먹는 사람도 있다. 마을 뒤 해발 887.4m의 내동산은 백운, 마령, 성수 3개 면에 걸쳐있다. 내동산(萊東山) 이란 산명은 신선이 살았다는 봉래(蓬萊)라는 말에서 연유하였고, 일명 백마산(白馬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하얀 신마(神馬)가 그 위에서 노닐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령(馬靈)면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팔공산·선각산·덕태산·남덕유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만덕산·모악산이, 남쪽으로는 고달산이 북쪽으로는 마이산·운장산이 시원하게 사방으로 보인다. 윤기(允基)마을은 삼국시대 백제 땅이었을때, ‘윤장자’가 살았다 하여 윤터·윤텃골·윤기라 불린다. 윤장자가 이곳에 터를 잡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것을 보고, 서로 부자가 되려는 욕심으로 이사를 와서 마을이 형성되고 번창했다고 한다. 윤기마을의 유래가 된 윤장자는 윤씨성을 가진 부자로, 백석을 수확하여 장자란 호칭을 붙여서 윤장자라고 했다. 어느날 윤장자 집의 장독이 깨졌는데 3일 동안이나 간장이 흘러내렸을 정도로 부자였다는 것이다. 윤씨, 김해김씨, 순천김씨 등이 들어와 살았고 해방 당시 38호 였던 동네가 지금은 14가구 36명이 단촐한 가족처럼 살고 있으며, 삼베를 많이 해서 ‘삼베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 윤기마을과 동산마을 합쳐 윤동마을로 행정지명이 바뀌었다. 동산 마을에 사는 15가구 35명중 95세의 최영균 할아버지와 89세 김산옥 할머니는 잉꼬 부부로 꼽힌다. 어떤 비결로 두분이 이처럼 건강하게 함께 사느냐고 묻자 “다 연분이지요” 라고 대답을 한다. 95세 최영균 할아버지는 백운면 소재지인 원촌마을 모정까지 30여분 넘게 걸어서 마실을 다닌다. 원촌에 가야 얘기를 나누며 놀 수 있는 80여세 된 노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허리가 꼿꼿한 반듯한 자세로 한복에 대님을 매고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반면 허리가 완전히 “ㄱ"자로 굽은 89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입는 한복을 일일이 손으로 빨아서 풀도 먹이고 적삼에 동전도 달아 준다. ‘글배우면 못쓴다’ 고 해서 가갸거겨도 모르고 농사만 지어서 딸넷 아들셋을 다 키워 출가시켰고, 남원에 사는 큰딸은 68세나 된다. 74세의 자태가 고운 박선명 할머니는 101살 먹은 시어머니가 계신다. 101살 먹은 최장수 할머니는 주일날 덕현교회에 가서 예배 후 점심까지 먹고 돌아오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이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는 뭘까? 내동산 기운과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 때문일까? 가갸거겨도 모르지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삼베처럼 투박하지만 질긴 심성을 닮아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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