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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9 |
[신귀백 영화엿보기] 다크 나이트
관리자(2008-09-18 10:34:27)
수퍼 히어로물의 금메달 <다크 나이트> 여름엔 블록버스터가 공식이다. 그런데 블록버스터는 덩치만 크지 속이 비어있다고? 편견이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 예선전이라면 이건 분명 올림픽 본선이다. 기억을 몸에 문신으로 새기는 장면으로 각인을 준 <메멘토>로 이름을 알린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슈퍼 히어로 장르치고는 여러 가지 함의를 깔아 논다. 억 소리 나는 배트포트와 007시리즈의 Q처럼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주는 영감이 있는 SF 스타일에다 <추격자>처럼 사람을 옥죄는 스릴러, 거기다 인간의 악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파괴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하나 더, 칙칙한 범죄 누아르물 냄새가 나지만 <다크 나이트>는 미니멀리즘의 미술적 깔끔함도 보여준다. 고담시의 트로이카 DC 코믹물 버전이란 걸 말해주는 듯 아주 짧은 만화장면으로 크레딧이 시작한다. 먼저 조커 등장. 광대탈을 쓴 그가 은행을 터는 장면부터 이 범죄 올림픽은 개막되는데. 돈세탁업자들이 애용하는 은행이 타깃이 된다. 돈을 턴 조커는 용병의 지위를 넘어 악의 화신이 되어 고담시 전체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다. 잘난 척 하는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나오든지 아니면 시민 모두가 혼란과 고통에 빠지든지. 조커에 맞서 고담시에서는 평화 재건 3인 위원회가 개최된다. 불황보다는 범죄에 시달리면서 밤의 악을 막아내는 것이 배트맨(사업가 브루스 웨인)의 임무라면, 낮의 구조적 악을 책임지는 일은 지방검사 하비 덴트가 한다. 그리고 실무책임자는 경찰 고든 반장인데 수사비를 아낀다거나 관할을 따지며 대충 때우려는 공무원이 아닌 참 경찰이다. 재력과 권력 그리고 법의 집행력을 쥔 트로이카가 뭉치는 삼두정치다. 이 보수적 계급의 노블맨들이 조커로 대표되는 악당에 대항해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악을 척결하려는 모임이라니, 기특하지 않은가.   삼대일의 게임을 즐기는 주름살의 조커는 나이를 알 수 없다. 흰 분칠에 붉은 입술은 양쪽 귀 가까이 찢어지고 눈에는 전체를 검은 잉크로 칠한 광대 얼굴을 한 그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쓸쓸한 표정을 짓던 히스 레저다(아, 그런데 그가 가버렸다니…). 조커의 재산은 두뇌와 담력 그리고 유머. 깐죽대며 웃어도 그의 행동은 비천하거나 가볍지 않다. 조커는 묻는다. "Why so serious?" 해석하자면 “야, 이 븅신아! 왜 넌 맨날 진지허냐?” 조커가 찢어진 입으로 맨날 낄낄거리니 귀가 쫑긋해 많이 듣는 우리들의 주인공 배트맨은 근엄할 수밖에.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그리고 게임 같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통해 명실상부한 스타의 자리에 오른 크리스찬 베일은 보디빌더 아닌 가녀린 얼굴선을 가진 데다 수염 좀 기르면 베컴 형님이라 할 얼굴인데, 밝음보다 그늘 쪽 사람이라 전반인생이 고독하다 싶게 생겼다. 하긴 부모님이 비명횡사하고 애인은 곁을 떠나니, 돈이 있으면 뭐하나(백만장자가 프린스턴 출신에다 히말라야에서 무술신공을 익혔다는 것은 이미 <배트맨 비긴즈>에서 보여주었다)? 웨인 그룹의 대표가 된 후 박쥐동굴을 나와 민생순례를 위해서 펜트하우스에서 고담시를 내려다보는 배트맨. 고층건물 중 한 층을 자기 마음대로 설계한 브루스 웨인은 미인들을 대동하고 헬리콥터로 하비 덴트 후원회 파티에 나타난다. 이 도련님은 속도 좋게 하비 덴트의 환한 얼굴은 고담의 미래라고, 그가 날 대신할 영웅이라고 시민들 앞에서 추켜세운다. 옛날 배트맨의 소꿉친구이자 애인이었던 미모의 변호사 애인을 차지한 하비 덴트는 수백 명의 범죄자들을 잡아넣는 법의 수호자로 역할을 다하는데. 야망에 불타는 이 잘 생긴 엘리트 지방검사는 고든 반장의 부하들과 사법조직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복선이다. 4강 풀리그 검은색 수트의 배트맨 복장은 도시의 코스프레처럼 유행이 되어 가짜 배트맨들이 활개를 치기에 이른다. 비니를 쓴 싸구려 배트맨부터 하키 보호대 복장을 한 배트맨에 이르기까지. 이 찌질한 대리인들이 그의 명성을 더럽히자 집사는 차라리 그에게 알바 쓰기를 권유한다. 물론 농담이다.   낮의 브루스 웨인은 러시아 발레리나와 연애를 해도 다크 서클이 생길 일만 계속 일어난다. 낮에는 CEO로 일하고 밤에는 야근수당도 없이 자잘한 악당을 소탕하는 일이 시민들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 되니 말이다. 도둑은 낮에라도 자는데, 이 백만장자는 정작 부모가 물려준 회사의 중요회의 중에 졸기 일쑤다. 같은 부자지만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예쁘고 매력적인 비서도 없는데다 “배트맨이 필요치 않은 날이 오면 당신 곁으로 돌아오겠다”던 레이첼(매기 질렌홀)은 검사 하비 덴트에게로 가 버렸다. 거기다 수트가 모자와 함께 붙어 있어서 디스크 걸릴 정도로 빡빡하니…   하비 덴트는 배트맨과 협력해 홍콩으로 자금을 빼돌린 조직들을 모두 검거하면서 ‘고담시의 백기사’로 자리매김하지만 경찰청장은 독살되고 고담시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조직들로부터 악의 전권을 청부받은 조커는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배트맨은 정체를 밝히라며 선택을 압박한다. 조커가 자신의 악을 이야기 할 때, 찍찍 끄는 영화 속 소음은 마치 편집을 잘 못한 듯 귀에 거슬리는데, 괜찮은 음향효과다. 경찰서를 폭탄으로 날리는 조커는 폭력에도 격조가 있다면서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 가는데 혼란이 가장 큰 미덕이고 공평함이라나. 조커는 악착 같이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트로이카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 조커의 목표. 배트맨은 어림없고 반장 고든은 영악하게 살아남는다. 타깃은 바로 하비 덴트. 이 유능한 검사는 완고하고 경직된 자아를 갖춘 사람이지만 시민계급의 삶을 이상화하려는 결혼을 원하는 미국 사람. 자기신뢰가 넘치는 법의 집행자이자 열정의 화신인 하비 덴트는 결국 조커의 덫에 걸려 화상을 입고 별명대로 투 페이스,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고 만다. 애인은 죽고(정말 죽었을까?) 얼굴 반쪽을 잃은 그는 잔인한 세상에서 믿을 것은 운 밖에 없다며 조커 이상으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망쳐버린다. 법이 가지는 경직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조커와 배트맨의 결승전 태초에 악이 있었다는 식의 조커. 고담시를 인화물질로 가득한 공기를 만드는 조커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누구의 이익에도 복무하지 않는다. 배트맨도 검사도 의지할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조커에게는 그런 것 없다. 배트맨의 사형(私刑)에 따른 혼란을 교묘히 이용하는 독고다이 조커는 거의 심리학자 수준. 광기와 집착, 파괴, 궤변은 <양들의 침묵>에서의 렉터 박사(한니발)를 능가할 만하다. 조커는 군중과 지도자 사이에 편할 대로 작용하는 대중들의 심리를 이용한다. 한 때 영웅을 갈망하다가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용도폐기하는 것이 대중의 심리. 니들 검사들은 맨날 계획이나 세우는 놈이라고 비난하며 낄낄거리는 것 역시 저항의 도구 아닐까.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는 재산을 털어 공황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들은 폭력의 공포를 해결하면서 목에다 힘주는, 그 자체가 싫은 것. 완전한 것의 균열을 바라는 허무주의적 심리, 조화나 균형을 가진 자들에 대한 미움 이런 것들로 하여 지도자의 가면을 벗기고 싶어 하는 것이 또한 군중들의 심리 아니런가. 배트맨과 조커는 한 판 뜬다. 완전한 선도 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허무주의자 조커는 경찰서에 갇힌 채, 배트맨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라 말한다. 같이 미쳐가는 처지에 뭘 그래 하는 투로. 너 돈 태울 수 있어? 진지한 척 하는 놈들이 젤로 싫어, 이런 식이다.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인물이 공적으로 자경단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한 비웃음에는 일리가 있다. 군용 핸드폰 만들기 명목으로 응용과학부서의 탈세 등 브루스 웨인이라고 해서 바르게살기만은 하지 못하니까. 결국 조커의 계략은 성공한다. 대형트레일러를 벌러덩 뒤집고(눈속임 아닌 진짜 촬영이다) 병원을 폭파한다. 과도한 신뢰를 보여줬던 하비 덴트의 타락에 이은 몰락은 고담시에 충격을 줄 만한 일이기에, 배트맨과 살아남은 고든청장은 타협을 한다. 고담시의 희망이었던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남기기 위해 투페이스 검사의 죄를 뒤집어쓰고 영웅을 양보하는 배트맨은 이제 더욱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다크 나이트가 된다. 미니멀리즘 그리고 금메달 장식이 제거된 모던한 유리 건축물들 사이로 배트맨의 비밀병기 오토바이 추격신으로 호흡을 조였다가 조커의 농담으로 들숨을 뱉다 보니 금방 150분이 흐른다. 반전을 위한 변수가 워낙 많고 조커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후반부가 산만해 타깃의 탄착군이 한 곳으로 모여지질 못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 우리네 마음속에 든 악마성을 시험하기 위해 폭약이 실린 두 배에서 살려고 아우성치며 폭파장치의 선택을 강요하는 부분과 배트맨이 가면을 벗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부분은 연장전 같다. 조커, 악플을 다는 인간들이 한 사람으로 뭉쳐 오프라인 상에 나왔다고 할까. 푸름을 다한 컬러의 조끼와 낡아 보이는 듯한 보라색 저고리와 조커의 흐트러진 머리스타일은 복고풍으로 배트맨의 모던함과 더욱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푸른 새벽 자신의 펜트하우스에서 고담시를 내려다보는 배트맨의 시점으로 보이는 부감샷은 아름답다. 최고층 빌딩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보는 배트맨의 고독. 고독에는 검은색이다. 장갑차 같은 전용자동차의 블랙, 장식이 필요 없는 세련된 선의 펜트하우스 역시 미니멀한 스타일로 이 영화의 품격을 높여준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또 여인을 잃는다. 거기다 범죄자로낙인 찍혀 명예도 잃지만 그래도 돈은 잃지 않는다. 진실보다는 사회적 안정을 바라는 끝맺음을 자본주의 질서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이라며 이 영화에 야박한 점수를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정을 위해 때론 거짓도 필요하다는 식의 얼버무림으로 매기의 이별 편지를 태우는 배트맨의 집사 모습을 귀엽게 봐줄 수는 없을까. 음, 찰나적이어서 이미지만 남고 모든 것이 휘발해버리는 그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 속에서 팀 버튼이 만든‘우울한 배트맨’이 은메달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범죄 영화 중 새로운 기록으로 테이프를 끊은 분명 금메달감이다.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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