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 [수요포럼]
'깃발'논쟁, 촛불시위 공방
[ 제 1회 마당수요포럼 ]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4-18 17:43:15)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어갈 '마당 수요 포럼'이 1월 22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 세미나실에서 첫 포문을 열었다.
'마당 수요 포럼'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과 지역 현안들을 되짚어 건강한 토론문화를 정착시키고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 나서기 위한 사단법인 '마당'(이사장 정웅기)의 또 다른 도전.
지역 내 활발한 의사소통의 창구가 될 '수요 포럼'은 매월 두 번째 수요일로 정례화되며,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할 수 있도록 열린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첫 포럼은 '깃발논쟁, 촛불시위 공방'이라는 주제로 전 국민적 이슈인 촛불시위 논쟁을 통해 드러난 다양한 사회 문화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마당 정웅기 이사장을 비롯해 '마당 수요 포럼' 소위원회 위원인 이종민(전북대 교수·문화저널 편집위원), 문윤걸(전북대 강사·문화저널 편집위원), 이재규(시민행동 21 대표), 홍성덕(사이버시정발전연구소장)씨, 그리고 조문익(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국장), 전준형(전주평화와인권연대 집행위원장)씨 등이 참가해 활발한 의견개진으로 눈길을 모았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재규씨가 진행을 맡았으며, 문윤걸씨가 발제를 통해 '촛불시위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촛불시위를 둘러싼 논의 지점들을 짚어냈다.
이날 포럼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촛불시위, 사회 변혁의 신호탄인가
촛불시위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 관하여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해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 데는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해 온 시민단체의 노력이 주효했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여중생범대위)는 월드컵의 열풍에 가려 이 사건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유족과 함께 미군 측과 힘겨운 싸움을 진행하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했다.
유족, 범대위 측과 미군 측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미군 측의 불성실한 태도, 한국 경찰의 과잉진압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했고, 이것이 언론 방송과 네티즌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네티즌들은 지난 월드컵에서의 경우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사건을 전파했으며, 동시에 여론을 모아내는 데도 매우 역동적이었다. 네티즌인 김기보(대화명 '앙마')가 제안한 촛불시위는 네티즌은 물론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이후 전국의 주요 거리를 촛불로 가득 채워냈다. 이 시위는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역사의 현장이면서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현장으로, 그리고 향후 한국사회의 시민사회로의 발전가능성에 희망을 담아내는 의미로 이해됐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이내 이상기류에 휘말리고 만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많아지면서 순수한 네티즌들의 모임이 운동권적인 시각을 가진 시민사회단체의 개입으로 본래 취지를 상실하게 됐다는 비판론이 등장한 것. 이와 반대로 촛불시위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대형 시위에 있어 누군가는 조직적으로 시위를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간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순수성을 입증받은 시민사회단체가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이러한 갈등은 시위의 성격으로까지 증폭돼 이른바 '반미논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무엇이 반미이며, 반미는 과연 국익에 저해되는가'로 모아진 이 논쟁은 마침내 '촛불시위를 반전, 평화운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낳았다.
이 시점에서 촛불시위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촛불시위의 향후 전개과정을 설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에 '촛불시위'와 관련돼 생각해 볼 수 있는 몇가지 문제, ▲ 현재 촛불시위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 촛불시위의 성격, 즉 주된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반미란 무엇이며, 국익과 한미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회적 힘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것이 가능하게 된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힘을 우리 사회의 변혁을 위한 조건으로 삼을 수 있는가 등을 주요 논제로 삼을 수 있다.
이재규 : 촛불시위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옳았다 식의 시위의 대중성 확보라는 좁은 시각에서만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촛불시위에서 형성된 사회적 맥락과 새로운 한미관계, 운동권이 진행해 온 시위 방식과 대중들의 시각차이, 이것을 또 보수 언론이 입맛에 맞게 각색해 다른식의 쟁점으로 이동시켜 가고 있는 현상 등 다양한 논의 사항들이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를 주도하거나 시민적 참여를 이끌었던 사람들, 또는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함께 풀어보자는 의미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순서 없이 자유롭게 발언해 주시길 바란다.
조문익 : 작년 한해는 운동의 새로운 발전 전망을 보였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노사모의 경우처럼 기존에 없었던 정치질서가 새롭게 발견되고 만들어지면서 대중 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민주노총 역시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끌고 가는 형태를 보인 한해였다. 어떤 큰 흐름 속에서 사회 주체가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정치질서나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 저항했던 투쟁집단들은 대중의식을 수렴하지 못했던 오류들도 지속됐다. 큰 흐름에서 보면 사회 참여 주체들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방식도 함께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재규: 새로운 사회 주체가 등장하고 그 속에서 변화의 흐름들이 분출되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문 선생께서 발제 중에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이야길 빌어 잠깐 언급하셨는데, 촛불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희생자가 여중생이었다는 부분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길 나눠봤으면 하는데, 왜 대중들이 촛불시위를 통해 폭발하게 됐는지를 파악하는 단서가 될 수 있겠다. 촛불시위를 통해 국민 의식이 크게 변화했다고 볼 수 있는지, 또는 여중생이라는 매개가 있어서 그렇게 폭발한 것인지 짚어봤으면 한다.
촛불시위, 반미 감정과 '여중생'이라는 순결함에서 시작
문윤걸 : 최근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다. 그것은 미국과의 정치·역사적 관계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스포츠라는 매개가 신호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스포츠가 정치적 영향을 준 경우는 거의 전무했었는데, 최근엔 분명한 영향력을 지니고 파급됐다. 얼마 전 미국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동계올림픽 안톤 오노 사건으로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특히 미국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반감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고 무겁기보다는 자유롭고 정서적인 반감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정웅기 : 여중생이란 부분이 이번 촛불시위를 폭발적으로 일으킨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만약 속칭 양공주가 그렇게 희생됐다면 촛불시위는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10대나 20대들은 미국에 신세를 진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더 자유롭게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낼 수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어쨌든 여중생이라는 부분이 적지않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언론에서 이런 현상을 자꾸만 반미라고 표현해서 마찰을 의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문익 : 여중생 사망 사건이 대중적인 관심사로 떠오르지 않았을 때, 파주에선 여중생들을 중심으로 집회가 일어나고, 그 아이들이 이메일을 통해 대대적으로 확산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울지역 중고교 단체들이 움직이게 됐는데, 이제는 소파개정에 대한 요구까지도 상당히 대중적이면서 상식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용산 미군기지나 환경오염 문제, 또 매향리를 통해 반미 감정이 급격히 올라온 것 아닌가 싶다. 이 정도 수위의 반미 운동은 이제 대중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됐고, 거기에 여중생이라는 순결함이나 그 또래 아이들 사이에 동질감이 형성되면서 촛불시위가 확산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은 이미 붉은 악마를 통해 터득하게 된 것이고, 그것이 조직적으로 결합해 대중적으로 파급된 것 같다.
이재규 : 미국에 대한 감정이 쌓여오던 차에 촛불시위가 이것을 상쾌하게 풀어주는 방식으로 분출한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여기엔 또 미군 무죄판결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예전엔 주한미군 주둔은 불가피하고 범죄가 생기는 것도 어느정도 수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미군 평결을 놓고 너무 지나치고 뻔뻔한 것 아닌가 하는 반감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앙마'의 제안이 이뤄져 공감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촛불시위가 왜 그렇게 폭발할 수 있었는지는 어느정도 논의가 진행된 것 같다. 부연할 이야기 있으신 분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문 : 언론의 힘도 컸다. 그 중에서도 특히 MBC의 역할이 컸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촛불시위를 매일 언급했었다. 딱히 네티즌들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이 폭넓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전준형 : 미군 무죄판결이 이뤄진 뒤 범대위에서는 못해도 기소유예 정도는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 병장 하나가 무죄판결을 받고 나서, 반대집회가 곧바로 일었는데 그때 문정현 신부가 처음으로 삭발을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그 긴장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 때 경찰이 MBC 기자를 폭행했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그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공분이 형성된 것 같다.
이재규 : MBC에서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보도를 했던가에 대한 의문은 풀린 것 같다. 촛불시위에서 대중적 힘이 모이기까지의 맥락을 살펴봤는데, 촛불을 들고 현장에 나온 사람들이 어느정도의 의식을 가졌던가도 살펴볼 기회를 가져보자. 특히 운동권 진영에서 보는 시각과 그런 연관 없이 참여했던 이들의 의식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가를 이야기 해보자.
조문익 : 대중적 형식의 촛불시위를 범대위가 제안했더라면 이처럼 확산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사회단체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대중들은 자기와 유사한 사람들에 대한 동질감이 있고 그런 동질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들도 촛불시위를 수용했을 것이다. 지금의 반미운동의 에너지는 민주주의 에너지이고, 그것을 주장하는 주체 역시 새로운 주체다. 예전 운동세력은 형식과 체제를 중요시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방식과 접근이 나타나고 있다. 30대들도 변화하는 과도기에 있고, 특히 10대나 20대들은 더 다르다. 지금의 세대는 미국은 미국이고 우리는 우리다 라는 식의 의식이 있고, 나 같은 386 세대들은 한국이 미국에 종속돼 있다는 게 전제다. 우리는 치열했고 지금 세대는 치열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대화하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들이 제안해야 움직이고 그것이 먹혀들지 않으면 망하는 거다. 지금의 반미운동은 다양한 대중과 계층들이 발언하게 해줘야 힘을 얻는다. 예전의 마이크 독점 방식은 안된다는 것이다.
문윤걸: '마당'에서 왜 하필 촛불시위를 주제로 잡았는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것은 촛불시위가 양분되는 현상을 하나의 문화적 충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범대위와의 갈등도 시위방식에 관한 문화적 충돌이다. 실제로 네티즌들이 시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슈에 대한 관심보다 그 시위를 어떻게 문화적으로 구현해내느냐 하는 점이다. 다시말해 그 시위가 어떤 방식으로 가꿔지느냐의 문제인데, 범대위가 그걸 이해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건 범대위의 마이크 독점에서도 비롯된다.
이재규: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은 네티즌을 비롯해 다양한 대중들이었는데, 운동권에서 이 판을 조금 더 키워보겠다는 노력을 하게 되면서 조직적 운동으로의 요구가 생겨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반미운동으로 발전했다, 라고 간단히 사고하는 건 대중의 흐름이나 정서를 제대로 감지해내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한국 현실에서의 대중적 대미관, 역사관에 대한 측면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촛불시위에 모인 대중들의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전준형: 전북의 시위를 주도한 사람중의 하난데, 나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예전부터 갖고 있던 반미의식이 우연한 기회를 통해 상승됐고, 운동권에서는 그 판을 키우려고 하는 상황인데, 현장에 있다보면 우리 같은 운동권도 굉장히 놀랍다.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통제가 안되는 것이다. 선거기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당 깃발을 들고 온 사람이 노사모나 민노당 등이 오면 누가 와서 판치네 하는 식이다. 이걸 조직적으로 조절해달라고도 요구하는데, 개인적으로 보면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에 누군가한테 이건 하지마라, 우리 시위의 목표는 이거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게 사실 고민스러웠다. 여러 부류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역할, 이것이 전체 집회를 기획하는 방향으로 가야되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다.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사실 참여한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홍성덕: 논의되는 과정이 여전히 교과서적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386세대들의 맹점이 이런 거라고 보는데, 뭔가 결과를 도출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도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촛불시위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네티즌의 역할론이나 촛불시위의 배경은 공감하지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한편에선 밤에 촛불 들고 나서보니 폼도 나고 분위기도 나니까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런 현상 저변에는 월드컵이 있었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나가 소파를 개정해야겠다는 사회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고, 새로운 사회 주체가 태동된다고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갔던 문화는 인정하지만, 운동성의 새로운 형태로 보기에는 과도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반미는 이데올로기 아닌 상식과 감성의 폭발
이재규: 이번 포럼은 네티즌 등 새로운 주체의 의사 표현 방식이나 행동력에 주목해 보자는 의미에서 논의할 내용들을 찾아본 것이다. 물론 네티즌들의 휘발성을 감안해, 있는 그대로만 보자는 시각도 있고 나 역시 촛불시위가 네티즌 부각에만 집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는 네티즌 뿐만 아니라 대중가수 등 시위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한 다양한 메신저가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복합적인 요소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촛불시위는 반미의 구호가 금기가 아닌 가볍게 이슈 제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떠오른 계기가 됐다. 그것이 어느정도 선까지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까의 문제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미에 대한 의미 해석에 있어 운동권과 비운동권, 세대및 계층간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보수적인 언론은 기성세대를 자극하면서 반미를 감정적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반미는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다. 극단적인 테러까지 생각하는 것은 적극적인 반미일 것이고, 나쁜짓 하는 미군들을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것도 분명한 반미다. 그런데도 반미라고 이야기하면 안될 것 같은 기피의식이나 사회적 금기가 작동하는 것 같다. 노 당선자나 언론도 촛불시위가 반미운동은 아니었다고 주장한 적 있는데.
조문익 : 지금 현재 진행중인 반미운동은 대중적 차원과 사회운동 차원에서 좀 다르게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다. 대중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는 반미는 가치판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일종의 감성적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준은 이미 상식이 됐다. 왜냐면 미국이 보인 행태가 보통의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상식적인 국제 관계나 외교전략 등이 많은 나라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해 주었고, 이것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파급되고 있는 것 같다. 상식 수준의 반미는 당연하다. 그런데도 대중적 감정 수준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가 있고, 그것이 새 세대와의 충돌로 드러나는 것 같다.
이재규 : 반미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세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한상렬 목사는 반미라는 말 대신, 구미운동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망해가는 미국을 구해주자는 의미에서 말이다.
전준형 : 단어 하나로 사람들의 다양한 의식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한반도 와 관련한 미국의 정책을 거부하는 것을 두고 반미냐 아니냐의 식으로 한 단어 안에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조문익 : 반미나 비미 운동은 서로 다른 상식이 있는거고 그 두 가지를 다 용인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획일화된 언어와 사고로 무언가를 모아내고 움직이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촛불시위는 근본적으로 그런 획일화되고 굳어진 의식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그걸 수용해야 민주주의의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보듬을 때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폭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윤걸 : 반미라는 개념이 이미 반공이라는 말처럼 이데올로기화한 것 같다. 반미 개념 자체를 경계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고, 그 개념이 실제로 먹히고 있다. 반미가 국익과 관계되어 설명되면서 일정부분 먹혀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규 : 한국사회 내부에서 볼 때 반미와 비미가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난 좀 다르다. 반미는 투쟁적인 운동권 중심의 대열에 있고, 대중의식은 비미로 가야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반미운동이 전략적 목표나 대중적 방법론에서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그건 토론 영역 넓어지는 주제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언급했으면 한다. 세 번째 주제로 이끌어왔던 대중들의 반미운동의 수위나 의식을 보자. 촛불시위로 보여줬던 의식의 실체, 매듭을 지어보자.
홍성덕 : 반미라는 어감은 반일보다 더 좌파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부터 약간씩 변화가 생겼다고 본다. 일본 문화가 차단된 상태서 미국의 문화는 개방돼 있었다. 일본은 문화가 차단됐다 개방되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반일감정은 기성세대와는 매우 다른 것 같다. 반미도 사회운동 논리가 아니라 한국문화가 다양화되는 속에서 미국이나 제국주의라는 이미지가 상당히 희석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재규 : 운동권의 담론에서는 반미는 미국과의 단절이고 축출대상이다. 기성세대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의 반미를 외쳐왔다면, 지금 세대는 좋아하는 문화는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속에서 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란 머리의 예도 그렇다. 예전 의식층의 분위기는 미제의 문화에 예속된 거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정서적 폭이 커져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과의 관계를 전통적으로 보는 한 축의 부류와 변화된 자유로운 분위기 사이의 간극도 시위 과정에서 드러난 것 같다. 세 번째 주제가 반미 어휘에 대한 의미 파악부터 사회적 연관성을 따져야 할 문제라 국익 저해라는 부분까지 이어졌다. 끝으로 촛불시위를 통해 일련의 힘과 변화는 목격되는데, 이 실체가 뭔가에 대해 논의해 보자. 촛불시위가 가져온 파급이 우리 사회에 이어지고 있고, 이전과는 달라진 사회변화 등이 사회 내에 존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흐름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의 차원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예측이나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
일상적 관심이 축제형 민주주의를 낳았다
조문익 : 우리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세력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떠오르고 있는데, 국가와 대항하더라도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이들을 어떤 민주적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다시말해 현재 대중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 조직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87년 투쟁은 중핵조직이 선도하고 주변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핵조직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어쩌다 모이고 흩어지는 구조다. 노조파업에선 게릴라식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묶어내는 조직이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축제형 민주주의자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들은 과정과 관계 형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참여 주체자들의 감성을 중시하지 않으면 판을 크게 짤 수 없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연대화해 내는 작업에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반미나 비미도 다양한 패러다임으로 살펴야 한다. 단일한 이데올로기로 모아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이나 현상을 받아들이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 이데올로기로 획일화하려는 흐름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식 : 포럼을 통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촛불시위를 통해 권위적 질서가 바뀌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주된 흐름이었던 것 같다. 촛불시위와 그것의 파장을 기존질서와는 다른 흐름으로 모아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사회 주체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미 횃불을 놓았고, 이것은 새로운 변혁적 흐름 또는 권위적 패러다임의 변화, 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걸 우리 사회에 새로운 횃불로 만들어야 할 과제가 있는 것 같다.
문윤걸 : 여러 말씀을 듣고 촛불시위는 현재 우리사회가 어디를 향해가느냐를 아주 잘 보여주는 시금석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발견해야 할 건 촛불시위가 우리사회에서 어떤 의미냐를 파악하는 게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이다. 몇 가지 관찰되는 것은 우리사회가 이미 시민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인데, 그 증거는 시민사회의 특징이라 할 일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80년대는 거시적이었다면, 지금은 일상과 관련이 있다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관심이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증거다. 이걸 어떻게 연대해 나갈 것인지가 앞으로 고민해 나가야 할 점이다. 촛불시위도 다분히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났고, 이제는 뭔가 감동을 줘야만 움직이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축약하면 감동과 즐거움이다. 즐거움이란 건 통상적인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참여자로서의 즐거움인 것 같다. 참여자로의 즐거움과 감동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앞으로 우리 활동의 중심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재규 : 마당 포럼 첫 주제로 촛불시위를 이야기 해봤는데, 너무 큰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촛불시위가 단순히 시위가 대중적으로 어떻게 진행돼야 할 것인가의 좁은 폭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졌는가를 살필 수 있는 단초였다. 대중적으로 정권을 신랄하게 비꼬고 농담을 걸 수 있는 분위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미국이라는 절대적 권위마저도 해체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계기가 된 것 같다. 촛불시위는 그 과정의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마당 수요 포럼의 첫 진행을 맡았는데, 앞으로도 더 뜨거운 열정 속에서 진행되길 바란다. / 정리 김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