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 |
[테마기획] 전북 연극, 소극장을 탐하다 1
관리자(2008-09-18 10:27:41)
도전과 실험, 지역 문화 꽃 피우다 / 편집부
소극장 공연은 마약이다. 소극장 공연을 본적이 있다면 그 매력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소극장의 음악공연은 귀를 울리는 사운드와 살까지 떨리게 하는 공명음에 한껏 빠져들게 한다. 연극 공연이라면 바로 코앞에서 이루어지는 배우들의 몸짓과 숨소리에 관객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극장 무대는 관객들의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살아있다는 존재감까지도 절박하게 깨닫게 한다.
공연문화는 소극장으로부터 비로소 꽃을 피운다. 소극장은 배우를 발견하고 만들어 우리 앞에 ‘스타’라는 이름으로 서게 하는 통로. 소극장 문화가 한나라의 문화 척도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 되는 이유다. 공연문화의 뿌리가 깊은 전북의 소극장 현실은 어떨까.
전북 지역에는 모두 8개의 소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전주 5개, 익산ㆍ군산ㆍ남원에 각 1개씩이 문을 열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극장도 있고, 오랜 영욕(榮辱)의 세월을 견뎌내 온 소극장도 있다. 이들 소극장이 있어 우리 삶은 향기를 얻는다.
비좁고 어두운 소극장 계단을 내려가 본적이 있으신지. 그 좁은 계단을 따라 낡은 문을 열면 거기, 배우들의 땀냄새와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북의 소극장을 만나 보았다.
도전과 실험의 역사, 소극장 120년
1887년 3월 30일 앙드레 앙뜨완느가 ‘자유극장’이라는 소극장에서 창단공연을 성공시키면서 시작된 서구의 소극장 역사는 벌써 120여년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나 한국의 소극장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기록상으로는 1920년대에 소극장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는 1958년 원각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소극장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원각사를 통해 활성화된 소극장운동은 1960년대 많은 동인제 극단을 출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카페 떼아뜨르(본격적인 소극장은 아니나, 살롱극장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취했다)를 필두로 1970년대 확산된 소극장으로 인하여 소극장은 창조적인 실험공간으로서, 젊은 연극인을 양성하는 교육과 훈련의 장으로 역할하였고 레퍼토리 시스템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도 운영에 있어서 관극회원제도, 가족회원제도나 후원회원제도 등을 도입하여 효율적인 운영 방법도 소극장에서 시도되었다.
소극장은 오늘에 이르러 다양한 공연 형식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으나 그 본래의 소용은 연극이었다. 서양에서 소극장운동이 시작된 배경에는 기성의 연극들이 부르조아지의 오락이나 향락에 바쳐지거나 연극을 단순히 상품으로 인식해 오락성과 향락성을 추구하면서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데에만 급급한 세태에 대한 반발의식이 담겨 있다.
따라서 그 목적도 뚜렸했다. 첫째 연극의 예술성 확립, 둘째 기성연극 또는 상업주의 연극에 대한 도전, 셋째 새로운 연극창조를 위한 실험, 넷째 관객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시대정신의 확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전북에서 소극장 운동을 한다는 것
단지 무대의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 연극에 대한 도전과 실험정신을 가진 무대라면 단연 소극장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도전정신이 1920년대 근대극운동이 출발한 이래 사실주의극에만 매몰되어 왔던 한국 연극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았다. 서사극, 부조리극 등 서구의 현대극이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창작실험이 이어졌다. 소극장운동의 목적은 연극의 실험성과 예술성의 추구였으며 상업주의와 통속주의에 대한 배격이 중심이었던 것이다.
전북지역에서는 1984년 ‘전북문예소극장’이 문을 열었다. 지역 연극인들이 뜻을 모아 문을 연 전북문예소극장은 출발 당시부터 ‘전문소극장’을 내세워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으나 재정난에 부딪치면서 1년여 만에 폐관되고 말았다. 뒤를 이어 1985년에 개관한 창작극회의 ‘월이소극장’ 역시 이듬해에 폐관, 연극전용 소극장의 뿌리를 살려내는데 실패했다. 당시 전주의 ‘필하모니’, 익산의 ‘뿌리’ 등 작은 공연을 담을 수 있는 문화공간들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전문적인 연극공연장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따랐다.
전북에 소극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극단 황토가 1986년 전주 고사동에 ‘황토예술극장’을 마련하면서부터다. 극단 황토는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과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전북연극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황토예술극장’도 개관 4년 만에 누적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문을 닫으면서 전북연극계는 극장의 부재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극장문화를 꽃피우려는 연극인들의 열정은 지속됐다. 1990년에 개관한 창작극회의 ‘창작소극장’과 남원에 있는 극단 둥지의 ‘둥지아트홀’ 등은 연극인들의 열정으로 얻어낸 결실이었다.
전북 소극장은 전북 연극의 역사
현재 전주에는 창작극회의 ‘창작소극장’, 문화영토 판의 ‘소극장 판’, 데미샘의 ‘아트홀 오페라’, 극단 명태의 ‘아하아트홀’, 재인촌 우듬지의 ‘우듬지 소극장’ 등 다섯개 소극장이 있다. 익산에는 극단 작은 소동의 ‘소극장 아르케’, 군산에는 극단 사람세상의 ‘사람세상 소극장’, 남원에는 극단 둥지의 ‘지리산 소극장’이 활동 중이다. 이들 8개의 소극장들은 모두 극단을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엄청난 대관료로 인한 대관을 통한 무대공연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 극단들이 자신들만의 무대를 가지려 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극단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극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극단들이 순수하게 공연수입만으로는 유지하기 힘든 현실에서 새로운 타개책이 필요하다. 하나의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단체에만 지원되고 있는 문예진흥기금이 시설에도 지원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수준의 하드웨어가 존재해야 이를 구동시킬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것이다. 연극이 우리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이라면 그 공연장인 극장은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수시설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고 이는 열악한 도내 연극계의 현실에서 전북연극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참고 서연호『우리 연극 100년』, 이원희『전북연극사』, 정호순『한국의 소극장과 연극운동』, 차범석 『한국 소극장연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