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8 |
[책을 엮고] 오정숙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관리자(2008-08-13 15:09:21)
6월 중순경으로 기억됩니다. 오정숙 선생님께 두 차례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명인명장’에 모시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첫 통화 때는 선생님께서 바쁘셔서 금방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통화 때는 ‘명인명장’의 취지도 설명드리면서 꽤 길게 통화를 했었습니다. 그때도 이미 전화기 넘어 선생님의 목소리는 숨이 차고 힘들어 하셨습니다. 지금은 몸이 안 좋으니 다음에 하자고 미안하다고까지 하셨습니다. 날씨도 덥고 차라리 선선한 가을정도에 선생님 다시 모시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화가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7월 7일이었습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제 제5호로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였던 오정숙 선생님이 전남 고흥에서 향년 73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선생은 여성명창으로는 처음으로 1972년에 판소리 다섯바탕을 완창했고, 1975년 부활된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동초 김연수 명창의 유일한 제자로 ‘김연수 바디’를 우리 나라 대표 판소리로 키워낸 것도 다 선생의 공이었습니다. 1991년 이후로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동초각’을 짓고 동초제를 후대에 전하는 일에 전념해 왔습니다. 쓰러지던 날도 평소 가장 앞장섰던 스승 동초 김연수 명창을 기리는 ‘고흥동초국악제’ 준비를 위해 고흥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스승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음을 항상 아쉬워했던 선생이었으니 외람되지만 스승을 기리던 길에 돌아가신 것은 어떤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의 연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일까요.
150cm 단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포수 같던 소리를 이제는 더 들을 수 없습니다. 무대와 객석을 휘어잡던 그 모습을 이제는 더 볼 수 없습니다. 하늘로 자리를 옮기신 오정숙 명창. 이제는 하늘무대를 호령하실 겁니다.
윤영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