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문화계 핫이슈]
미술관 역할과 기능 살리는 장기적 안목의 실현
전북도립미술관, 어떻게 되어가나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4-18 17:40:59)
전시와 학술, 교육기능을 포괄하는 종합미술관으로 미술계를 비롯한 지역 문화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전북도립미술관이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목표했던 연내 완공이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지역 미술인들의 공감을 거쳐 지난 2000년부터 문화계를 중심으로 공론화 되기 시작한 도립미술관은 기본계획 연구용역과 공청회 등을 거쳐 시설 운영안에 대한 기본 틀거리를 결정짓고 지난 2001년 12월 착공에 들어가 오는 6월 완공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이나 미술관 내 컨텐츠 구축, 시설 및 운영 주체 등을 놓고 아직까지 구체적인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어 건립 과정에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등산로 입구에 들어설 도립미술관은 6천3백50평 규모에 총 소요 예산은 1백90억원. 올해까지 확보된 예산은 국비 45억원, 특별교부세 30억원, 도비 55억원 등 모두 1백30억원이다. 예상했던 소요 예산에서 60억원 가량이 부족한 형편이지만 올해 미술관 건립 비용으로 책정된 도 예산은 5억원에 그치고 있어 나머지 부족분을 어떻게 충당해 나갈 것인지가 쉽지 않은 과제다. 전북도는 추경과 특별교부세에서 보충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중앙에서 예산을 따와야 한다는 점이나 문화관련 시설이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예산 배정에 인색해진 도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러나 완공이 지연되더라도 미술관의 개념과 내용을 채울 핵심 컨텐츠와 합리적인 운영 방안에 관한 공감과 합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란 여론이 높다. 이 같은 지적은 그동안 대규모 문화시설에 관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이 갖춰지지 못한 채 하드웨어 건립에만 급급했던 지역 문화계의 경험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인과 문화계, 도민들이 열린 창구에서 미술관 건립 추진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착공에 들어간 지 1년이 경과된 상황에서도 실제 이같은 의견 수렴 통로는 갖춰지지 못한 상황. 때문에 활발한 공론화 작업과 도립미술관 진행에 대한 정보 공유가 투명한 행정과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가는 필수 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현재 도립미술관 건립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공식적인 자문기구는 도립미술관건립추진소위원회. 전라북도 유기상 문화관광국장과 전북대 이철량·채병선 교수와 화가 국승선씨, 전북미술협회 이형구 회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수천 교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도립미술관 운영 방향에 대한 자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결정 권한은 미비하다는 게 참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열어놓고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창구 마련이 아쉽다는 입장.
도립미술관을 둘러싸고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문제는 운영 방식과 미술관의 성격 규정에 따른 컨텐츠 확보 등으로 모아진다.
미술관의 2월 현재 공정률은 25%. 예산 확보 등으로 공사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지어진 건물을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현재 전북도와 추진소위에서 거론되고 있는 방식은 전북도가 운영 주체가 되는 사업소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간위탁의 두 가지 형태. 전북도는 사업소 형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추진소위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려 있는 상태다. 재정자립도가 현격히 낮고 기능이나 운영의 측면에서 공공성이 강한 미술관의 특성을 놓고 볼 때 민간위탁은 수익성에 대한 부담이 작용해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고, 사업소는 전문성과 자율성 확보가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두 형태가 지닌 단점은 상대적인 장점이 될 수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미술관의 경우 전국적으로도 민간위탁의 사례가 전무한 상태"라며 "미술관은 공공성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만큼 현재로선 사업소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제3의 방안도 제기하고 있다. 사업소와 민간위탁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책임경영제가 그것으로, 민간위탁에 비해 예산 문제에서 전북도와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전문성과 함께 공공성 확보에 그만큼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술인과 전북도, 지역 문화계가 머리를 맞대고 공론화의 장을 통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해법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추진 과정에서 설립주체와 운영주체가 나뉘어져 있다는 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운영방식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설립주체는 전북도지만 운영주체는 결정짓지 못한 상태. 설립주체와 운영주체가 건립과정에 함께 참여하면서 미술관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하고, 이에 맞춰 내부 용도를 결정짓는 것이 합리적인 수순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소냐 민간위탁이냐 등 운영 형태를 결정짓고 개관준비팀을 서둘러 가동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북도와 추진소위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연말 회의를 통해 학예연구사를 미리 뽑아 건립 과정에서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건립 이후 이들에 대한 신분 보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차후 갈등의 불씨가 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합의가 시급히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 내부에 무엇을 어떻게 들여놓을 것인지, 소장품 확보에 대한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미술관 컨셉과 특성화 전략에 따른 기획 능력이 맞물려야 할 사안이다.
지난 2001년 3월 전북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연구소에 용역을 주고, '사진 및 영상' 분야 의 특화와 함께 기획전 중심의 전시, 기증보다는 구매를 통한 소장품 구성, 소장품의 과도한 지역성 탈피 등을 골자로 한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해서는 미술계 내부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최소한 개관 6개월 이전에는 소장품 기준 마련을 거쳐 미술관 성격에 맞는 선별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어서 개관준비팀 가동은 더더욱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고예산이 맞물려 있어 시간에 쫓겨 공사가 진행돼 왔지만, "짓고 보자"는 식의 조급함이 운영과 시설건립에 있어 파행과 부작용을 낳았던 점을 감안해 사업 진행 과정에서 수시로 여론을 환기시키는 장치 마련이 급선무다.
공사 지연에 얽매이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공청회 등을 통한 활발한 공론화 작업을 통해 구체적인 운영 방안과 성격 규정 등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종합계획을 착실히 마련해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