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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 |
[초록이 넘치는 生生 삶 만들기] 그리움으로 지는 초원
관리자(2008-08-13 15:02:28)
그리움으로 지는 초원 사막일까, 초원일까?  필자는 지난 7월, 사막화방지 사업의 하나로 시민, 학생 20명과 함께 중국 내몽골자치구 시린꺼러 초원에 위치한 차깐노르 호수를 다녀왔다. 시린꺼러 초원은 내몽골 중에서도 비교적 초원의 자연성이 잘 보존된 곳이나 최근 강과 호수 등 습지가 마르면서 알카리 사막이 형성되고 있으며, 북경과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알카리 황사의 발원지다.  전문가들은 농경민족인 한족의 유입과 대규모 개간과 가축의 증가와 유목 방식의 변화로 인해 급격한 사막화를 겪고 있으며, 물의 순환이 중단되는 것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변화는 사막화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대초원의 알카리 사막화를 직접 확인하고 알카리 토양에 잘 자랄 수 있는 풀씨를 심었다.  초원의 유목문화를 체험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화만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초원의 지평선,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은하수와 여기저기 지는 별똥별, 느리지만 여유로운 초원의 삶을 잠깐 엿본 우리에게 초원은 벌써 그리움이 되었다. 초원으로 가는 관문, 만리장성 북경에서 만리장성을 거쳐 하북성을 지나 시린꺼러 차깐노르까지는 600㎞,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과거 초원으로 가는 첫 관문인 만리장성,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군사경계이자 유목문화와 농경문화를 가르는 선이었다.  장성 너머는 초지가 잘 형성된 초원으로 유목민의 땅이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돌아오면 유목민은 호시탐탐 만리장성을 넘었다. 한족은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방어하고 지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명나라 때 둔전(군인들이 일구는 밭)을 설치하였고 같은 북방민족인 청나라 황실은 자치권을 부여하면서 북방 개발을 시도했다.  본격적인 개발의 계기는 1958년 대약진 운동과 1966년 문화혁명이다. 많은 한족이 이주하면서 인구가 늘고 동시에 대규모 개간 사업이 진행되었다. 현재는 내몽골의 인구는 2천8백만, 몽골족은 4백만 정도(그래도 몽골 공화국 260만보다 많다)이며 그 중 30만 정도만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북성을 지나 내몽골 자치구에 도착한 버스는 쿤산다크 사지를 가로질렀다. 쿤산다크 사지는 동서로 300km 남북으로 50∼100km에 걸쳐 있다. 바람에 날린 흰모래 언덕이 황폐한 사막처럼 보이다가도 작은 구릉 사이의 키 작은 나무가 드믄 드문 서있고 모래를 움켜쥔 떨러스(식물)가 올록볼록 푸르게 솟은 모습은 아프리카 초원처럼 보인다. 낮은 지대에 야트막한 물웅덩이가 길게 습지를 형성한 곳은 갈대나 줄 등의 수생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경관이 다르다. 운이 좋아 사막과 나무, 그리고 초원과 습지를 한꺼번에 보게 되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흰모래 언덕을 넘어가고 심은 충동이 인다. 쿤산다크의 사지가 더욱 아름답고 생물종다양성이 높은 이유는 풍부한 물 때문이다. "사지 주변 초원의 토양은 화산암과 점토로 이루어져 비가 내려도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80%가 증발해버립니다. 하지만 사지는 모래의 입자가 굵어 모세관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빠르게 땅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쿤산다크에는 물이 풍부했습니다." 지질학적 근거를 드는 박상호팀장(환경연합 사막화방지팀)의 설명이다. 신두리 사구의 두웅습지처럼 땅속에 저장된 빗물이 저장되어 있다가 배후 습지를 형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는 드디어 시린꺼러 초원에 도착했다. 홍껄에서 지프로 갈아타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지는 해를 향해서 달렸다. 보이는 반은 초원이고 반은 하늘이다.  초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시린꺼러멍의 초원은 내몽골자치구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자연 상태의 초원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광활하고 평화로운 초원 옆에 사막화의 위기가 덮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멀리 비구름이 걷히면서 오로라처럼 황홀한 석양이 우리를 반기고 반짝이는 저녁별에 자리를 내줄 때쯤 우리는 드디어 차깐노르의 게르에 도착했다. 주민들의 환대를 받고 달뜬 맘으로 초원에 누웠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수많은 별을 아래로 고운 눈썹 같은 초승달이 초원 건너편으로 지는 것을 보면서 몽골초원의 첫날밤이 지났다. 사막 남기고 사라진 서호 우리 게르는 어장 마을 너머 멀리 잔잔히 반짝이는 차깐노르 동호와 메말라버린 서호 사이 초지에 자릴 잡았다. 차깐노르는 몽골어로 하얀 바다라는 뜻이다. 알칼리성 물질이 마르면 하얗게 드러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강한 바람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때문일까?  30㎢ 남짓한 동호의 평균 수심은 1.5m,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지금도 여름철이면 산동성에서 온 한족들이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임시 거처를 짓고 나룻배와 어장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는다. 방목하는 가축 분뇨가 흘러들어서인지 부영양화가 심해해서인지 잡힌 물고기는 손바닥 만 한 붕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푸르른 동호로 흘러드는 까오거스타이강 수량이 줄면서 마르는 날도 부쩍 늘어 수위는 점차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반면 80㎢에 이르는 서호는 지난 2002년 완전히 말라서 알칼리 토양만 남았다. 호수의 수위가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부터다. 연평균 강수량이 245㎜에 불과한 건조한 해가 계속되었고,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 40°에서 30°로 오르고, 평균 강수량에 12배나 높은 증발량(2900㎜)이 원인이었다. 서호가 거의 메말라가자 고기를 잡던 한족들과 주민들은 동호라도 살리자며 둑을 쌓았다. 서호가 완전하게 메말라버린 직접적인 이유다. 이 모든 일이 길게는 30년, 짧게는 10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1968년 문화혁명 때 이곳으로 하방해서 10년을 초원에서 보낸 인연으로 2000년부터 초원보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쩡바이위씨(63)는 " 1973년에 뱃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물이 바로 이 나무 앞까지 차 있었어요. 물도 깊어서 배를 지탱하는 대나무가 바닥에 닿지 않았으니 적어도 7~9미터는 깊이는 되었을 거예요" 라며 자신의 젊은 시절과 아름다웠던 호수를 회상했다. 메마른 알칼리 호수가 사막화 원인 몽골을 비롯한 고원과 대평원의 강은 종점호라 불리는 호수로 흐른다. 호수로 흐르는 강은 끊임없이 광물질이 있는 모래를 실어 날랐다. 밀려온 토사가 쌓이다 보니 호수는 또 다른 낮은 지역으로 이동한다. 차깐노르도 움직이고 변화하는 호수인 천이 호(遷移湖)다. 쩡바이위씨에 따르면, 차깐노르 호수도 약 100여 년 전엔 지금의 동북방향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하이옌노르' 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처럼 움직이는 호수는 대규모 면적의 알칼리 토양을 남겼다. 알카리 토양은 딱딱하게 굳고 소금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강한 바람에 먼저 미세한 알칼리 분진이 날려가고 다시 흙과 모래를 날려 주변을 사막화 시킨다. 토양의 유실이 인근 지역의 모래 언덕을 만들고, 또 이 모래를 고정시킬 식물이 자라지 못하니 눈과 비를 저장하지 못하고 바로 증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PM 25 크기의 알칼리 모래 분진은 아주 가벼워서 사람들의 생활과 건강, 목축업을 위협한다. 또한 북경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날아와 피해를 준다. 문제는 중국에 위와 같은 알칼리 호수가 800여개가 넘고 면적이 큰 호수들이 빠른 속도로 말라간다는 것이다. 쩡바웨이씨의 자료에 의하면 70㎢의 하북성 앙꼬리노르, 230㎢나 되는 내몽골 우라까이호와 습지가 말랐다. 또한 총면적이 4,242㎢로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소금호수인 '칭하이'는 30여 년 동안 수위가 3.7m 떨어지고 면적이 312㎢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알카리 사막을 초원으로 만드는 희망의 풀씨 심기   차깐노르 주변의 초원도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멀리서 볼 때와 달리 풀이 작고 듬성듬성 하다. '어쩌면 풀이 저리 황량할까?' 크기는 수크령 만한데 거칠고 딱딱하면서 참 볼품없는 풀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박 팀장에게 물으니 "이 풀은 가축들도 먹기가 사나워 다 굶어죽게 생겨야 뜯어 먹는다는 '떠러스' 인데, 모래를 고정시켜서 황막화를 막는 초원의 보물" 이라고 설명한다. 염생식물인 감모초를 심어 메마른 차깐노르 알칼리 사막을 초지로 만드는 사업 역시 초원의 생태환경적인 특성을 반영한 사업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자연의 복원력에 기대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틀 동안 沙場을 만들었다. 사장 작업은 강한 바람에 날리는 풀씨와 모래를 붙잡기 위해 작은 나뭇가지를 장벽처럼 꽂는 일이다. 환경연합은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앞으로 5년 동안 알카리 사막이 되어버린 이곳 차깐노르 서호 바닥에 2천만평의 감모초를 심을 예정이다. 지난 5월 100만평에 감모초 씨앗을 뿌렸다. 크기만 좀 다를 뿐 우리나라 해안가 염습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문재’ 와 같은 과다. 몇 년 간 실험을 통해 PH 10 정도의 강한 알카리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쩡바웨이씨는 “ 알카리 성분이 마른 호수 바닥은 단단하고 메말라서 풀씨가 내려앉아도 자랄 수 없어요. 사장은 바람에 날린 모래를 쌓이게 해 풀씨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고, 또 겨울철에는 눈을 쌓이게 해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 이라고 우리의 힘을 북돋웠다. 초원은 우리 모두의 것 “엄마, 왜 우리는 이렇게 떠돌아 다녀야지요?” “아가야, 초원은 어머니와 같은데 한 곳만 밟으면 멍이 들어 아플 수 있으니까 골고루 밟아줘야 하지 않겠니?” 몽골 옛 이야기의 한 대 목이다. 유목민의 삶을 정처 없이 떠도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유목민들은 계절에 따라 풀과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다녔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를 경우 초원의 퇴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순환을 통한 휴식 기간을 두었다. 가축이 풀을 먹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먼저 말들이 부드러운 풀을 먹고 난 뒤 소가 지나고 그 뒤를 양과 염소가 뒤 따른다. 이 균형이 깨지면 초원의 환경과 생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채소를 기르지 않는 것도 초원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초원은 목축민 모두의 것이자 양과 염소, 소와 말, 낙타의 것이기도 했다. 초원에서 말은 사람의 동료였고, 양과 소는 가족이었다. 소똥은 취사용이고 양 똥은 난방용으로 사용되었다. 울타리가 쳐진 초원, 순환의 균형이 무너지다. 이는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서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초원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생태 이민을 장려하고 초원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유목민에게 점유권을 불하했다. 첫 번째 불하 시도는 지혜로운 노인들에 의해 거부당했다. 초원을 사유화 하면 지속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초원은 각각에게 분할되었고 거칠 것 없던 초원에는 울타리가 처졌다.  불하된 땅이 넓다고는 하나 가축을 기르기엔 풀이 부족하고 휴식을 주지 못하는 초지는 점차 황폐해져 갔다. 사료를 사서 먹이는 상황이 보편화 되었다. 울타리가 쳐지면서 유목민들은 땅에 기둥을 박고 집을 지었다.  더 이상 유목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유목이 불가능해지면 내몽골 자치구의 초원문화가 사라질 날이 가까워지고, 초원의 사막화도 가속화 될 것이다.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된 상황에서 자연의 복원은 사람의 역할이 일정 정도 필요하다.  초원에 풀씨를 심는 것도 인간의 최소한의 개입이다.  따라서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한 많은 노력과 비용에 초원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방법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오래된 미래로 가는 길은 오래 지속된 문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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