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8.8 |
[허철희의 바다와 사람] 어살 이야기
관리자(2008-08-13 15:01:13)
신전에서 물고기를 잡다 孰編山木包江渚   누가 산나무 엮어 강물 둘렀는가 潮退群鱗?一漁       조수 빠지자 많은 물고기 한꺼번에 잡히네 却笑陶朱勞水畜       비웃노라 도주공의 물고기 기르는 수고를 坐敎滄海自驅魚       앉아 있으면 창해가 자연히 고기 몰아오네 위의 칠언절구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사암 박순이 부안사람 동상 허진동의 '우반십경'에 부쳐 지은 시로, 그 당시 부안의 어살 풍경이 선하게 그려지는 작품이다. ‘우반’은 지금의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이다.   어살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에 울타리처럼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엮어 함정을 만들어 놓고 밀물을 따라 밀려온 고기떼가 썰물 때 이 함정 안에 갇히게 하는 어로방법이다. 요즘처럼 어업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주로 연근해 어장에서 어업이 이루어지던 시절, 어찌 보면 원시적이랄 수 있는 이 어살이야말로 조수를 따라 회유해 들어오는 고기떼를 일시에 다량으로 포획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어로방법 중의 하나였다. 그러기에 "좋은 목에 있는 어살은 못자리하고도 안 바꾼다."는 옛말이 있다. 이렇게 목이 좋은 어살을 ‘신전(神箭)’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어업을 어전(漁箭)어업이라고 하는데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칠산바다를 끼고 있는 부안은 수심이 얕은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어살 목으로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서도 이곳 부안의 어살 규모가 가장 컸었고, 해세(海稅)의 납입도 가장 많았던 곳이었음을 여러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누런 황금조기나 삼치, 부시리(방어), 갈치 등이 어살마다에 가득 걸려들었다."는 이곳 노인들의 증언으로도 부안의 어전어업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내 어릴 적 기억(1960년대)으로도 그렇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부안의 변산, 마포라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얼핏 보아서는 영락없는 산중마을로 보이지만 산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넓은 바다와 접하게 된다.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고. 썰물 때에는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사리 때면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려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는 ‘하섬’이라는 섬이 있고, 어살이 두 곳 있었는데 어살은 동네 아이들의 쏠쏠한 놀이터였다. 우리들은 갯벌에서 공차고 망둥이 낚시질하며 놀다가 물때가 되면 어살로 달려갔다. 어살 가득 걸려든 고기들을 물때에 맞춰 다 잡아 올리려면 바쁘기 마련으로 우리가 좀 거들어 줄라치면 어살 주인은 좋아라했다. 이 때 잔챙이 고기는 우리 차지가 되었다. 어살에서 잡은 고기를 들고 개선장군처럼 어깨를 으쓱대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어살이 이렇듯 부가가치가 높고 국가적으로도 귀중한 세원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직접 경영하는 어살이 많았다. 왕실이나 권문세가들이 요즈음 투기꾼들이 땅 투기하듯 목 좋은 어살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렇게 어살을 놓고 서로 이익을 다투다보니 피해를 입는 쪽은 자연 힘없는 어민들이었다. 이들이 부과한 과중한 세금, 그것도 어세로 어물을 부과해야 마땅함에도 피륙이나 포목 따위를 부과해 이를 견디다 못한 어민들의 야반도주가 속출하였을 정도로 어살운용의 폐해가 심각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부안의 어살에 관한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이러한 기록 중에서 효종 때 전라감사 정지화(鄭知和)가 왕에게 올린 계문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부안현(扶安縣)에 예전에는 어전(漁箭)이 20군데가 있었는데, 그중 열한 개는 궁가에 점유당하고 여덟 개는 성균관에 소속되었으며 단지 한 곳만 본현이 힘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숙경 공주(淑敬公主) 집에 탈취당하였습니다. 부안은 격포(格浦)의 출입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사신 행차가 연이어, 유독 그 폐단을 받고 있습니다. 옛 어전 한 군데를 그대로 본현에 소속시켜 주소서.” 그러나 이렇게 성행했던 부안의 어살도 갯벌의 황폐화로 인한 연안 어족자원의 고갈과 동력선, 어군탐지기, 나일론그물의 보편화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변산면 대항리 갯벌에 한 곳 남아 있는데 잘은 몰라도 이 어살이 전라북도 유일의 어살일 것이다. 나일론그물로 옛날의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대신했지만 기능은 예와 다름이 없는 어살이다. 또 예전에는 어살에 조기, 삼치, 부시리 등이 많이 걸려들었지만, 요즈음은 전어, 숭어 등이 걸려든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 어살도 언제 그 명을 다할지 예측 할 수 없다. 어살 주인 김효곤 씨(59)는 나이 먹어 힘에도 부치고 고기도 안 잡히니 몇 해만 더 하다가 어살 문을 닫아야겠다고 한다. 부안에 단 하나 남은 어살이 내 어릴 적 추억과 함께 사라질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허철희  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 허철희/ 1951년 전북 부안 변산에서 출생했으며, 서울 충무로에서 '밝'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며 변산반도와 일대 새만금갯벌 사진을 찍어왔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자연과 생태계에 기반을 둔 그의 시선은 죽어가는 새만금갯벌의 생명들과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의 삶으로 옮겨져 2000년 1월 새만금해향제 기획을 시작으로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2003년에는 부안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룻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