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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 |
[테마기획] 책하고 놀자 5
관리자(2008-08-13 14:58:18)
마음을 두고 오다 윤영래  문화저널 편집장 “야. 너 심심허지? 나도 진짜 심심해 죽겄다.” “사람들은 자기 말만 하기 좋아하니까, 내 하소연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는 나무, 새, 들풀, 돌멩이들에게 말 가로채일 염려 없는 하소연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것들이 고마웠고 그래서 이름이 궁금해졌다.” 2005년 12월 『적막』(창비) 이후로 시인은 오랫동안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 작년 산문집 『박남준 산방일기』(조화로운 삶)가 출간됐으나 2년 반이 넘도록 시인은 지리산 자락에서 삶을 유영하고 있다. 물론 그가 은둔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에도 참여했고, 하동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는 대운하를 반대하는 ‘운하 이후’를 낭송하기도 했다. 시인의 잔잔한 삶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심정이었지만, 문화저널 독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중 한명인 박남준 시인을 하동으로 찾아봤다. 시가 찾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그 양반, 지금은 지리산 골짜기 악양 동매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삶은 정직하고 성품은 깨끗하고 몸은 아담하고 버릇은 단순하고 행동거지는 품위 있고 눈매는 깊고 손속은 성실한 데다가 시서에 능하고 음주는 탁월하고 가무는 빛나는 佳人입니다. - 한창훈 (소설가) 심원재(心遠齋),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도연명의 시 중에, ‘마을 근처에 띠집을 짓고 살아도 수레 소리와 말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것 또한 그러한 것이니 이런 뜻인 게지. 산 중에서 맑은 물소리, 시원한 바람소리를 듣고 살아도 마음이 시중의 번다함에 놓여나지 못하고 있으면 잡다한 저잣거리의 삶이고, 저잣거리 가운데 살고 있어도 마음을 먼 산빛에 두고 있으면 그것이 산 중의 삶이 되는 것이니, ….” ‘잡다한 저잣거리로부터 마음을 멀리 두라’는 뜻의 심원재는 그의 집 당호다. 검은등뻐꾸기가 ‘흐흐흐흐’하고 자신을 비웃었다고, 분명 그러했다고 여겨 뜯던 쑥을 쥐고 가슴의 눈물을 쏟았던 때, 남들은 그 소리를 ‘홀딱 벗고’라고 들었다고 해서 “우습다, 우습구나”했었다. ‘소리 하나도 마음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가 없구나’하고 깨달았다는 시인 박남준. 마음을 멀리 두는, 마음에서 멀리 두는 그래서 종국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다스려지는 삶을 악양 동매마을 꼭대기 ‘심원재’에서 텁텁하게 우려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름을 불러준다. 혼잣말. “야. 너 심심허지? 나도 진짜 심심해 죽겄다.” 마당에 툭 튀어나와 있는 돌멩이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러고는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나도 우리 할머니 그러던 것처럼 혼잣말하는 나이가 됐구나.” 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돌멩이에게 말을 건넨 것이지 혼자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는 사람 아닌 것들에게 말을 붙인다. “사람들은 자기 말만 하기 좋아하니까, 내 하소연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는 나무, 새, 들풀, 돌멩이들에게 말 가로채일 염려 없는 하소연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것들이 고마웠고 그래서 이름이 궁금해졌다.” 직접 덖은 차를 내놓았다. 향이 잔잔하다. 색이 맑고 은은하다. 차를 덖을 때의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인지. 찻잔을 내려놓는데 가까운 곳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지빠귀란다. 조금 있으니 딱새 녀석 한 마리가 울타리 위에서 여름 낮 한때를 유희하고 있다. 심원재 스피커 아래서 알을 까고 자란 녀석인데 다 자라서도 멀리 가지 않고 여전히 식구로 남아 울타리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 딱새 녀석뿐만 아닐 터이다. 심원재의 식구 중 하나로 끝까지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들은. 시인은 이미 갖가지 나무와 들꽃에도 도가 텄다. 보이는 들꽃마다 복수초냐 아니냐 만을 물어대던 안도현 시인에게 애기똥풀을 가르쳐줬고, 그래서 안도현의 <애기똥풀>이 우리에게 올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대표로 출전한 ‘꽃 이름 알아맞히기 대회’ 덕분이다. 담임선생님 손에 이끌려 들로 산으로 꽃을 공부하러 다녔던 기억이 모악산방 시절, 혼자 지내던 시간 속에 부활했다. 가지런 반듯한 책꽂이에서 자리 잡은 여러 권의 식물도감들은 그의 그런 추억이 다만 고운 화석에 그치고 만 것이 아님을, 아직도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름을 불러주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마음을 주다보면 궁금해지지. 뭘 좋아할까,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알아가게 되는 거구. 궁금하니까 알아보고 싶어서.” 시인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었다. “매실장아찌, 양파장아찌, 호박 하나 따서 호박찜, 새우젓 넣고.” 요즘 뭐해 드시냐는 물음에 “밥 해먹지 뭐.” 퉁스럽게 답하더니 꼴깍 침 넘어가는 식단을 슬슬 읊었다. 뒷마당에 배나무와 사과나무가 한 그루씩. 옆 뜰에는 토마토가 주렁주렁이고 그 옆 가지나무에 가지 두개가 실하게 달렸다. 호박 넝쿨 틈틈에 연초록 호박이 숨어 있고, 얼마 전 열매까지 다 내어준 매실나무는 올해의 일을 다 마친 한가로운 폼이다. 붉은 석류도 익어가고 고추도 새파랗게 잘 열었다. “복 중에 찾아오는 손님 야단도 치고, 풀도 베고, 차도 마시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시 쓰고 혼자 행복하고.” 근황을 물어본 이가 맥없다. “별 보고 차 마시고, 별 보다 술 마시고 그러다 자고. 그렇게 지내고 있지.” 걸려온 전화에는 이리 답하고. 홀로 지내는 것, 맞다. “혼자 살아보니 문득 예전 선비들은 어찌 지냈을까 궁금해져서 문헌을 들춰봤지. 마당에 파초를 심어 빗소리를 즐겼다 하기에 나도 마당 앞에 파초를 심었고. 여름날 파초 잎에 비  드는 소리, 참 멋진 표현이지. 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넓은 잎 안으로 든단 말이야. 숙우도 그렇지. 본래 찻물을 적당히 식히는 그릇인데 ‘익을 숙’ 자를 써서 물을 익힌다고 표현한 건데 식히는 것이 아니라 익힌다고. 참 멋지잖아.” 말을 곰곰 되새겨 아름다움을 불러낸다. “왼 마당 비파나무 옆에 금목소가 한 그루 있어. 꽃은 지질하지만 향이 참 좋아. 멀리까지 그윽하거든. 옛 선비들이 금목소도 즐겨 심었다 하기에 나도 금목소를 사러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왜 은목소는 안 사느냐고, 본래 쌍으로 심는 것이라 하더라구. 그래, 이렇게 대꾸했지. 아저씨. 내가 혼자 사는 사람이거든요. 나는 혼잔데 나무들끼리 죽이 맞아서 잘 사는 꼴은 못 봐요. 그냥 금목소만 주세요.” 그래서 합환목이라 부르는 자귀나무도 절대 본인 손으로는 심지 않았다. 뒷뜰 구석의 자귀 한 그루는 어디선가 날아와 떨어져 뿌리내린 녀석이다. 첨엔 대여섯 그루였더란다. 꼴 보기 싫어 막 잘라내다가 그 애들이 ‘참, 신경질 하고는...’할까봐 하나는 그냥 남겨 두었더니 눈치도 없이 쑥쑥 자라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스스로도 혼자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를 써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늘 고민하는 그는 정작 혼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남들은 ‘형, 됐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하던 운동을 아직도 하고 그러세요’라면서 별 일 아닌 듯 취급했지만 나는 대운하 공약이 너무 위험해 보였어. 주변에 우려됨을 얘기했지만 마이동풍이고. 그러나 이 땅에서 글을 쓴다는 이름으로 이만큼 살아왔으니까 다른 일은 몰라도 운하를 막고 이 땅을 살리는 일에는 내 몸을 내놓아야겠다, 혼자 즐거운 시는 이제 그만하고 나이가 이만큼 됐으니 그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수경스님께서 연락을 하셨어. 그래 시작이 된 거지.” 시인은 별 일도 아닌 듯 덤덤히 풀어놓지만 그 결심부터 지금까지의 걸음걸음이 절대로 덤덤했을 리 없음을 굳이 부연치 않아도 알 수 있다. 수백 개의 촛불 앞에서 시를 외치는 그는 그러므로 혼자일 수 없는 시인이다. 함께 가고 있는 시인인 것이다. 다시, 심원재. 작은 연못 안에 노랑어리연이 옹기종기다. 오전 나절, 만개했던 꽃잎이 오후가 되니 꽃잎을 깔끔하게 접어 버렸다. 진초록의 반질반질한 연잎만 연못에 그득하다. 전에는 정지로 드는 문이 있었을 자리에는 관상용, 놀이용으로 키운다는 벌통이 층층이 올려 있다. 통통하게 꽃가루 묻혀오고 하루 한 때 나와서 붕붕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즐길 뿐이라 하니 박남준식 벌통의 존재 이유다. 책상 아래 단정한 지필묵. 책상 옆에는 가지런히 개켜져 있는 여름 볕에 잘 마른 빨래. 이렇게 몸은 산 중에 있어도 시인의 마음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인 저자거리에 가 있다. 때로는 ‘사장님, 부자 되세요.’ 하는 천박한 싸구려 인사말이 난무하는 저자거리에 몸을 두고 그 마음은 심원재의 고요 속에 와 있기도 하다. 그러면 시는 그 마음을 찾아 간다. 시가 와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시가 오지 않으면 시인은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별이 쏟아지고 은하수가 흐르는 밤, 시가 찾아오는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은 바램. 그것을 심원재에 두고 왔다. 다음에 찾을 때는 방금 무친 싱싱한 꽃게무침을 싸들고 가야겠다. 즐기는 반찬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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