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8 |
[테마기획] 책하고 놀자 1
관리자(2008-08-13 14:53:21)
책하고 놀자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13.6%가 휴가기간 동안 밀린 독서로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답했다. 여행을 가겠다는 사람들에 이어 2위에 독서가 올랐으니 독서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덥고 습한 우리나라 여름의 특성상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하느니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책을 읽는 것도 실속 있는 일이다. 번잡하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이들이라면 오랜만에 책과 함께 조용한 휴가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가 있다면 자녀들 독후감 숙제도 도와줄 겸 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사러 가는 것도 귀찮다면 인터넷서점도 있다. 집에 에어콘이 없다고? 그럼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자. 시원한데다가 구내식당도 있어 맛있는 밥 한끼도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성인들을 위한 몇 권의 책을 문화저널이 독자들의 추천을 받아 소개한다.
책과 함께 보내는 여름
초등학생 자녀들과 읽는 책
『적』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황량한 들판, 멀리 떨어진 참호 속에서 두 명의 병사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전투지침서에는 적을 죽이지 않으면 적이 그와 가족을 죽일 ‘괴물’이라고 써 있다. 홀로 남은 참호속에서 배고픔과 외로움, 두려움을 견디다 못한 병사는 기습공격에 나선다. 그러나 적의 참호는 텅 비어 있다. 적도 그처럼 기습공격에 나선 것이다. 적의 참호 안에서 그는 적의 가족사진과 전투 지침서를 발견한다. 병사는 적도 자기처럼 가족이 있는 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자기 것과 똑같은 적의 지침서에는 그를 살인귀로 묘사하고 있다. 다비드 칼리의 『적』은 아주 쉽고 명료하게 전쟁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적과 아군으로 규정되는 이분법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허구일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또한 전쟁을 위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조작되는지를 간명하게 들려준다.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세르주 블로크의 그림과 함께 예리한 통찰과 유머로 풀어낸 수작이다.
『그런데 철학이 뭐예요?』
한기호 글, 윤정주 그림 / 천둥거인
논술과 창의력, 사고력이 자녀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한 개의 정답찾기만을 요구하고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또다시 논술학원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고. 이것이 바로 호기심을 바탕으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탐구하는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품을 수 있는 철학적 질문을 만화로 구성했다. 인간의 본성, 지식의 확실성, 정신과 육체, 결정론과 자유의지, 행위 판단의 기준, 문명과 삶의 가치 등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여섯 가지 질문을 뽑아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자연스럽게 철학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우선 만화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갈등 상황을 보여주고, 문제가 무엇인지 밝힌 뒤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 상황을 제시해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이끈다. 저자가 어린이들과 함께 한 철학수업을 통해 얻은 다양한 이야기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도입만화에서 문제제기, 토론, 철학교실, 마지막 나도 철학자로 구성된 부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꽃신』
김소연 글, 김동성 그림 / 주니어 파랑새
『명혜』로 제11회 좋은어린이책 대상을 수상한 김소연이 펴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집. ‘꽃신’, ‘다홍치마’, ‘방물고리’ 등 세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편의 제목은 모두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건들을 빌려온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작은 물건들은 보잘것 없지만 신분차이를 넘어서 소설 속 인물들을 엮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꽃신’은 16세기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산속 사찰에 홀로 남겨진 역모죄인 선예와 화전민의 딸인 달이가 신분격차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다홍치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전라도 강진 유배 시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방물고리’도 역시 19세기 조선 팔도를 누비고 다녔던 보부상의 일화에서 글감을 얻어 왔다. 김동성의 그림은 그 치밀함과 함께 부드러운 서정성을 담아내 글읽는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철저한 신분사회의 테두리 안에서도 자신의 주인으로서 자존감을 세우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유리벽’으로 표현되는 현대의 다양한 계층의 벽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현재진행형으로 끝난 글의 마무리는 깊은 상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들에게
『비뚤어질테다』
시나가와 히로시 글, 권일영 옮김/ 씨네21
성공적인(?) 불량학생 되기. 일본의 만담 개그 스타인 시나가와 히로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대를 배경으로 쓴 청춘 모험극이다. “학교에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인간관계가 있다. 회사 다니는 사람은 직장 상사와의 인간관계가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거기엔 폭력이나 이지메가 없다.” 소설 이야기처럼 학교는 훨씬 복잡하다. 단지 서열관계가 학업이나 폭력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틀릴 뿐이다. 2007년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영문프린트지원작으로 선정된 ‘김판수 당선, 그 후’라는 작품도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역학관계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불량학생을 동경해 다니던 기숙학교를 때려치우고 새학교로 전학한 히로시의 모험을 그린 이 소설은 흔한 ‘모범생표’성장소설은 아니다. 불량학생들은 아무 이유 없이 싸우고 남의 물건을 훔치며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신고식도 치른다. 하지만 졸업식에서 우는 평범한 아이들이고 형의 죽음에 변화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불량학생인 이유는? 단지 질풍노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생고수』
안광복 글 / 웅진지식하우스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미성년의 원인은 이성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부족한 데 있다.”
『인생고수』라는 제목 밑에 ‘삶의 열병을 앓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카운슬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부 ‘고단한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2부는 ‘원하는 것 하며 살기’, 그리고 3부 ‘너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고 싶다’의 세부분 모두 스물다섯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분들은 독립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교사다. 성적이나 이성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인생고수들의 삶과 사상을 얘기한다. 인생고수가 바로 철학자들인 것이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청소년들의 고민해결법을 찾아낸다. 2년간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한 ‘철학의 지혜’를 손질해 한 권으로 묶어냈다.
『주니어 수학사』
김리나 글, 문앤박 그림/휴머니스트
학창시절 수학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듯 싶다. 미적분이며 함수, 도형 그리고 각종 고차방정식까지.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도대체 누가 수학을 만든 거야. 누구나 한번쯤 품어 봄직한 질문이다. 수학교사인 저자는 누가 수학을 만들었는지부터 수학의 발전과정과 어떻게 쓰였는지를 역사를 통해 들려준다. 수의 탄생에서 각 시대별로 중요하고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 유물들이 소개된다. 사지선다와 단답식에 길들여진 한국현실에서 수학은 공식을 외우고 풀면 되는 것일 뿐이었다. 실생활에서는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을 제외하고는 간단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면 끝날 테니까. 하지만 수학의 핵심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논리적 사고력에 있다는 것은 깨닫게 한다. 또한 수학의 발달과정을 통해 인류문명의 발달과정까지도 같이 이해하게 한다.
『New 야한 질문 쿨한 대답:청소년 사이버 성상담 100문 100답』
성문화연구소 펴냄 / 깊은강
한국성문화연구소가 사이버상담실을 운영하며 수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펴낸 청소년 성교육서. 피임, 낙태, 자위, 성폭력 등 어른들에게마저도 폐쇄적인 우리나라 분위기상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던 것들을 청소년들이 그들의 언어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성에 대한 인식수준이 아직도 정력강화나 포르노 정도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청소년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성이란 아름다운 것이라는 초보적인 담론을 벗어나서 청소년들이 솔직하게 그들의 입장과 고민을 얘기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떠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책
『NO!-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장 프랑수아 칸 글, 이상빈 옮김 / 이마고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용기. 진리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노예제도에 대해 ‘NO!’라고 외쳤던 링컨, 천동설에 맞서 ‘NO!’를 주장한 갈릴레이, 폭력에 저항한 간디의 ‘NO!’등 인류를 진보케 한 역사적인 ‘NO!’들의 반역사전이다. 이들이 앞서 외쳤던 ‘노’들은 현재에 와서는 보편타당한 진리로 인정받고 있다. ‘노’와 ‘예스’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노’와 ‘예스’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역사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역사를 거시적으로 통찰하게 한다. 또한 오늘날의 문제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길러준다. 저자가 말하는 ‘노’는 ‘예스’라고 말하기 위한 ‘노’다. 반대를 위한 ‘노’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시킨 것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노’,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다. 귀족이면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토지개혁을 주장하다 암살당한 그라쿠스 형제, 스페인의 잔인한 아메리카 인디오 학살을 고발했던 신부 라스 카사스,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을 홀로 밝혀낸 쇠러 케스트너 상원의원 등 그동안 역사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으나 현재의 유럽의 의식과 제도를 만든 인물들을 역사의 무대에 다시 올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에도 ‘노’라는 외침이 울려퍼지기를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여행할 권리』
김연수/ 김영사
길에서 만난 사람과 문학 이야기. 여행을 하면서 문득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확인하듯이, 작가 김연수는 국경을 넘어서 자신의 문학과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작가에게 여행이란 길에서 스친 사람냄새 나는 풍경이자 문학적 상상력의 원동력이다. 깐두부만 먹는 이춘대씨와 중-러 국경을 넘으면서 조명희의 시를, 중국 용정에서는 차학경과 윤동주를, 샌프란시스코 버클리에서는 강용흘과 김사량을, 동경에서는 이상을 떠올린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통하여 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삶에 대한 생각들을 엮어내어 진지한 사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서 국경을 경험하기도 어렵고 홀로 숨기도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인식의 외연을 넓히는 탈출구는 외국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김연수는 잔잔한 문체로 풀어낸다. 취재를 위한 중국체류시절과 작가교환프로그램을 통해 머물렀던 독일과 미국, 초대를 받아간 일본 이야기까지. 김연수가 어슬렁거렸던 국경에 한번 기웃거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