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 |
[문화시평]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열일곱 ‘젊은 시선’
관리자(2008-07-08 18:38:39)
황미연 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 전주예술고 교사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그동안 잊혀져버린 전통의 명인들을 무대로 모시고 그분들의 춤과 가락을 복원하며 기록하는 뜻 깊은 무대로 정착해 가고 있다. 70여명의 명인들이 무대를 빛냈고, 숨어있는 명인들이 발굴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의 무게감을 읽을 수 있다. 그간에 녹아든 춤, 가락, 소리는 우리의 숨을 가쁘게도, 혹은 진정제의 역할을 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일곱’. 그 이름만으로도 풋풋한 첫사랑 같은 수줍음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
오랫동안 묶은 장맛처럼 그리 많은 동작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그리 많은 가락을 얹지 않아도 그 호흡이나 느낌을 표현해냈던 그동안의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이 올해는 맛있게 익은 과일을 담가놨던 과실주를 처음 열어 맛을 본 그 설렘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제목이었다.
‘열 일곱번째 젊은 시선’. 우리의 전통문화를 올곧게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젊은 연주자들의 맛은 어떻게 표현될 것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공연은 시작되었다.
공연은 내드름을 ‘삶도 푸지게 굿도 푸지게’ 하는 임실 필봉굿으로 열고 소리와 가락, 그리고 ‘선율이 있는 타악’인 우도굿으로 호남좌도와 우도의 대비로 막을 완성하였다.
전라도의 흥겨운 놀이판이 손의 춤사위 , 발의 디딤새, 가락을 잡아가는 멋, 상모와 부포놀음으로 정적인 분위기에서 신명나는 분위기로 점차 호흡을 끌어 올려 폭발하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 춤의 한판이 벌어졌다. 굿판에 녹아든 춤의 경지는 요즈음 같이 각박한 세상에 서로서로 어우러져 서민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이 하나가 되는, 서로가 함께 어울리고 호흡하는 풍성하고 또 풍성함을 안겨주는 무대였다.
정정렬제 춘향가 중 ‘옥중가’와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은 여자와 남자, 슬픔과 기쁨을 대비시키는 무대였다. 정은혜는 장단의 붙임새가 변화무쌍하고 정교하게 구성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정정렬제 판소리를 극적 표현을 살려 흔들어 낸다거나, 밝고 씩씩한 표현보다는 애조 띤 계면조 표현을 확대시켜 이면에 맞는 소리로 관객의 숨을 녹아내었다. 황갑도는 심청가 중 백미로 심봉사가 임당수에 재수로 죽은 줄 알았던 심청이가 황후가 되어 맹인잔치를 열어 심봉사를 만나 눈을 뜬다는 내용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매우 극적이며 선 굵은 당당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두 소리꾼은 화려하고 정교하며 세련된 표현이 넘치는 소리와 굵직한 소리, 좌중을 압도하는 장쾌한 육성으로 소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었다.
우리나라 악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가야금과 거문고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정서를 담아내는 악기이다. 항상 선비들의 곁에서 음률을 읊었고, 우리네 서민들 속에서 우리의 노래를 줄에 얹어 노래했던 악기이다. 때론 선비의 손끝에서, 때론 악공의 손끝에서....... 그 안에 우리음악의 명곡이라 할 수 있는 ‘산조’가 탄생하여 오늘의 우리가슴을 채워주고 있다. 그 오랫동안 채우고 또 채워져 이루어진 산조. 그 만큼 산조는 오랫동안 손끝과 마음속에서 농익어야 만이 표현될 수 있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것이다. 최옥삼류의 가야금 산조와 한갑득류 거문고산조를 연주한 두 젊은 연주자는 그 어렵고 끊임없는 수고로움을 원하는 산조의 맛을 위해 진중하면서도 깊은 뜻을 담아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깊은 연조가 있는 산조의 맛을 세련되고 세심한 표현을 담아내려는 또 다른 젊은 산조의 맛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음을 두드리고 어느 순간 자지러지며 핏줄 속으로 흘러들어와 온몸을 전율케 하는 연타음과 새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춤사위. 소리 구성과 음악성이 뛰어나며 애절함과 비장감, 환희가 느껴지는 소리. 손가락과 술대 끝으로 한판 잘 엮어낸 산조마당 .
힘 있고 생생하며 기가 가득한 무대였다.
그 어렵고 어려운 길을 소리 없이 이어내고 있는 젊은 명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활을 만들 때 붙이고 잇고 또 붙여 완성된 활에 숨을 불어 넣어줘야 활이 되며, 사용할 사람의 체력에 맞게 활을 조절하는 길들이기 작업을 몇 번이나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숱한 시간과 길고 긴 기다림과 깊고 깊은 외로움을 견뎌내야만 훌륭한 활을 만들듯 우리 가락 우리 춤을 이어내는 일도 그 길고 긴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뎌내야만 하는 정성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젊은 시선이 오늘을 지키고 있을 때 훗날 진정한 전라도의 가락 전라도의 춤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젊은 시선’의 연주기획은 돋보였다. 현재 있는 숨어있는 명인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명인들을 키워내는 일도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외로운 작업의 길을 한번쯤 칭찬해주며 다정한 친구처럼 옆에 꼭 두고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희노애락을 품어주기를 기원하는 일 또한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부담없이 즐기듯 연주하여 넉넉하고 곰삭은 맛으로 되돌려지기를 바란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고 했던가. 여러 종류의 음악을 혼자서 반주하여 불협화음을 내는 소리로 내내 듣는 이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였다. 연주자는 초 긴장상태여도 보여주는 것과 듣는 이는 아주 편안한 상태여야 하는데 연주자 역시 불편함을 가지고 연주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아쉬운 무대였다. 무대의 포커스가 연주자에게 있다면 고수가 여러 명이어야 하거나 아니면 많은 시간을 연주자와 고수가 맞춤연습을 했어야 할 것이었다. 이러한 아쉬움 또한 ‘젊은 시선’이기 때문에 윙크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공자는 말했다. 예악을 조절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진 벗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일이 유익한 즐거움이 가장 큰 3가지 즐거움이라고. 오늘 우리가 예를 벗 삼아 악을 즐기고, 무대를 채워준 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객석을 같이 하며 멋을 즐기는 어진 벗이 많다는 것, 우리도 또한 공자의 즐거움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