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 |
[전라도 푸진사투리] ‘파토! 파토여, 파토!’
관리자(2008-07-08 18:37:31)
‘파토! 파토여, 파토!’
김규남 언어문화연구소장
“뜬금없이 느닫없이 갑작스러이, 서든니, ‘파토! c8 파토여 파토!’ 고 뚝심 있는 핏대가, 엄청시리 허벌나게 보고 어벌그마잉.”
“점잖은 판에 웬 c형문자여?”
“허는 짓이 꼭 논다니 화토판 같어서 그러제이.”
“파토 소리 날만도 헌 종은 알지만서도 인자 시루 얹을라고 헌게 조깨 진득어니 좀 지키봐야 안 쓰겄소잉?”
“에, 저그, 조까 우악시런 아자씨가 듣고 어 허는 저 ‘파토’란 말은 MBG, KBX 우리말 사랑 애(愛) 버전(Version)으루다가 말허자먼 표준말 ‘파투(破鬪)’의 방언임다잉.’ 그렁게 ‘토’는 무식헌 말, ‘투’는 조까 먹물 팅긴 말이라 이 말임다잉. 긍게 ‘화토’의 ‘토’도 ‘꽃들의 전쟁’ 즉, ‘화투(花鬪)’의 ‘투’다 그 말이여요, 그러닝가니 ‘파토’나 ‘화토’는 좋덜 안 헝게 ‘파투’, ‘화투’ 요로코롬 히야 쓴다 이 말임다잉. 알겄지라우. 하이카나 폼을 조까 잡으실라먼 폼이 위로 가게, 멋이냐, 에, 폼 위, 폼 위 있게 쓰시야 허고, 그냥저냥 살다가 가실라먼 꼴리는 대로 쓰시먼 된다 이 말임다잉. 이상으로 삐삐삐 에 우리말 사랑 애(愛) 시간이었슴다잉. 이 방송은 궁닙 앞산대학교 협찬임다잉.”
위에 예시된 말하기는 비상식적인 방식이다. 지독한 방언 화자가 표준어 규범을 설명하는 상황도 그러려니와 설명을 위해 사용하는 말이 모두 방언 어휘거나 말투로 점철되어 있으니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말투의 용도가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품위도 없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말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분명 그 나름의 기능이 있다. 힘의 열세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여 그 심리적 억압 상태를 벗어 후련함을 얻기 위한 말하기 방식, 마치 채만식이 식민 강점기의 고단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태평천하라 표현하고 윤 직원을 등장시켜 철저하게 비아냥거렸던 그 방식처럼 말이다. 그때의 말하기는 상대방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그리고 그 엉뚱함의 기발함이 크면 클수록 말의 효과가 배가된다. 그래서 욕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 세기와 해방감이 비례할 수 있는 셈이다.
2008년 초여름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촛불의 의사소통은 그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흘렸던 선열의 피와 얼룩진 눈물로부터 얻어진 값지고 품위 있는 말하기였음에 분명하다. 그리하여 우리 민국은 이제 대한으로 나아갈 기틀을 마련한 것을 밝히 보여주었으며 앞으로 어설픈 말하기로 민국을 가볍게 여기는 위정자들의 가슴에 새로 쓴 민주주의, 그 앙다문 침묵의 언어를 가로새겼다.
어쨌든 ‘파토’는 ‘잘못된 화투판을 무효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시답지 않은 일을 중도에 끝내는 온갖 행위’라는 뜻으로도 쓸 수 있으니, 시작은 화투판에서 되었으나 이미 그 판을 넘어 두루 쓰임새를 갖게 된 말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