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 |
[허철희의 바다와 사람] 게 이야기-2
관리자(2008-07-08 18:32:28)
횡행개사(橫行介士)
게를 창자가 없는 동물이라 하여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하는데, 앞을 향하여 똑바로 걷지 못하고 횡橫으로, 즉 옆으로 걷기 때문에 횡행개사(橫行介士)라고도 한다. 이러한 게걸음은 ‘속 창시 없는’ 것만큼이나 뭔가 야무지지 못하고 비실거리는 듯한 부정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거품을 물기도 하고, 가위처럼 생긴 집게발로 자기를 해치려는 놈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기개도 있다.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게와 원숭이가 떡을 해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떡이 다 되어 먹으려고 하자 원숭이가 가로채어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 게는 원숭이에게 같이 나누어 먹자고 사정하였지만 원숭이는 오히려 게를 놀려대며 혼자 먹다가 떡을 땅에 떨어뜨렸다. 게는 잽싸게 그 떡을 주워서 굴속으로 숨어버렸다. 순식간에 전세가 반전된 것이다. 이제는 원숭이가 굴 앞에서 게에게 떡을 나누어 먹자고 사정을 한다. 그러나 게가 원숭이 말을 들어 줄 리 없다. 원숭이는 제 엉덩이로 게의 굴을 막고는 ‘뿡’하고 방구를 뀐다. 그러자 게가 집게발로 원숭이 엉덩이를 물어뜯는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까지 원숭이 엉덩이에는 털이 없이 빨갛고, 게의 집게발에는 원숭이 엉덩이 털이 그냥 붙어 있다.“
이만하면 지혜도 있고, 기개도 있는 게이지 않은가.
양반체면에 게걸음 할 수 있나...
게들은 옆으로 걷는다. 그런데 유독 양반티를 내며 앞으로 뚜벋뚜벅 걷는 게가 있다. 밤게다. 이 놈 성격 하나는 느긋하다. 다른 게들은 위험을 느끼면 잽싸게 구멍 속으로 숨거나, 모래펄을 파고 숨지만 이 밤게란 놈은 ‘양반체면에 소나기 내린다고 뛸 수 있나?’ 하듯 급할 게 없다. 건드리면 죽은 척 펄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고 위기를 모면할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유유히 짝짓기를 한다. 얼마나 열심인지 게거품을 물고 말이다.
생김새가 둥근 밤 모양이라 '밤게'라는 이름을 얻은 듯하다. 몸은 주황에 가까운 살색으로 너비는 3~4cm 정도이며, 집게다리는 크고 억세며 납작하다. 걷는 다리는 모두 매끈하고 뒤로 갈수록 짧아진다. 매년 6~7월에 갯벌에 가면 가끔 짝짓기 하는 밤게들을 볼 수 있다. 모래펄갯벌에서 산다.
부뚜막 위의 밥도둑놈 ‘도둑게’
우리나라 육지에서 볼 수 있는 게는 참게와 도둑게다. 참게는 호수나 강 등 물속에서 주로 살지만 도둑게는 바닷가 야산이나 들에서 산다. 예전에는 이 도둑게가 어찌나 흔한지 바닷가에서 1~2km 떨어진 들판의 논두렁이나 밭두렁, 우물가, 마당, 심지어는 부엌에까지 넘나드는 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도둑게라는 이름도 부뚜막 위의 밥을 훔쳐 먹어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도둑게의 몸의 생김새나 크기는 갈게와 비슷하나, 몸이 둥그스럼한 갈게보다는 더 각져 있고, 집게발이 아주 붉으며, 성질도 사납다. 걷는 다리에는 누르스름한 잔털이 많이 나 있다. 겨울에는 야산 나무뿌리 주변에 구멍을 파고 겨울잠을 자고, 봄이 되면 바닷가로 내려와 갯벌에서 산란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도둑게를 “흔히 바닷가의 인가(人家)에 들어가 놀면서 흙과 돌 사이에 구멍을 판다. 이런 까닭에 ‘뱀게(蛇蟹)’라고 이름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안 지방에서는 ‘비암게’, ‘비양게’라고 부른다.
영원한 빈대 '섭속살이게'
조개탕을 먹다보면, 간혹 손톱만한 크기의 게가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게가 '대합속살이게' 혹은 '섭속살이게'이다. 이 게는 일생을 조개류의 속살에 빌붙어 산다. 일생을 집걱정, 먹을 것 걱정 없이 사는, 일테면 영원한 빈대인 셈이다. 이렇게 조개에 빌붙어 사는 게가 조개에게는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보통 백합의 속에 들어가 있으나 모든 백합에 있는 것은 아니며 간혹 굴이나 가무락조개, 가리비 등의 속에서도 발견된다. 몸은 둥근 육각형으로 크기는 1cm 정도로 작으며 색은 살색이다. 집게다리는 가늘고 몸의 껍질은 말랑말랑하다.
갯벌의 전위예술가 ‘엽낭게’
모래펄갯벌에 가면 녹두알만한 크기로 뭉쳐놓은 무수한 모래경단(팰릿)을 볼 수 있다. 마치 전위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업해놓은 추상물 같다. 어떤 생명체가 이런 끼가 있는 것일까? 물이 들어오면 이 작품은 없어져 버릴텐데, 없어지면 또 해놓고...
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다리에 쥐가 날지 모르니 큼지막한 돌이나, 하다못해 비닐봉지라도 깔고 털석 주저앉아 숨죽인 채 기다려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경계를 풀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게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등딱지가 콩나물 콩만한 크기로 아주 작다. 엽낭게다.
이 엽낭게는 모래펄에 수직으로 10~20cm 정도 굴을 파고 살며, 물이 빠지면 굴 밖으로 나와 모래를 계속해서 입에다 넣고 굴리면서 유기물(영양분)만 섭취하고 나머지는 경단을 만들어 집 주변에 늘어놓는다.
자처럼 다리가 길어서 '자게'
자게는 제 몸집의 세 곱절쯤 되는 집게다리를 가지고 있다. 자처럼 긴 집게다리를 가졌다고 하여 자게라고 이름 지어졌다. 이 자게가 이동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마치 기중기나 포크레인 접듯이 긴 집게다리를 몸에 바짝 붙여 접은 다음 걷는 다리를 이용해 옆으로 느리게 이동한다.
자게의 몸은 가로로 길쭉한 마름모꼴로 이마는 뾰족하게 솟아 있다. 집게다리는 매우 긴 반면 걷는 다리는 앙증맞게 작으며, 집게다리의 긴 마디는 삼각기둥처럼 생겼다. 몸의 색은 베이지색이나 회색에 보라색을 띠며, 몸 전체에 조그만 돌기들이 많이 나 있다. 몸의 크기는 큰 게의 경우 등딱지가 길이 5cm, 5.5cm 정도이다. 수심 50~200m 깊이의 진흙 바닥에 사나 사리 때에는 가끔 하조선 부근의 암초지대에 올라와 기어 다니거나 펄 속에 죽은 듯이 묻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작이 매우 느리고 건드리면 죽은 척하는 습성이 있다.
허철희/ 1951년 전북 부안 변산에서 출생했으며, 서울 충무로에서 '밝'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며 변산반도와 일대 새만금갯벌 사진을 찍어왔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자연과 생태계에 기반을 둔 그의 시선은 죽어가는 새만금갯벌의 생명들과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의 삶으로 옮겨져 2000년 1월 새만금해향제 기획을 시작으로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2003년에는 부안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룻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을 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