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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7 |
[최효준의 숨쉬는 미술이야기] 미술의 본질
관리자(2008-07-08 18:30:18)
-미술제도와 향수자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장 19세기 중엽, 미술사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사진이 출현한 것이다. 이로써 미술은 기록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미술은 단순한 장식의 수단으로 머물기를 거부하게 되었고 종교와 정치로부터 독립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미지를 재현하여 인간의 시각을 모방하려는 미술의 세계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화가들은 여러 요소를 새롭게 인식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인상주의 이후의 여러 사조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미술은 스스로 새로운 존재 의미를 찾고자 긴 여행을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엽에 마르셀 뒤샹은 남자 소변기나 걸상 위에 올려놓은 자전거 바퀴와 같이 이미 만들어진 사물이나 그 조합을 작품으로 전시에 출품하였다. 엄청난 악평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누백년에 걸쳐 계속되어 온 미술 개념에 관한 상식을 뒤엎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레디 메이드’란 예술가의 선택을 통해 명실상부한 예술품으로 승격된 기성품을 말하는데 그것은 발견이 곧 미(美)가 된다는 혁신적인 예술이념이었다. 이로써 뒤샹은 미술 작품의 고유성, 독창성이 미술 작품 자체 내에서 찾아지는가 아니면 그 사물과 관련된 작가의 행위에서 발견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이러한 질문은 그 이후의 많은 작가들의 미술 창작을 통하여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오면 서양의 미술은 지난 반세기 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형식, 기법, 주제, 관점 등이 무한히 다양해지며 미술이라는 개념이 거의 한계 없이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 이래 이른바 모더니스트 미술사관에 반기를 들고 다양한 사조들이 출몰하였다.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필두로 개념미술, 대지미술,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이 풍미하였고 이제 미술 작품은 왕왕 그것 자체보다는 그것이 존재하는 사회 정치 문화적인 맥락으로부터 의미가 부여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예술(미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 자체가 미술의 본류가 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술은 고래의 회화 또는 조각의 형식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수년 안에 그 같은 범주화에 대한 상식이 무너졌다. 바닥에 놓인 캔버스에 위아래도 없이 공업용 페인트를 흩뿌린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 초대형의 단색 화폭에 가느다란 세로선이 한두 개 그어진 바넷 뉴먼의 색면추상, 나체 모델의 온몸에 푸른 색 물감을 묻히고 그 몸을 캔버스에 굴리고 찍는 퍼포먼스로 만들어진 이브 클랭의 <인체측정학>연작, 물감이 얼룩진 침대 시트를 그대로 작품으로 제시한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침대>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낡은 타이어를 목에 두른 박제 염소와 같은 콤바인 페인팅, 폐차를 압축해 만든 세자르의 조각, 기계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장 탱글리의 작품, 그리고 여러 해프닝 작품, 이런 것들이 점점 주류 미술로 자리 잡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미술은 더 이상 아름답거나 감동적이 아니어도 되었다. ‘네오다다’라는 이름으로 많은 작품들에 있어 일상으로부터 끌어낸 주제가 각별하게 사용되었고, 의미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오브제인 국기를 그린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병치시킨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회화, 전호들에서 언급했던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대중만화의 한 장면을 조금 변형시켜 크게 확대시킨 리히텐슈타인의 유화 등이 끝없이 이어지는 새로움의 충격파를 구성하였으며 이로써 미술과 일상간의 구분은 갈수록 무의미해졌다. 여기서 무엇이 미술 작품을 미술 작품이게 하는가 하는 의문에 생긴다. 오늘날 많은 비평가들은, 미술가가 미술품을 창작하여도 그 자체로서는 소용이나 가치가 없고 그것들이 화랑이나 미술관과 같은 여러 미술제도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한다고 본다. 뒤샹이 사인을 해서 <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장에 내어 놓자 미술제도 내에 들어온 이 소변기가 조각과 같은 작품으로 여겨지게 된 것처럼... 한편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용어는 18세기에 비로소 그 근대적 의미, 즉 천재적 개인의 독창적 산물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창작물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기본적으로 미적 아름다움을 지닌 물체이다. 전적인 정치선전물도 아니며 종교적인 또는 신성한 대상도 아니며 주술이나 공예도 아닌, 이렇게 예술이라 불린 것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우리가 지금 ‘미술’이라 부르는 것들 모두가 일상생활의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오늘날 미술관 박물관에 가득 찬 200년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미술품은 원래 ‘미술’이 아니었다. 2만5천년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인물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역시 원래 미술이 아니고 어떤 주술적인 목적의 부적 같은 것이었을 터인데 그 의미와 가치를 예술제도 안에서 새롭게 규정하고 박물관 안에 전시함으로써 미술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뒤샹이 화장실의 변기를 미술 전시회의 좌대 위에 올려놓고 <샘>이라고 명명하여 변기를 미술로 바꾼 것이나, 조그만 주술적인 인물상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비너스>라고 명명하여 그것에 ‘미술’이라는 세례명을 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일까? 분명 뒤샹의 레디 메이드나 피카소의 꼴라쥬들은 우리가 인식하며 재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이상적인 본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결국 무엇이 미술인가를 규정짓는 것은 관습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고 그 규정은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미술은 미술제도의 산물이 되었다. 변기, 동물의 시체, 산업폐기물, 해묵은 잡동사니, 그 어떤 것이라도 권위 있는 미술관이나 유수의 국제미술행사나 명망 있는 화랑에 전시되면 그것은 새로운 미술이 된다. 이리하여 1970년대 이후 화랑, 미술관, 미술잡지, 경매장과 같은 미술체계들이 개별적인 미술 그 자체보다 더욱 강력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도 많은 대중들이 전시장에서 “이게 무슨 미술이라고 여기에다 전시를 하나? 정말 알 수가 없네”라고 소리 없는 불평들을 한다. 강력한 미술체계 안에서 회의하는 관람객, 감상자, 향수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들은 그저 무지해서 무시되면 그만인 존재일 뿐일까? 오늘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미술로 보되 변기 <샘>은 미술로 보지 않는 많은 수의 대중들이 있다. 현대 미술에 대한 공감대를 그들과 함께 형성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미술체계 운영 주체들이 왕왕 간과하는, 그러나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도전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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