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 |
[마당수요포럼] 지역문화 지키기, 해법 없나
관리자(2008-07-08 18:23:00)
지역문화 지키기, 해법 없나
지역문화는 어떤 의미와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지역문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지역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실 변화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지난 17대 국회에서 진행되었던 지역문화진흥법은 끝내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되었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문화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지역문화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문화 창조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문화향수권 신장과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지역문화를 진흥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지역문화가 무엇이고 육성을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지난 2003년부터 지역문화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방안으로 지역문화진흥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6년 5월에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역문화예술발전의 근간인 지역문화진흥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원칙과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적합한 정책을 개발하며 지역의 역량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이 필요로 하는 수요자 중심, 지역의 자율성과 분권의 원칙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예순 여섯 번째 마당수요포럼에서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으로 지역문화진흥법제정을 위해 노력했던 이광철 전 국회의원으로부터 “왜 지역문화인가!(지역문화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왜, 지역이고 지역문화인가? - 이광철 전 국회의원
우리는 지금 중대한 전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혼돈된 변화의 시점을 맞고 있고 중요한 사회적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에 있습니다. 20세기는 위에서 아래로(TOP-DOWN)의 사회, 수직사회, 중앙집중, 중앙집권의 사회였습니다. 이사회에서의 인간은 주체적인 actor가 아닌 reactor로서 존재하였고 시장에서는 시장의 대응자로, 국가권력 주체에 대한 피통치자(reactor)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수동적·객체적 인간존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종이신문과 매스컴이 큰 힘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일방향의 통신매체가 top-down 방식의 수직적 사회유지에 큰 기여를 해왔습니다. 수직사회에 있어 정보의 독점과 통제 그리고 지식과 여론의 조작과 왜곡이 일방향의 매체를 통해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수직사회에 있어 지방은 중앙에 예속되어 중앙에 동원되고 중앙의 지시에 의해 행사되는 부속물로서 지방이 갖는 개성과 자율은 상실되고, 지방의 창의성은 무시되고 오로지 중앙에 획일되는 사회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울이었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에서 살아야 행세도 하고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지역, 지방은 서울에 동원되었고 사람도 물자도 서울로 몰렸고 지방은 피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와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로 인하여 지역 간의 불균형을 가져왔고 이러한 불균형은 지역 간의 갈등과 메울 수 없는 깊은 상처로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top-down방식의 수직사회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쌍방향 통신매체(인터넷)의 등장과 성장은 이러한 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20세기 reactor인 시민, 국민, 소비자, 대응자가 21세기에서 actor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민권의 성장과 쌍방향 통신매체의 증가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의사결정의 구조나 여론 수렴의 과정이 bottom-up사회로의 변화와 함께 수직사회의 문화가 수평사회로의 문화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급자 중심의 사회가 소비자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고 민이 중심이 되어 통치(government)의 시대를 마감하고 협치(governance)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협치란 관과 시민사회, 산업체, 학교 등 지역사회 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지역사회 발전과 방향을 결정하고 그 역할을 분담하여 시행하는 수평적 정치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이제 on-line에서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off-line에서 공론화의 결의가 실현되어지는 놀라운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쌍방향 매체의 성장은 수동적, 객체적 인간존재를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actor로서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들은 네티즌으로서 2002년 대선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면서 전면에 등장하였고 지금은 촛불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경쟁력은 수평문화에서 찾아야하고 수평의 문화의 핵심은 지방, 지역에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분권과 참여, 개혁이 key-word가 될 것입니다. 중앙에 동원되고 중앙에 빼앗겼던 지역의 개성과 자율, 그리고 지역의 창의성을 회복할 때만이 세계화의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사회의 균형발전을 추구 할 수 있으며 지역 간의 편차와 대립과 갈등을 해소함과 동시에 국민적 통합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중앙에로의 집중과 상명하복 관계보다 분권과 분산, 사람과 사람의 수평적 관계가 보다 더 생산적이며 인격에 대한 존중입니다. 지역의 개성과 자율,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존중과 지역 간의 연대가 21세기의 경쟁력이며 삶의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지역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21세기 경쟁력 그 자체이며 삶의 공간이자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여기에 “왜? 지역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역이라는 화두의 사회적·시대적 중요성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지역사회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국가균형발전,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공동체, 지역문화 활성화 등 지역에 대한 접근의 당위성은 대부분 명쾌하지만 이러한 문제설정의 동기와 목표는 매우 이질적이고 상충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구나 당위적이고 추상적으로는 지역사회의 성장과 지역의 발전을 통한 사회통합적 발전을 강조합니다만 개발주의와 생태주의, 특성화와 보편화, 경쟁력 강화와 상호 보완적 성장 등의 현실적 갈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역에 대한 접근은 실질적으로 전혀 다른 철학적, 정책적, 실천적 기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역이 주요한 화두로 자리잡게 된 과정이 민주주의 발전과 쌍방향 소통매체의 등장에 의한 개인의 자각에 의한 것만이 아닌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과정에서 언급되어 온 지방화(localization)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계화와 지방화가 병렬적이며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동시적이며 결코 지역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에 있어 지방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체화이자 실질화 과정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장은 지리적, 물리적 확장의 차원만이 아닌 지역사회 재구성이라는 내밀하고 구체적인 경로를 통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서 동시적으로 추진되는 지역화는 자본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소비시장의 확대와 소비주체의 재생산을 위한 가장 구체적인 전략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모델의 보편성, 획일성을 일방적으로 강요받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대다수 지역사회가 직면한 경제적 위기는 결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적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자본의 경향성에 의한 강요된 위기이자 지역사회해체(자본의 구조조정에 근거한 지역사회의 재구성)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지역이 기회이자 위기라는 말의 내포된 함의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결국 지역이라는 화두는 민주화의 과정과 자본주의의 재편과정으로 인해 지역사회를 둘러싼 주체들 스스로가 엇갈린 목표와 과제를 가지고 있고 모순적 태도를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대적 개발과 근대적(또는 탈근대적) 성찰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는 오늘날의 지역사회는 삶의 정체성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동시에 비약적인 발전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개발주의의 신화를 동경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변화를 기대합니다. 경제적 실익을 지향하는 동시에 경제적 실익과 충돌하거나 경제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권리를 지향합니다. 지역이라는 문제설정은 그 자체로 손쉽게 대체될 수 있는 장밋빛 미래나 신천지가 아닙니다. 지역은 그 일상의 복잡성만큼이나 다양한 가치와 욕망이 충돌하는 구체적인 장이자 사건입니다. 현재 직면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데 있어 그 원인과 결과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지역문화의 구체적 정책과제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즉 지역문화정책이 지역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의 문화적 차이와 삶의 질 격차해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등등의 질문은 생략하겠습니다. 또한, 지역문화에 대한 접근, 나아가 지역문화운동은 단순히 지역문화 주체의 권리확대나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차원으로 제한되어서도 안됩니다.
지역문화운동은 지역사회라는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 기반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지역문화운동은 현 시기 진행되고 있는 삶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빈곤화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시간과 공간이 지역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그 현장에서 대안적 삶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실천전략으로 기획되어야 합니다. 지역문화운동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지역의 해체및 재구성에 맞서 있으며 지역문화차원에서 문화적 정체성, 창조성, 공공성, 다양성등을 확장시키는 실천만이 아니라 대안적 지역사회의 구성, 재생산, 확장 등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풀뿌리 사회운동, 지역운동의 통합적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하겠습니다.
지역문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이성이자 지향점은 지역사회라는 일상적 삶의 존재조건에서부터 대안적 삶의 가치와 방법을 형성해 나가는 전략입니다. 지역문화운동은 새로운 지역문화운동의 담론을 형성해 가야합니다. 지역문화운동은 지역과 지역을 연계하는 담론 확장의 전략을 제시해야 합니다. 지역문화운동은 지역사회 내의 새로운 민주주의와 대안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기획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지역문화의 정체성, 공공성, 다양성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지역문화운동 주체들의 재생산과 네트워킹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