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진하게 구수한 강된장 맛
관리자(2008-07-08 18:21:09)
된장은 우리나라 조미식품으로서 간장과 더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식품이라 할 수 있다. 콩의 원산지가 우리나라 옛 부여 땅으로 알려져 있으니 만큼, 간장이나 된장은 먼 옛날부터 만들어 먹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삼국사기> 신문왕 때의 폐백 품목에 ‘메주(?)’가 등장한 것을 볼 수 있고, <해동역사>에도 발해에서 ‘된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지금은 된장도 간장도 공장 제조의 것을 흔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만해도 각 가정의 주부들이 직접 요량하기 마련이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간장, 된장에 대한 정성은 실로 대단하였다. <규합총서>는 ‘만일 장맛이 사나우면 비록 진수미찬이라도 능히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장독이 더러우면 맛이 사나우니 하루 두 번씩 냉수로 정히 씻기되, 독에 물기 들면 벌레나기 쉬우니 조심하여야 한다’고 했다. 집안 어른들은 ‘간장이나 된장 맛이 변하면 집안에 궂은 일이 생긴다’는 말씀이기도 하였다.
나는 고향의 여름철이면 날된장으로 상치쌈도 즐기고 강된장으로 호박잎쌈도 즐겨 먹었다. 별반 좋아하지 않았던 꽁보리밥도 텃밭에서 바로 뜯어 우물물에 씻어 낸 상치가 있거나, 밥물에 쪄낸 호박잎만 있으면 짜증없이 감식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점심에 즐긴 ‘강된장찌개’는 고향의 저 맛까지를 마냥 돌이켜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식당 이름도 「고미옥」(古味屋,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391-51, 전화 063-271-1236)으로, 우리 음식의 옛 맛을 내세우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스타은행 부설 고하문예관」에서는 길 하나 건너 바로 앞 골목에 자리한 식당이다. 이를 이제껏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식단을 살펴보니, 점심 특선으로 ‘강된장찌개’, ‘청국장’(각 5천원)과 흑염소 요리로 ‘흑염소탕’, ‘흑염소곰탕’(각 9천원)/흑염소수육(대 4만5천원, 소 3만5천원)/흑염소전골(대 4만5천원, 중 3만5천원)일 뿐이다. 주류(酒類)는 별도로 되어 있다.
함께 간 친구도 ‘강된장찌개가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염소띠여서인지, 이제껏 염소고기에 선뜻 마음이 내킨 적이 없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에도 그랬다.
상차림은 간소했다. 주문한 ‘강된장찌개 백반’이 나오기 전 몇 가지 찬들이 놓인다. 그 찬들도 두 사람이 가볍고도 몬당하게 비워낼 수 있는 분량들인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가지나물,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김튀각, 홍합조림, 낙지젓갈, 부침개 등이 어쩌면 인색하달 만큼 소량씩 놓여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차림이 외려 정갈하고 입맛까지 돌게 한다.
강된장찌개와 백반은 상차림이 끝난 후 올려졌다. 진하게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앞을 밀어든다. 식욕이 솟는다. 일반적인 된장국과는 냄새부터가 다르다. 일본식당이나 횟집의 ‘미소시루’와는 그 빛깔도 냄새도 맛도 농담(濃淡)이 다르다. ‘미소시루’는 빛깔이나 냄새나 맛이 희부연하다고나 할까. 우리의 구미에는 ‘조선 된장’으로 끓인 강된장찌개여야 제맛이다.
작은 뚝배기의 강된장찌개도 한 그릇의 백반도 깨끗이 비우고야 나는 숟가락도 저분도 놓을 수 있었다. 「고미옥」의 우순덕(禹順德)여사는 고향이 내 고향에서 가까운 장수라 했고, 나는 모처럼 옛 고향의 강된장 맛을 만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