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6 |
[독자편지] 요즘 들에 나가보셨나요
관리자(2008-06-09 23:04:50)
이근수 그림쟁이
봄 동산은 막 움터난 나뭇잎사귀가 꽃같이 동글동글, 산벚꽃과 어울리고 이원수 시인이 노래하듯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지요.
봄을 살고 여름을 맞는 요즘 산엔 이팝꽃 아카시아꽃이 희다가, 바람따라 눈처럼 내려요. 그 아래 들로 내리는 산자락 오솔길가와 밭가에 흰니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찔레꽃이 눈부셔요. 노오란 씀바귀가 한창이고 들길가로 두둑으로 쭉뻗은 엉겅퀴들이 누가 큰지 키 대어 뽐내선 들, 가만 내려 보면 온갖 풀·꽃들이 봄을 살고 여름을 맞아요.
미끈미끈 감나무잎도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솜털 입은 아기 참새들이 걸음마 배우듯 키 작은 나뭇가지들을 옮겨 다니는 산에 들에는 그렇게 봄을 살고 여름을 맞이하는 목숨들이 가득 차요. 사람 손닿지 않는 그곳에는…
요 며칠을 임실 필봉굿 전수관에 벽화를 그리러 다니거든요. 지난 해 뜨거운 가을 어느 날 붓을 들었다가 비온다 쉬고, 그러다 추운 겨울이라 물감이 언다 놓고, 올봄 들어서야 비갠 날 찾아서 이틀 사흘 띄엄띄엄 그리다가 이제 마무리에 들어섰어요.
그래 새찻길 담쌓아 막은 높으신 자동차전용 도로로 얼른 갈까다가 산?들 누리며 꿈꾸며 낮은 옛길따라 길을 나서는데, 길 샐틈 없이 담쌓아 막은 새찻길 속을 다투듯 달리는 것과 달리 산 따라 물 따라 굽이굽이 옛길을, 여름같이 나뭇잎 오른 산도 보고 스쳐가는 들풀도 만나며 넉넉 흘러가는데, 수출이농 WTO, FTA에 나이든 농부 한사람씩 띄엄띄엄 외로선 밭도 만나고, 너울너울 가다보니 이게 가을인가 싶다가 아직 봄이 안왔나 덜왔나 싶다가, 여름을 바라보는 오늘 이게 어인 일인가. 바짝 마른 밭둑은 물론이고 넘어까지 바짝 타오르는 풀밭이 마치 가을 진 풀숲 같거든. 제조체라…
얼마 안가서 밭둑을 넘어 길가까지 뿌려대는 제초제냄새를 맡았네. 벗어나서 실려오는 아카시아 꽃내 맡으려 코를 잔뜩 열어 맡아 들이는데… 켁. 목조이는 제초제냄새라. 벌겋게 타오르고 바짝 마르고 내 목따라 조여들고.
맨 처음 우주에 나가 지구를 바라본 사람이 ‘푸른 별’ 이렇게 불렀다지요. 풀이 가득차서 푸르른, 푸른별. 풀은 풀다, 풀어주어요. 흙먼지 날리는 저기 중국땅에 풀?나무를 심는 것은 메마른 땅 목마름을 풀어주는 거지요. 풀 나무가 없으면 큰비 내릴 때 산이 무너져요. 불에 탄 벌거숭이산도 먼저 풀이 나고, 작은 나무가 자라서 산을 지켜 세우거든요.
풀은 삶을 열고 지키는 열쇠에요. 누렁이도 풀 뜯어 먹어야 미치지 않아요. 언제 들으니 붉게 물든(적조(赤潮 낀) 바다에 황토를 뿌려 주면 낫는다면서 중국서 날아든 황사가 나쁜거 아니고, 거기 매연이 중금속이 섞여 있어 나쁘다지요.
우리땅은 우리네 속살같이 붉어요. 먹을 수 있고 어느 씨앗이든 품어서 싹틔우고 무럭 키워내는 귀한 땅이에요. 풀이 찢겨나간 우리땅 속살이 다 드러나요. 중국황사처럼 제초제 섞인 우리 흙 먹을 수도 없고 거기 난 먹이도 두려워요. 풀이 없으니 누렁이도 없고 그 빈자리 채워주마고 저기 유에스아메리카 산 미친소가 달려들잖아요. 풀을 흙을 살리는 마음이 없으니 갯벌 죽여 새만금하고 이제 산도 내도 뒤집어 운하 만들려고 하지요.
풀은 풀어주는데 풀이 없으니 자꾸 쌓여 독이지요. 독을 풀지 않으면 죽어요. 풀이 우리를 살려요. 엊그제 비내리고 멎은 길을 다시가요. 푸릇푸릇 푸른 풀잎이 다시 돋아나요. 풀이 땅과 우리를 살려요. 제초할 수 없는 풀과 땅이에요. 그러나 그러다 풀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면 사람도 살 수 없어요. 아니 풀에 앞서 사람이 사라질게요.
제초제 뿌리지 말아요. 덧붙여 산과 들과 내를 뒤집어 목숨 앗아갈 운하를 하지 말아요.
문화는 마음밭에 힘주는 일이잖아요. 마음을 일으켜서 몸을 움직이지요. 산 것은 움직여요. 일어나 풀 살리는 마음들을 모아 주기를 문화저널에 꿈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