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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 |
[문화시평] 광대들의 학교
관리자(2008-06-09 23:03:18)
신명 나는 한 판 놀이마당 이근영ㅣ전주고 교사 광대(廣大). 그들은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는 존재들이었다. 비록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고 살아 왔을까. 그런 광대들이 현대판에 다시 살아나 우리들 얼굴에 함박 웃음을 만들어줬다. ‘광대들의 학교.(전주시립극단, 5월 16일~18일, 전주덕진예술회관)’ 제목부터 한바탕 웃고 나올 수 있는 공연일 거라는 냄새가 물씬 났다. 그래 어떤 식으로 공연이 펼쳐질까 생각했지만, 연극 하면 떠오르는 암전 상태에서 시작하던 기존의 연극과는 그 형식이 달랐다. 공연에 출연할 카메오 연기자를 선발하는 장기자랑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방식. 그래 바로 우리의 연극은 이런 것이었지. 관객이 단순히 연극을 관람하는 존재가 아닌, 함께 참여하는 열린 무대였던 것. 같이 참여할 때 웃음은 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공연은 자연스럽게 웃음의 장으로 바뀌었다. 카메오 연기자를 뽑고 본 공연으로 이어지는 장면도 자연스러웠다. 본 연극의 뼈대는 심청전의 주 내용과 그 심청전을 공연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광대들의 이야기가 무리없이 잘 짜여져 있었다. 연극을 관람하는 과정에서 이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과 실험을 했을 지 상상이 갔다. 소리 연습에 사물놀이 연습, 그리고 마임 연습까지. 배우들이 땀을 흘린 만큼 무대는 활기로 가득 찼고, 관객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흥겨운 웃음으로 같이 어우러질 수 있었다. 특히 내 개인적으로는 깨진 거울 사이로 두 배우가 호흡을 척척 맞추며 마임 비슷하게 했던 그 부분이 정말 압권이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이로,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저렇게 연기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광대들은 단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잘못된 제도나 현실을 비꼴 줄 아는 풍자의 정신을 가진 존재들이다. 광대들의 학교에서도 간간이 그런 풍자의 정신이 잘 섞여 있었다. 단지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장면은 심청을 새로 뽑기 위해 미인 대회 형식을 추구했던 부분이다. 배우들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난 장면이면서 연극 배우가 단지 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긴 했지만, 마지막에 미인대회를 비꼬는 그러한 통렬한 풍자가 적절하게 섞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우리 연극은 특별한 무대나 장치가 없어도 언제든, 어디서든 행해질 수 있는 그런 연극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의 참여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그런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한 판 놀이의 마당이고 축제였다. 그런 면에서 광대들의 학교는 우리 전통 연극의 장점을 잘 살려내려는 실험 정신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왠지 전통 악기를 다루고, 심청전, 춘향전 등의 공연을 한다고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작품이었다. 광대들의 학교는 야외에서 특별한 무대장치 없어도 충분히 볼 만한 공연으로 보인다. 그렇게 만들기까지 열심히 노력한 배우들과 스텝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열린 무대를 지향하는 다른 작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진정한 프로란 무엇일까. 내 개인적으로는 아마추어 정신을 버리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추어 정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 연극을 했을 때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리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간직하고 노력한다면, 지금보다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정으로 프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광대들의 학교는 첫 실험 무대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더 많은 우리의 고전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흔히 우리나라는 한(恨)의 민족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한판 신명나는 놀이를 통해서, 풍자와 해학을 통해서 건강한 웃음으로 고난을 이겨냈던 그런 신명의 민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를 신명으로 이끌어주던 그 중심에 광대가 서 있었다. 이번 공연들의 광대들도 그런 역할을 잘 해냈다. 지치고 힘들게 사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신명을 안겨줬다. 더불어 공연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광대들이 생겨나길, 더 많은 곳에 광대들의 학교가 생겨나길, 관람자의 입장으로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광대들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근영/ 1973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1999년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주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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