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6 |
[이흥재의 마을 이야기]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원반교 마을
관리자(2008-06-09 23:02:41)
호남대로의 전주유씨 물고기 마을
옛날에는 이런 일이 흔히 있었다. 집을 나와 서울가는 열차를 무조건 탓다. 물론 사연이 다 드라마처럼 구구절절하다. 올해 49살의 유병덕씨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물론 물고기 마을의 주인공이다. 어른들 자주 하시는 말처럼 그 동안 얘기를 다 늘어놓으면 책을 몇 권 써도 부족하다는 인생 역정을 살아 왔다.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을 우연히 말리다가 피해를 당해 1년 이상의 병원 생활을 하느라, 대입 예비고사를 못 치루어 대학에 진학을 못하고 학원에 입학을 했었단다. 그 당시 1970년대는 예비고사에 합격을 해야 4년제 대학에 원서를 내고 본고사 입학시험을 치룰 수 있었다.
학원에 다니던 중 아버지 주머니에서 서울가는 차비만 훔쳐 무작정 서울로 도망을 갔다. 새벽녘에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을 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막연하고 허기져서 지쳐있던 중 헌혈차에 올라가 피를 팔려다 결국 국수빵에 우유 한 병만 마시고 나왔단다. 그 뒤 예정된 코스처럼 자장면 배달을 하다, 일일 공부 학습지 배달원으로 취직을 해서 발바닥에 군살이 배길 때까지 뛰어다녀 최고의 매출을 올렸단다. 이런 과정 속에 가정교사로 취직 요즘말로 쪽집게 과외를 해서 1년 만에 그때 당시 1200만원을 벌어서 다시 고향에 내려왔단다. 이 돈으로 고향에 내려와 사업을 시작했으나 쫄딱 망했다.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하려면 정열과 포부만 가지고는 안되더라 ‘경륜과 연륜 그리고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단다 - 21살 때 친구 아버지한테 물고기 3마리를 얻어다 기르면서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물고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줘야겠다는 결심으로 물고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물고기를 기르기 시작 - 이제는 13년 전부터 어린이 생태 체험 학습장으로 전환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대자연의 신비감과 오묘함을 체험하게 해서 올바른 정서를 가지고 착하게 성장하게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지금까지 운영을 한다.
그 동안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인면어(人面魚)가 21살이 되었다. 그리고 검정색 고기를 개발 ‘검은천사’라고 명명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게 했다. 물고기 ‘검은천사’에 얽힌 사연이 있다. 1996년 2월 22일 물고기 마을 대표 유병덕씨는 부인 이미순씨와 그의 어머니 김순옥씨가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단다. 꿈속에 귀인이 나타나 “세상 사람들에게 액운을 쫓고 행운을 안겨주는 검은 물고기를 탄생시켜 희망의 등불이 되게 하라”는 계시가 담긴 이상한 꿈을 꾼 후 10여 년간의 반복 교배를 통해, 검은 물고기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한 전세계 유일한 신품종 물고기란다. 많은 분들이 이 물고기를 가정이나 영업장에서 기르고 화를 면하거나 가정이 평안하고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단다.
이 마을 이름인 ‘반교’는 쟁반반(盤) 다리교(橋)를 쓴다. 마을앞이 목포에서 서울에 이르는 호남대로로, 다섯 개의 돌로 된 다리가 있어 마을이름을 ‘반교’라고 했다. 금구-이서-반교-용덕-삼례로 가는 국도 1번 옛 도로였다. 지금의 전라남도 즉 옛날 전라우도에 사는 사람은 전부 이 다리를 건너야 서울에 가서 과거시험을 보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주변에 4~5 마을이 생기면서 이 마을을 원반교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은 전주유씨 집성촌으로 전주유씨 4대손부터 이 마을에 살아오고 있다. 지금 17代 손들이 수천마을, 갈동마을 등 이 일대 집성촌을 이루어 300여 년간 살고 있다. 이 마을 주변은 전부 전주유씨 땅이란다. 반교리 8만평 전주대 앞 5만평 서곡 3만평, 이서 12만평, 임실 12만평, 은석동 36만평, 김제 황산 12만평 엄청난 대지주로 재산을 여지껏 그대로 잘 보존해 왔고, 1년에 종합 부동산세만도 1억 2천만원 내고 있단다. 가히 유일여고를 세운 전주유씨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다.
용강정사와 용강서원이 전주유씨 사당인데 용강정사(龍剛精舍) 현판글씨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아버지 유재 송기면이 써준 현판 글씨이고, 사당에 제사 모실 때 쓰는 제기도 대나무로 만든 제기그릇을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목기는 일반적으로 많이 있지만 대나무로 만든 제기는 아주 드문 일이다.
언덕너머 초남이에는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첫미사를 했고, 1801년 신유박해 때는 유항검 이순이 동정 부부가 순교를 했던 초남이 성지가 있다. 지금 전주 동고산성 승암산에 있는 치명자산은 이들의 묘소를 1914년에 이장한 천주교 성지중의 성지이다. 이 유항검 유중철 모두가 전주유씨 집안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