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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 |
[신귀백 영화엿보기] 명품 통속 멜로
관리자(2008-06-09 23:02:06)
명품 통속 멜로, <부운(浮雲),1955> 구름은 모든 방탕, 탐욕과 원망,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다. -헤세- 산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는 통속 드라마다. 캐릭터의 애매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극적인 순간에 귀를 붙드는 애잔한 음악이 개입하는 방식을 취하니 영락없는 멜로다. 멜로 방식이란 것이 앞일에 대한 뻔한 예상이 가능하지만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 1905-1969)의 이 명품 멜로는 관객의 소망적 사고에 영합하지 않는다. 계급간 사랑의 불가능함을 절묘하게 조절하는 신데렐라 스타일도 아니고 <감각의 제국>처럼 금기를 넘는 숨막히는 성애의 강렬한 정서를 자극하지도 않는다. 최루덩어리 <오싱>과도 달리 덤덤히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가듯, <부운>은 편하다. 그러나 박재삼의 시처럼 ‘친구의 사랑이야기를 동무삼아 따라 나서노라면 산등성이 이르러서는 어느새 눈물이 나’기도 한다.   소화 21년(1946), 귀국선에서 내린 피폐한 난민행렬 속에 몸빼 입은 한 여자가 서 있다. 전혀 겨울 준비가 안 된 이 젊은 여자가 남자의 집을 찾는 것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하나도 극적이지 않은 만남은 덤덤할 뿐.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유키코가 찾아간 도미오카는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 몸. 골목을 나와 여관에 들어간 그들이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 베트남 장면 플레시백으로 컷과 컷을 붙이는데…… 문밖에 있는 그대 태평양 전쟁 중 농림성 군속으로 일하는 영림(營林)기사 도미오카가 근무하는 베트남에 타이피스트 유키코가 부임해온다. 성하의 나라에서 원피스 성장차림의 그녀는 늘씬하고 예쁘다. 그러나 선수 도미오카는 못 본 척 한다. 선수의 비급은 무관심, 그의 내공은 자유로운 진심, 방중술이나 미혼술의 초식을 사용하지도 않지만 그녀는 그에게 낚이고야 만다. 그가 도사라는 것을 말하는 재미있는 장면 하나, 베트남 하녀가 그를 흘낏 보면서 찻잔을 놓는 대목에서 이 남자가 문제아라는 것을 여자의 육감어린 시선으로 처리하는 것. 전쟁에 패하자 각기 귀국 한 남과 여. 조강지처와 독하게 헤어질 수도 없고 애인에게 지상의 방 한 칸 얻어줄 수도 없는 그는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의 모습일까. 일정한 직업도 없고 도미오카에 의존할 수도 없는(아니 외로워서였을까?) 유키코는 잠시 양공주가 된다. 발목을 휘어잡는 가난과 실업의 와중에 그 좁은 방이라니. 아름다운 화면과 스타일리시한 세트라는 멜러 장르 괸습에 의존하지 않는 나루세가 만든 좁은 골목길에는 궁상이 묻어난다. 누추한 골목을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그와 그녀. 쌀 씻는 소리와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리는 골목에 꼬막만한 방을 얻어 놓고 그녀는 도미오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전쟁 이후 많은 집들에서는 이렇게 남자가 문을 열고 쑥 들어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시간을 쓰다듬고 흘러가는 “우리의 로맨스는 종전과 함께 사라졌다”고 말하는 이 남자는 유키코의 매춘에 대해 모욕이나 장탄식도 없으니 무심한 구름 아니런가. 피 흘린 자리에 딱지가 앉기까지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는 상처를 들추지 않는 것. 상처 자국은 분명하고 삶은 팍팍하지만 그들은 없는 돈을 털어 온천에 간다. 여차하면 산정에서 정사(情死)하기로 한 것일까. “노가다를 해서도 같이 살자고 해놓고.” “남자는 좋겠어요.” “여자는 태평해.” 대화의 통속이라니. 그런데 거기서 이 남자는 온천에서 만난 여관집 안주인이자 여급인 여인과 알 듯 말 듯한 눈길을 나눈다. 여기서 좋은 시퀀스 하나. 시계를 잡혀주는 여관집 남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둘은 오메가 시계를 맡기고 목욕물에 몸을 담근 채 여러 날을 보낸다.     토쿄에 돌아와 편지하고 찾아다닌 끝에 유키코는 이 문밖의 남자가 여관집 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후일 그녀는 산부인과 침대에서 본 신문을 통해 여관집 주인 남자가 여자를 살해한 신문을 보게 된다. 분노나 노여움을 화면 아닌 활자로 대신하는 것은 나루세의 참한 스타일. 마누라는 아파 누워 있고 애인은 애를 떼고 여관집 여자는 살해당한 상황 속에서 도미오카는 착한 여관주인 남자에 대해 변호사 비용이라도 대고 싶어 하지만 돈이 없다. 다시 구름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삶은 간신히 살아진다. 살길이 막막했던 유키코가 자신의 첫몸을 탐한 신흥종교 교주 사촌오빠에게로 돌아가 부를 누릴 때, 도미오카가 찾아온다. 아내의 장례식 비용에 쓸 돈 이만엔을 빌리기 위해서. 돈을 급히 갚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그는 비겁하지만 사악하지 않은 남자. 다래끼가 나서 안대를 하고 온 풍신 난 모습이라니, 애들 말대로 안습이다. 무좀이 생겨 발이 아프다며 같이 걷는 그에게, 부부 같아서 좋다고 말하는 그녀. 비 되어 내리는 떠돌던 구름이 멈춘 곳에 비되어 퍼붓는 영화 후반부가 아무래도 좀 떨어진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가는 코끼리처럼 누구도 그립지 않을 열대의 나라에서 그는 나무나 키우며 은둔하고자 한다. 나무전문가이니만큼 그는 식물 같은 여인을 바랐을까. 한 나무로는 성이 차지 않아 영림의 세계에 빠져 사는 이 남자는 인생은 헤어질 때와 계산할 때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녀를 두고 떠나려 한다.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는 모습 역시 통속 그대로다. 같이 사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고 말했던 그녀의 쓸쓸한 희망은 그와 함께 하는 것.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데리고 자청한 유배를 떠난 남쪽 섬나라에는 그동안 흩어졌던 구름들이 결국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섬에 도착하기 전부터 몸살을 앓던 유키코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몸져눕게 되고. 전쟁과 가난 모욕과 슬픔 속에서 독하게 살아남은 여자는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다. 춥고 누긋내나는 방 유키코의 죽음 앞에서 도미오카는 오래 운다. 이제 더 이상 구원받을 길이 없다고 해서 흐느끼는 것일까. 문밖에서는 상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때리고 부수는 성난 비만 내리고. 어딘가에 있을 법한 드라마의 생명이 캐릭터에 있다고 할 때, 이 남자 참 다층적 캐릭터다.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 제멋대로인 남자들의 못된 속성인 욱하는 성질도 없고 그의 뻔뻔스러움에는 가면이 없다. 문 밖에 있던 이 남자 문을 여느라 망설이는 법이 없지만 그렇다고 벌컥 문을 열어젖히는 화끈함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삶의 질곡에 신음을 토할지언정 비명을 지르지 않는 그. 인내나 이해를 강요하지도 않고 급행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간이역마다 쉬어가는 그의 행보에는 억압적이고 기만적인 이성에 따른 사랑의 ‘효율성’이란 애초 없다. 반말, 넘겨집기, 허세, 변덕, 소심, 거드름, 인간의 비열함을 잔뜩 감추고 있는 사람이라며 유키코의 비난에 그는 그렇다고 인정한다. 그러니 애초에 싸움이 안 되는 거라. 여러 번 수술을 받고 우는 그녀에게 그가 뱉은 말은 “소리가 너무 커 옆에서 들려” 거기다 “너와는 죽을 수 없어, 더 미인이 아니라서” 라고 말하는 그. 허허, 나쓰메 소오세키의 「도련님」 같은 이가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이 될까. 강짜하지 않는, 비루하고 무책임한 행위에 따른 선악보다는 태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나루세는 어떠한 감독도 만들 수 없는 캐릭터의 부조에 성공한다. 울음이 타는 강을 보여 주는 나루세는 사회가 갖는 잣대나 편견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다. 그는 멜로가 갖는 방법적 측면으로서 강약고저의 정서적인 정감의 고조라는 상투성 없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이 구름에는 엄숙이나 엄살이 없다. 엄숙주의는 천박한 도덕률에 대한 증거이고 엄살은 낮은 수를 가진 자들의 노래이기에. 나루세는 우리의 도덕 이런 것 말고 말로 할 수 없는 진실의 한 종류에 대하여 관조적 자세로 이야기 한다. 완고하지 못한 인간이 갖는 수치라던가 연민을 그리되 혐오의 시선을 던지지 않는 복잡한 인간을 표현한 배우들 역시 쉽게 잊힐 사람이 아니다. 내면을 표정으로 나타내는 것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때 여기 배우들의 말하지 않고 말하는 눈길, 눈길을 피하고 또 눈길을 받는 눈길, 그저 지켜보는 눈길 등 칭찬할 만하다. 덤덤하면서도 애절한 이 영화 일본 베스트10에 반드시 들어간다. 오즈 아스지로나 에드워드 양이 <부운>에 감명 받았다는 것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부박한 현실을 견인하지 않고 의미 있는 대안을 생각하지 않는 감독이니 그래서 어쨌다고, 무슨 이야기야?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영화일 것. 인과관계나 논리적이고 짜임새 있는 플롯보다는 산만하고 느슨한 플롯, 이렇게도 영화가 된다니. 거참, 웬만한 현직 감독 혹은 감독지망생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 하면 ‘<부운>같은’ 영화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여성들이 지켜보는 <부운>과 남성이 바라보는 <부운>이 다를 것이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선수들, 선수를 꿈꾸는 사람은 따라가 볼만한 사랑이야기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겠지만, 살면서 곁눈질 한 번 안 한 사람은 그저 통속으로 보일 것이니 시간낭비 하지 마시라.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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