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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이여, 그대는 네티즌
김종윤 전북대 강사(2003-04-18 17:31:49)
필자가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한 인터넷 동호회에 최근 들어 설문조사가 실시된 적이 있었다. 이 동호회는 여느 동호회처럼 몇 개의 실명, 익명의 게시판과 자료실을 갖추고 특정 사람들이 활동하는 모임이다.
설문은 이 동호회가 자리하고 있는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실시간으로 회원의 접속여부를 알려주는 기능의 사용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이전부터 접속알림 기능이 게시판의 글 뿐만 아니라 부가된 대화기능 등을 이용하여 회원들간에 안부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의견과 접속노출 자체가 자발적 참여 및 회원의 동호회활동에 제약을 가져온다는 부정적 의견사이의 충돌이 있었고 이를 반영하여 접속알림기능의 사용과 중지를 반복하곤 했다. 이를 지켜본 운영진이 의견수렴을 위하여 게시판 하나를 활용하여 회원의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그러나 300여명의 회원 중 자신의 의견을 적은 사람은 6명뿐이었다. 그것도 우연히 찬반 각3명씩 나눠졌다. 운영진은 참여저조와 그 원인이 실명의 게시판에 있다고 생각하고 차선책으로 익명의 설문조사를 다시 하였다. 일정기간동안 이루어진 설문은 48명이 참석하였고 비록 전체 회원수에 비해서는 적은 인원이지만 실명 때보다 설문참여율이 800% 증가하였고 그 결과는 아주 근소한 차로 반대가 앞섰다. 그 후로도 그 결과를 두고 말이 많았다. 한 인터넷 동호회의 이야기지만 인터넷 곳곳에서 접속노출방지 및 익명성 확보를 위해 소리를 높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이름은 혈연을 그리고 태어남과 동시에 지연, 또 학교라는 곳을 거쳐 성장함에 따라서 학연까지 얽혀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런 이름자체가 필요하지 않거나, ID나 대화명으로 불리는 자기를 표현할 어떤 명칭을 가져야된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구별되어진다. 이 ID나 대화명을 가짐으로서 네티즌들은 혈연, 지연, 학연, 나이 등에 구속받지 않는 초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때부터 인터넷을 만나면 시공을 초월한 절대자가 된다. 마음껏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누군가의 글을 읽거나 자신의 글을 쓸 수도 있다. 익명성이 스스로에게 좀더 솔직함을 더해 진솔해지고, 사회의 눈과 규범속에서 억눌렸던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다른 자아를 표출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동호회의 경우에 익명의 게시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고민란’이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많은 고민과 비밀들을 털어놓는다. 일상 속에서는 오히려 자신에게 흠이 될까봐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자신의 독백처럼, 혹은 불특정다수에게 말해버린다.익명성이 주는 대범함은 탈선, 무책임한 언사를 만드는 병폐가 있음을 알면서도 위 동호회의 예처럼 단순히 익명성이 참여율과 자신에게 내재된 솔직한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네티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널리 보급되고 일상이 되면서 각종 메신저와 각종 사이트들은 각종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접속 및 개인의 특정정보를 무분별하게 타인이 알 수 있도록 노출하고 있다. ID 하나만 있으면 자유로웠던 인터넷에서의 생활은 이제 편리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자신의 정보에 조금씩 타인을 염두 해 둬야 하게 되었다. 마치 글 하나를 써도 자유로웠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남이 보는 것을 염두 해 둔 일기를 쓰듯 해야 한다. 점점 우리는 위치송신기를 달고 인터넷을 항해하는 감시 받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인터넷 시대의 인터넷 강국으로서 이제는 인터넷 기술개발의 발전에 걸맞는 사용자들의 정보유출방지 및 익명성에 관한 가치를 확립하고 규범을 마련해 가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