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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아스파라거스 스프의 상긋한 맛
관리자(2008-06-09 22:56:16)
얼마 전 내 집에서 만들어 먹은 요리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요리라면 흔히 조리과정과 조리시간이 걸리는 음식을 생각하기 쉽다. 이로써 보자면, 사실 요리라고 말할 것도 못된다. 손쉽고도 불과 몇 십분 만에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요리’를 ― 아스파라거스 수프(Asparagus soup)로 부르기로 했다. 아스파라거스는 식물 이름이다. 그러나 일찍이 눈여겨 본 바도 없고, 더구나 먹거리가 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고하문예관」의 문우이기도 한 문영이 여사의 선물로 이 식물을 알게 되었다.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호기심부터 앞섰다. ‘어떻게 먹나요.’ ‘생으로도 먹고, 데쳐서도 먹고, 부쳐서도 먹고, 튀겨서도 먹고, 맹물에 소금 간을 하여 끓여서도 먹습니다. 특히 독일 사람들은 으뜸 먹거리로 꼽는답니다.’ 나는 선물 받은 다음날, 내 멋대로 이름한 ‘아스파라거스 수프’를 조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문 여사의 말대로라면 굳이 아내의 ‘불편한’ 손을 빌릴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먼저 나의 부실한 잇바디를 요량하여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얇고도 엇비슷하게 썰어 놓았다. 다음, 맹물을 끓이다가 소금 간을 하였다. 여기에 아스파라거스 썰이를 넣은 것으로 조리과정은 끝났다. 2~3분 후면, 나는 난생 처음의 ‘아스파라거스 수프’를 먹을 터이다. 가까이에 있는 국어사전을 잠시 펼쳐 본다. ‘원산지는 남유럽, 여러해살이의 풀이나 잎이 퇴화하여 가는 가지가 잎의 구실을 한다. 어린 줄기와 순은 서양요리에 쓴다’고 했다. 이로써 보면, 그동안 때로 즐긴 바 있는 ‘버섯을 곁들인 참스테이크’에도 아스파라거스는 식재료로 쓰였던 게 아닐까. 이만 생각은 접고, 냄비에 끓인 ‘수프’를 양접시 아닌 탕기(湯器)에 옮겨 따랐다. 그리고 숟갈 아닌 스푼으로 우선 맛부터 보았다. 예사롭지 않았다. 지켜보던 아내에게 맛을 보라하자, ‘향이 푹 나네요.’ 의 싱거운 대답이다. 나로서도 ‘꼭 이렇다’ 모 잡아 말할 수 없는 맛이었다. 빛깔은 맹물의 흰빛인데 입안을 도는 향내는 푸른빛이다. 스푼을 놓고 탕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옆에 서양사람이 있었다면 ‘식 매너가 없는 사람’이란 웃음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푸른빛의 상긋한 맛을 식도(食道)가 고무래질하는 것을 어쩌랴. 식도를 타고 내리는 저 푸르고 상긋한 향이 몸 밖까지 풍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날 아침 끼니를 토스트 두 쪽과 한 탕기의 ‘아스파라거스 수프’와 그 안에 든 연삭삭한 아스파라거스줄기만으로 마쳤다. 만족스러웠다. 몸도 마음도 날 것 같이 가뿐하고 즐거웠다. 뒷날, 나의 한 젊은 친구(실은 새전북신문 임용진 사장)에게 자랑하자, ‘아 그걸 몰랐느냐’의 반문이었다. ‘아스파라긴산(酸)이 풍부한 스태미나 식품일 뿐 아니라 고혈압 예방에도 아주 좋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생것 뿐 아니라 통조림으로 시판되는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었으나, 아스파라거스를 내 손으로 다루어 본 즐거움, 그 푸르고 상긋한 맛을 즐겨 본 즐거움, 하나의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즐거움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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