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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 |
[독자편지] 화실 스케치
관리자(2008-06-09 22:42:44)
조영대 화가 나는 왜,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무엇을 위하여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아니고 누구인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지 내 안에 있는지 내 밖에 있는지, 안과 밖은 어디 어디에 있는지. 꽃인가, 바람인가, 향기로움인가 소리인가 따스함인가, 춤추는 새들의 색은 찬란함인가, 소리를 보고 바람을 만지며 하늘거리는 노랑뽀리뱅이는 나의 친구 유난히 길어 보이는 그 커다란 키에 바람과 함께 멧새 방울새 박새의 소리에 맞추어 온 몸으로 흔들어대며 또 다른 별에 있을 누군가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산비둘기 한 마리가 , 두 마리가 바람을 타며 곡예를 하고 있다. 까치 한 마리는 바람에 밀려 어디론가 날려가고 , 어디서 왔는지 산 까치 한 마리가 까~악 까악 하다가 어디론가 또 가다가 바람에 밀려가던 까치와 함께 되돌아와 전봇대에도 앉았다가 또 몇 몇의 산 까치는 소나무 숲속에서 계속해서 무어라고……. 그리고 약간 멀리서 들리는 큰 부리 까마귀 소리. 작년 일 년 내내 아니 이삼년 전부터 밖에서 비?바람?눈 맞으며 서있던 이젤. 그 주변에 말 벌 한 마리가 배회한다. 그 이젤은 가끔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 있었다. 그의 몸 군데군데 물감이 묻었다가 강한 햇볕에 탈색되어가는 모습은 요즈음 나의 얼굴 같다. 신선한 바람은 그를 깨운다. 신선한 바람은 색을 깨운다. 신선한 바람은 소리를 깨운다. 신선한 바람은 향을 깨운다. 공간을 걸어 다니는 나비는……. 빠르게 움직이는 나무늘보처럼 시간은 가고,  천천히 가는 비행기처럼 시간은 오지 않고……. 윤판 나물은 왜 땅을 향해 꽃을 피우고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을까. 붉은색 작은 종을 매달고 멀어져 가는 그 붉은색은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지쳐버린 커다란 분홍색은 몸이 무거워 색이 없어 질 무렵 사뿐히 내려앉는 금낭화. 몇 해 전 화원에서 가져온 향기로운 히야신스. 십수 년 전 나는 히야신스를 그리며 많은 공부를 하였다. 화도락가에 대한 것, 그림을 집중하여 그릴 때 온 몸으로 느껴지는 향기로운 전율을 경험하였다. 향기 없는 꽃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어떤 때는 못 느낄 때도 있지만) 향을 느끼고 꽃과 나는 하나가, 한 공간속의 하나가 됨을 느끼고 꽃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향기로운 색을 조합하여 본다. 일찌감치 메마른 풀 섶 사이에서 유난히 강한 모습으로 나온 히야신스는 난장이 수선화와 함께 꽃은 시들었지만 내년 이른 봄의 환희를 위하여 알뿌리를 튼실하게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맑은 영혼을 위하여, 나는 그림을 그린다. 무엇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나는 생활 한다. 나는 자연 속에서 느낀다. 나의 맑은 영혼을 위하여 유리알같이 맑은 투명한 투명함을 위하여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나, 그렇지만 나의 모든 것을 잘 보지 못하는 나. 며칠 전, 나는 내 눈의 홍채 속에 나사못이 박히는 생각을 하였다. 피가 아니고 탁한 쭈꾸미 먹물 일 것이리라는 나의 생각. 이처럼 나의 생각은 언제나 탁하다. 탁하다고 느껴질 때면 만경강 줄기의 습지처럼, 서쪽바다의 뻘밭처럼 내 화실의 작은 정원은 나의 머리를 포함한 온 몸을 정화시켜준다. 내 화실의 정원만이 아니다. 자연의 모든 것 숨 쉬게 해 주는 모든 공간은 나를 정화하며 나를 유지시켜준다.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을 배려하는 마음은 내 그림의 근간이 된다. 보여지는 공간 속에 보이지 않은 공간은 같이 있으리라는……. 하늘거리는 꽃다지, 바람 속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꼬리뱅이하나가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목을 가누지 못하고 지쳐 있다. 녹슨 철근 한 토막, 썩어가는 대나무, 스러져가는 풀 섶 한 가닥이라도 옆에 있으면 기대여 설 수 있을텐데……. 아니다! 시원한 바람은, 따스한 햇볕은 그를 반드시 곧추 세울 것이다. 조영대/ 원광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현재, 전업작가로 완주군 용진면 신지리 산 아래 과수원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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