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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 |
[문화시평] 귀하디귀한 그 이름, 남자 명창 다섯
관리자(2008-06-09 22:40:25)
“귀하디귀한 그 이름”이라니! 지난 4월14일부터 18일까지 5일 동안 우진문화공간에서는 우진문화재단 주최로 열여덟 번째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이란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공연 명칭이 하필이면 “귀하디 귀한 그 이름, 남자 명창 다섯”이었다. 송재영(1960년생), 전인삼(1962년생), 황갑도(1962년생), 윤진철(1965년생), 왕기석(1962년생) 다섯 사람이 다섯 바탕의 소리를 하였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귀하디 귀한 그 이름”에 드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들은 1960년대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지금 모두 40대이다. 황갑도를 빼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전주대사습놀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많이도 닮은꼴들이다. 이들이 귀한 것은 우선 40대 남자 명창들이 적다는 데 기인한다. 본래 판소리는 남자들이 부르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남성 위주의 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개화 이후 남자들은 판소리로부터 멀어지고, 여성들이 점점 판소리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판소리 또한 여성적으로 변화되었다. 왜 그랬을까? 판소리꾼들은 ‘사회적 멸시’를 든다. 본래 판소리 창자들은 천민 계층에서 나왔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된 뒤에도 그 유습이 남아 있었다. 천대받으면서 힘든 판소리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니 남자들이 소리판을 떠나갔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 판소리는 유흥화되었다. 고급 요정에서 유흥과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남자 명창들을 찾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임방울, 김연수를 비롯해서 정권진, 박봉술, 박동진에 이르기까지 명맥은 이어졌다. 결정적인 타격은 1960년대 이후에 가해졌다. 산업화와 함께 판소리는 설 자리를 완전히 잃고, 국가의 정책적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무형문화재 제도가 이 때 만들어졌다. 여자 소리꾼들도 힘들었지만, 남자들은 더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들이 소리로써 생계를 꾸려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판소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남자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기에 남자 소리꾼들은 귀한 존재가 되었다. 판소리에서 40대 남자 명창이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판소리 명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능이 있는 사람도 수십 년의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대개 30년은 소리를 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40대는 판소리 맛을 제대로 알고 소리하는 나이인 것이다. 앞에서 판소리는 본래 남자들이 하던 것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남성성이 강조된다. 흔히 판소리계에서는 “잘하는 여창보다, 좀 못한 남창이 낫다.”는 말을 한다. 우선 수리성이라고 하는 거친 목소리는 여성으로서는 내기 힘든 소리이다. 게다가 우람하고, 깊고, 변화 많은 성음은 남자가 확실하게 낼 수 있다. 판소리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풍자와 해학도 남성적인 것이다. 아무래도 여자는 이런 부분에서 부족하다. 이번에 초청된 다섯 사람의 남자 명창은 이런 면에서 특이하고도 귀한 존재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판소리를 버렸을 때 판소리를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 판소리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창극은 이들 아니면 여자를 남장을 시켜 출연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수인 이들은 또 하나같이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왔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다른 세대의 명창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들의 어깨에 우리나라 판소리의 이론과 실기가 다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수는 적지만, 이들 40대 남자 명창들의 소리는 다양하다. 송재영의 김연수 바디, 전인삼의 동편제, 윤진철의 보성소리, 황갑도의 동편제 적벽가, 왕기석의 박초월 바디, 이 모두가 우리나라 현대 판소리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소리들이다. 기량도 뛰어나다. 우리나라 최고의 판소리 명창 등용문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통해 이미 기량을 입증한 바 있다. 이들이 어려운 시기, 전혀 앞이 안 보이는 시절에 판소리의 길을 간 것도 다 재능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전주 지역 청중들의 수준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나라 판소리의 버팀목이 무엇이었는가를 입증했다. 닷새 동안 공연장을 가득 메웠음은 물론이고, 활발한 추임새로 소리판을 생동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특히 소리 속을 다 알고 하는 추임새야말로 소리꾼들을 긴장시키면서도 힘을 북돋워주는 역할을 했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전통예술 공연에는 청중들이 줄었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진정한 실력자들의 공연에는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청중들이 항상 있다는 사실을 이번 공연은 보여주었다. 귀한 것은 남자 명창뿐이 아니라, 바로 훌륭한 청중들이었다. 최동현/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군산대 국문과 교수로 일하면서, 판소리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저서로 『판소리 연구』, 『판소리는 무엇인가』, 『판소리 이야기』, 『흥보가』, 『판소리 단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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